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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금) 김영광 안중근 숭모회 부이사장 "유해 발굴 추정 지점은 있지만..."
2010.03.26
조회 273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안중근의사숭모회 김영광 부이사장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되는 날입니다. 유가족들도 유해발굴이 간절한 소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역시 국권회복하거든 고국에 뼈를 묻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나도록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 지조차 모르고 있는데요. 지난 26년 동안 발굴에 매진해 온 분이 있습니다. 3선 의원을 지내신분 김영광 전 국회의원 연결해보죠.
◇ 김현정 앵커>안중근 숭모회 부이사장도 맡고 계시다고요?
◆ 김영광>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26년 전에 어떻게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 김영광> 당시에 제가 수원공고에 재학 중에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예활동으로 의사 안중근이라는 작품을 수원극장에서 올린 적이 있습니다.
◇ 김현정 앵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연극을 하셨군요?
◆ 김영광> 그렇습니다. 당시 제가 안중근의 배역을 제가 맡게 된 것이 평생 그분과의 인연을 맺게 된 셈이 되겠죠.
◇ 김현정 앵커> 사춘기 시절에 역할을 맡은 게 인연이 돼서 그때부터 흠모하고 계셨던 거군요.
◆ 김영광>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런데 26년 전이라고 하면 중국이 우리나라와 수교도 맺기 전인데 들어가서 발굴작업이 가능했습니까?
◆ 김영광> 매우 힘들었죠.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안 의사님을 잡아 가두고 조사하고 처형하고 땅 속에 묻은 것은 일본인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겠어요? 해방 후에는 우리가 현지에 들어가서 조사 연구 활동한다는 것도 매우 어려웠고 특히 중국 비자 얻기 위해서 미국 일본 홍콩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 수없이 찾아갔죠. 그러나 비자 받기가 어려웠죠. 북한 당국의 방해도 있었고요. 그리고 군사보호지역인 여순에 들어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죠. 87년도에 제가 거기에 잠입했었습니다.
◇ 김현정 앵커>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잠입을 하셨던 거군요? 결국 비자는 못 받고요.
◆ 김영광> 그렇죠. 그래서 중국에 공안당국에 체포 되어서 재판에 회부되고 벌금 물고 추방되는 수모도 겪었죠. 제가 중국정부에는 전과자가 되어버렸습니다.
◇ 김현정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유해발굴 26년 동안 쭉 하셨지만 결국은 찾지 못하신 거잖아요.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 김영광> 제가 유해발굴을 위해서 맨 처음에 했던 일은 그 안 의사님의 손자 되시는 안 박사님에게 가서 유해발굴을 위해서 동의서를 써달라고 한 것이 최초의 일이었고 또 국내에서는 각계각층인사 2백여 명으로 유해 발굴 한국 공안 위원회를 구성했어요. 거기에는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도 계셨고요.
◇ 김현정 앵커> 그렇게까지 추진했는데 유해발굴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 김영광> 그래서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도중에 84년도에 우연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가서 방명록 뒤져봤더니 그 안에 ‘안중근 의사 묘에 참배한 적이 있었다, 신현만.’ 이런 기록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 이름을 조회해봤더니 동명이인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분이 연배로 봐서 비슷하기에 찾아봤더니 그 분이 장본인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찾을 수 있다, 그런 데에 대한 동력이 붙고 희망을 갖게 된 것이죠.
◇ 김현정 앵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추진이 안 된 건가요? 희망은 가지셨는데요.
◆ 김영광> 국가보훈처가 2008년도에 발굴 작업 한 일이 있었죠. 그런데 매장지가 아닌 곳을 발굴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죠. 아시는 바와 같이 8.15 해방, 중국의 문화혁명, 그 후에 난개발 등 무질서 속에서 묘지관리라는 것은 전혀 없었죠.
◇ 김현정 앵커> 신현만씨라는 분을 찾았는데 그 분이 참배했다는 묘소는 가 보셨어요?
◆ 김영광> 예. 가봤죠.
◇ 김현정 앵커> 아니었습니까?
◆ 김영광> 백년이 흘렀기 때문에 비바람, 눈 속에서 지형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런 까닭에 어느 지점이라고 딱 짚기가 힘들죠. 그런데 그 신현만씨라는 분이 5~6년 전에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그분이 살아계셨더라면 그분을 모시고 가면 좋겠는데 돌아가셨으니 어떡하겠습니까? 당시에 안중근 의사 묘소를 참배했다는 두 분을 제가 확보를 한 셈이죠. 유족 관련 두 분이 증언자가 있었고 다섯 사람의 참고증인이 있어서 현재입장에서는 거의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 묻혀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지점은 대개 압축해놓고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김현정 앵커> 지점까지는 알겠지만 개인의 힘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고요. 정부가 다시 발굴단을 구성해서 한중일 함께 이 작업에 참여한다고 하니까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