■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前 롯데자이언츠 동료 마해영 선수
10년 이상 식물인간 상태로 투명 중이던 프로야구 임수혁 선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수혁 선수 기억하는 분들은 1999년을 잊지 못하실 거예요. 롯데와 삼성의 7차전 경기였는데요. 임수혁 선수 시즌 내내 부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동점 투런 홈런을 뽑아냈고, 그 덕에 롯데는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 시리즈에 올랐죠. 롯데의 희망이자, 기둥이었습니다. 그 당시 임수혁 선수와 함께 롯데를 이끌었던 선수 하면 마해영 선수겠죠. 입단 동기이기도 한데... 동료의 기억 속에 임 선수는 어떻게 남아 있을까요, 오늘 마해영 해설위원 연결해보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누워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보고 싶으면 찾아가서 만날 수는 있었는데, 이제 영영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듣고 많이 놀라고, 안타깝고 그러셨죠?
◆ 마해영> 네, 훌륭한 운동선수이기도 했지만 또 두 아이의 아빠였기 때문에 항상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었거든요. 좋지 않은 소식을 어제 접하게 됐습니다.
◇ 김현정 앵커> 동료들, 후배들이 일일호프도 열어서 기금도 마련하고, 도움 주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는데... 결국 일어나질 못했어요. 사실 마해영 선수하고 임수혁 선수는 마림포라는 별명까지 붙으면서 함께 맹활약을 하셨잖아요. 임수혁 선수 하면 지금 눈 감으면 어떤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 마해영> 대학교 그리고 또 롯데에서 같이 활약을 했었고요. 그리고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기 전에는 장거리 타자가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같이 타선을 이끌었던 그런 추억이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어떤 선수로 기억이 되세요, 동료 임수혁 선수는?
◆ 마해영> 일단은 성격이 굉장히 밝으시고, 정말 주위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 공격형 포수였는데, 특히 찬스에 강해서 안타 갯수 보다도 훨씬 타점이 높은 그런 공격력을 자랑하는 선수였어요.
◇ 김현정 앵커> 95년 시즌에는 임수혁 선수가 15개 홈런을 쳤고, 마해영 선수가 18개 홈런을 뽑아내고 그랬어요. 조금 두 분 사이에 묘한 경쟁심리 같은 것도 있었을 법 한데, 어떠세요?
◆ 마해영> 제가 경기 수를 많이 나갔기 때문에 성적이 더 좋았던 거고요. 포수라는 그런 포지션 때문에 좀 경기수가 저 보다는 조금 적었죠. 같은 경기를 나갔으면 저 보다도 더 많은 성적을 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김현정 앵커> 두 분 사이에묘한 경쟁심리, 선의의 경쟁심리 같은 것도 있긴 있었겠어요?
◆ 마해영> 글쎄, 경쟁이라기보다는 서로 도와가는 그런 쪽으로 협동이 됐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잘 치는 타자가 클린업에 같이 포함이 돼 있으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만약 그날의 그런 사고가 없었다면 임수혁 선수, 지금도 최고의 선수였을까요?
◆ 마해영> 네, 제가 볼 때에는 공격력 만큼은 최고였고요. 특히 포수라는 포지션이 계속 경기를 하게 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수비력도 같이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한국프로야구로 봐서는 참, 좋은 선수가 부상으로 오래 누워 있었었죠.
◇ 김현정 앵커> 2000년, 그 당시 참 떠올리기 싫습니다만 임 선수가 쓰러지던 날, 그 순간 기억이 나십니까?
◆ 마해영> 네, 그 날이 또 화요일이었고요. 월요일 날 부산에서 서울로 원정을 갔었고, 임수혁 선수의 본가가 또 서울에 있어요. 그래서 서울에 가서 삶은 달걀을 많이 싸와서 선수들이랑 같이 나눠 먹었던, 그런 기억도 있고요. 그날 역시 항상 밝고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날이었어요.
◇ 김현정 앵커> 경기 들어가기 전까지 컨디션이 그러니까 평소와 다름이 없었군요?
◆ 마해영> 특별한 이상징후라든지 몸이 아프다든지 그런 건 전혀 없었고요.
◇ 김현정 앵커> 그런데 1루에서 2루로 뛰어와서 베이스를 밟고 있다가 쓰러졌다 말입니다.
◆ 마해영> 보통 루상에 있으면 베이스위에서 3루 코치 사인을 확인하고요. 그리고나서 리드를 하면서 조금씩 베이스에서 나오는데, 사인을 하고나서 리드를 하면서 그때 가슴을 좀 잡으면서, 그때 뒤로 넘어지셨거든요.
◇ 김현정 앵커> 다리를 떨면서... 그 장면이 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그 자리에서 왜 응급조치가 제대로 안 됐습니까, 빨리?
◆ 마해영> 10년 전인데요. 그 때는 잠실구장에 3만 명이 꽉 찬 팬들과 선수들이 3만 명 이상이 꽉 차더라도 지금처럼 엠브런스라든지 응급요원이 대기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이 열악했죠.
◇ 김현정 앵커> 그때 심폐소생술이 조금만 더 빨리 됐더라도 식물인간까지는 되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 마해영> 맞습니다. 정말 빨리 병원으로 이동이 됐고, 심폐소생술이 제대로 됐다면 아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그런 평가를 하더라고요.
◇ 김현정 앵커> 그때 얼마 만에 병원에 도착한 건가요, 쓰러지고 나서?
◆ 마해영> 제가 경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 김현정 앵커> 그때 경기가 또 재개가 됐습니까, 쓰러지고 나서도?
◆ 마해영> 네, 저희는 또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죠. 또 일정상 경기를 해야 되고요.
◇ 김현정 앵커> 또 그렇게 심한 상황인지는 몰랐을 거예요. 현장에서는, 지쳐서 쓰러졌다, 처음에는 그랬거든요?
◆ 마해영> 저희는 경기를 하면서도 괜찮겠지, 일시적인 쇼크일 것이다, 이렇게 예상을 했었고요.
◇ 김현정 앵커> 2,30분 후에 병원에 도착을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에 구단에서 치료비나 병원비, 이런 것을 좀 보조를 해 줬나요?
◆ 마해영> 네, 롯데자이언츠 상조회에서는 매달 생활비로 지급이 됐었고요. 여러 가지 지원단체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는데, 하지만 1년 내내 병원에 있는다는 것 자체가 워낙 비용이 많이 발생을 하는 일이었어요.
◇ 김현정 앵커> 결국 100%는 아니고 가족들이 그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 마해영> 네, 맞습니다. 워낙 누워 있는 기간도 많았고요. 그래서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죠.
◇ 김현정 앵커> 임수혁 선수, 이렇게 아쉽게 떠났습니다. 동료로서, 친구로서 마지막 가는 길에 한마디 남기실까요?
◆ 마해영> 참, 마음이 아픈데... 힘들게 10년 동안 견뎌왔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으면 좋겠고, 특히 하늘나라에서 어떤 것 보다는 자식들이 잘 될 수 있도록 잘 지켜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김현정 앵커> 영정사진 속에 환하게 웃는 임수혁 선수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마해영 해설위원, 오늘 아침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8(월) 마해영 해설위원 "그날의 사고 없었다면 임수혁은 여전히 최고의 선수"
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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