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피해자"
- 故 김남훈 경사父 "남 몰래 맘고생"
- 故 이상림 씨 부인 "명예회복 남았다"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경찰 유가족 김권찬(故 김남훈 경사 부친), 철거민 유가족 전재숙(故 이상림 씨 부인)
2009년 1월 20일 생방송 도중에 긴급히 용산현장 연결했던 기억이 저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은 바로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달 보상 문제가 합의되면서 다행히 철거민 희생자들 장례는 치렀습니다만,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어떤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철거민뿐만 아니라 젊은 경찰도 한 명 목숨을 잃었죠. 모두가 희생자입니다. 이 시간에는 경찰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철거민 남편을 잃은 유가족을 모두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 씨 연결돼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 김권찬> 아내가 안 좋아서, 딸은 엄마와 같이 병원에 동행하고 있어요.
◇ 김현정 앵커> 어머님이 어디 편찮으십니까?
◆ 김권찬> 충격으로 인해서 심장병, 또 우울증이 생겨서 우리 딸이 직장을 그만 두고 항상 동행을 해서 병원을 가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지나가다가 김경사 또래의 경찰들만 봐도, 청년들만 봐도 생각이 많이 나시겠어요?
◆ 김권찬> 네, 많이 나죠. 항상 지날 때 마다 아들 생각이 나면...
◇ 김현정 앵커> 사실은 철거민 5명이나 돌아가시고 또 이분들 장례도 못 치르고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찰인 아들을 잃은 슬픔이 큰 데도 어디에 호소하기도 힘든, 마음고생도 심하셨을 것 같아요?
◆ 김권찬> 네, 심했죠. 용산을 지나다닐 때 오고 가고 할 때 여러 가지 볼 때 마음이 제일 아프고요. 또 저 역시 아들을 잃었지만 마음 아픈 것은 대한민국 부모는 다 마찬가지겠죠.
◇ 김현정 앵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경찰 가족 입장에서는 철거민들이 무조건 밉지 않느냐, 또 철거민 입장에서는 경찰이 무조건 미울 것 같고,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제가 들은 얘기로는 아버님께서 철거민 희생자들 위령제에 남몰래 다녀오신 적도 있으시다고요?
◆ 김권찬> 네.
◇ 김현정 앵커>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 김권찬> 용산참사 일어난 곳에서 영령들이 주로 있고 해서... 아들이 희생된 곳이고 또 그 고인의 사인이 다 있고 그래서 제가 거기를 꼭 가고 싶었던 곳인데요. 제 아들뿐만 아니라 그 고인들이나 똑같죠. 가슴 아픈 건...
◇ 김현정 앵커> 가슴 아픈 건 똑같죠. 아들도 어떻게 보면 명령체계에 의해서 한 경찰이니까... 이제는 철거민들 가족도 장례 다 치르고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됐으니까 한 번쯤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누고 싶다, 응어리진 것도 좀 풀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드실 것 같아요?
◆ 김권찬> 그런 마음이야 항상 있고, 제가 장례식장에도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만...
◇ 김현정 앵커> 이번 1월에요?
◆ 김권찬> 네. 가족들 인사만 하고 순천향병원이든 서울역이든 용산이든 간에 꼭 한번 다 뵙고 오는 것이 잘잘못을 떠나서 화해와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서로 가는 게 좋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가려고 했는데. 언론에 밖에 나다보니까 제가 거기에 가면 카메라가 저한테 다 오게 되면 그 가족들이 다 알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경찰이라는 이름 두 자가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또 보다보면 충돌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 김현정 앵커> 혹시라도 감정적으로 좀 격해져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봐?
◆ 김권찬> 포기를 했죠.
◇ 김현정 앵커> 혹시라도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얘기 좀 하고 싶으세요?
◆ 김권찬>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을 하지만 저도 피해자입니다. 만나서 잘잘못을 떠나서 이제는 넓은 마음으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해서 좀 만나 뵈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아직까지 아들의 기억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려운 인터뷰 응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철거민 측 유가족도 만나볼 텐데요. 고 이상림 씨 부인이시고, 아들은 구속 중입니다. 전재숙 씨 연결해보죠.
◇ 김현정 앵커> 앞에 용산참사 당시 순직한 경찰 아버님, 인터뷰 들으셨죠? 만날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
◆ 전재숙> 저희들도 마찬가지죠. 그분이야 왜 만나 뵙기 싫겠어요? 그 사람도 거기에서 자기가 죽이고 싶어 갔겠어요? 명령에 의해서, 정말 희생양이죠. 그래서 저희들도 그 가족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또 순직한 김남훈 씨도 미워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용산참사에 오셨다 갔다 소리는 들었어요. 그런데 뵙진 못했고요. 또 장례식장에도 오신다는 말씀은 들었어요. 그런데 왔다갔는지 안 왔다갔는지는 저희도 몰랐고요.
◇ 김현정 앵커> 오해 받으실까봐 못 가셨대요. 가고 싶었는데...
◆ 전재숙> 그런데 저도 지금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왜 이렇게 떨리는지...
◇ 김현정 앵커> 가슴이 왜 이렇게 떨리실까요?
◆ 전재숙> 마음이 너무너무 떨리고 그러네요. 그분 역시 자식을 보내면서 어찌 좋은 마음으로 보냈겠습니까? 저희하고 똑같은 마음이겠죠. 만나면 서로... 위로해주고 서로 보듬어주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오늘이 딱 1주년 되는 날인데요. 지난 9일에 장례식을 치르고 그래서 그래도 좀 마음이 나아지지 않으셨어요?
◆ 전재숙> 그분들은 좋은 데로 보내드렸어요. 그러나 우리한테는 아직 남은 게 있어요. 아들이 구속돼 있습니다. 아들과 동지가 나와야 되겠고요. 또 3천 쪽이 나왔는데 무엇이 밝혀질지 그것에 많은 문제가 들어있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고요.
◇ 김현정 앵커> 수사기록 말씀이시군요?
◆ 전재숙> 네.
◇ 김현정 앵커> 2심재판도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은 마음이 좀 무거우시다, 이런 말씀이세요?
◆ 전재숙> 네, 무겁습니다.
◇ 김현정 앵커> 어쨌든 용산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유가족들이 다 정리를 하고 떠나신 거죠, 집으로 가신 거죠?
◆ 전재숙> 네.
◇ 김현정 앵커> 어떻게 좀 적적하실 수도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좋지만, 좋은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적적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요.
◆ 전재숙> 집에 와도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서 있고요. 지금은 집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네요. 또 많은 분들이 우리 곁에 계셨기 때문에요. 그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고요. 정말 저희들 이곳에 와서 마음 편히 한 잠을 잔적이 없습니다. 오늘 가서 모두 만나 뵐 겁니다.
◇ 김현정 앵커> 앞으로 풀어야 될 문제, 뭐가 있을까요?
◆ 전재숙> 풀어야 될 문제는요. 이게 잘못된 게 있지 않습니까? 명예회복을 해야지 되고요. 저희 아들이 거기 구속돼있으니까 진상규명이 밝혀져야 되죠. 명예회복과 진상규명, 그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아야지 되고요. 또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런 명예회복은 벗겨줘야지 되겠죠.
◇ 김현정 앵커> 알겠습니다. 1년, 오늘 맞아서 유가족분들 경찰분도 계시고 이렇게 철거민 희생자도 계시고 이런 분들의 소회를 듣는 것으로 오늘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0(수) <용산1년> 철거민과 경찰 유가족, 라디오서 만나다
201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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