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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3(목) [설특집 대담] 소설가 김탁환 "IT시대, 거대한 상상력은 19세기보다 퇴보"
2011.02.03
조회 366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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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구비시대, 입 아닌 손으로 이야기 만들어
- 공자, 지금 태어났다면 트위터 이용
- SF소설 쓰고싶어 카이스트 교수로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변상욱 앵커
■ 대담 : 소설가 김탁환
‘IT가 사회를 바꾼다’ 두 번째 시간, 오늘은 소설가 김탁환 씨를 모셨습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 ‘불멸’의 작가이시기도 하고요.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와 함께 ‘눈먼시계공’이라는 과학소설을 함께 펴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스튜디오에 나와 계십니다.
◇ 변상욱> 설날 아침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김탁환>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변상욱> 소설가에게 ‘복 많이’라고 그러면 어떤 복이 주로 해당이 될까요?
◆ 김탁환>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거죠. 매일 한 원고지 15매씩 쓰는데요. 슬럼프에 빠지면 갑자기 두 장, 석 장, 이렇게 분량이 줄어드니까. 그런데 어떻게 돌파해야 될지 방책이 없는 거니까요.
◇ 변상욱> 집필하시기 전에 예를 들면 손을 깨끗이 씻고 가지런히 하고 이렇게 하십니까? 아니면 그냥 앉아계시다가 마구 써내려가고 이렇게 시작을 하십니까?
◆ 김탁환> 시작하기 전에 주로 첼로 음악을 듣습니다. 첼로라는 악기가 마음을 굉장히 가라앉히거든요. 피아노나 클라리넷이나 이런 것을 들으면 마음이 들떠가지고 ‘내가 왜 이러나, 밖으로 나가서 놀아야지’ 이런 생각이 들고요. (웃음) 첼로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첼로를 틀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죠.
◇ 변상욱> 가다가 막히면 어떻게 하십니까? 커피를 한 잔 마신다거나 아니면 머리칼을 쥐어뜯는다든가 뭐가 있을 것 아닙니까?
◆ 김탁환> (웃음) 제 작업실이 파주니까요. 파주에서 주로 심학산 근처에 둘레길이라고 생겨가지고 산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 바퀴 걷고 나면 이제 생각이 좀 달라져서 또 다시 쓸 수 있죠.
◇ 변상욱> 트위터 맨 윗머리에 산책을 사랑하는 분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신 것 같아요.
◆ 김탁환> 매일 하루에 한 두세 시간씩 계속 걷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글이 안 풀려서 걸었는데 요즈음은 일단 걷다보면 좋은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니까 낮에는 한 시간 걷고, 밤 10시부터 11시 반까지 꼭 걸어 다니고요. 제가 목동에 사는데 CBS 앞을 지나가지고, 여기가 터닝 지점입니다. 돌아가지고 다시. 그렇게 돌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 변상욱> 김 선생님은 소설 그 자체로도 인기 작가이긴 합니다만,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이 되어서 또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불멸의 이순신’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하나가 나왔죠. ‘조선명탐정’?
◆ 김탁환> 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작을 5년 전에 했거든요. ‘열녀문의 비밀’이라는 작품을. 제가 연암 박지원 선생과 그 휘하들, 백탑파라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요. 이분들에 대해서 소설을 쓰고 싶어 가지고 한 10년쯤 30대를 거의 뭐, 백탑파의 문집들을 읽으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읽으면서 이 사람들을 어떤 소설 장르에 넣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문집들을 읽으니까 이 사람들은 관찰력이 뛰어난 분들이에요. 가령 유득공 같은 분은 비둘기에 관해서 책을 쓰시고요. 담배에 대해서 책을 쓰는 분도 있고, 물고기에 대해서 책을 쓰는 분도 있고, 꽃에 관해서도 책을 쓰는 분이 있는 거죠. 유럽식으로 말하자면 백과전서파 같은 그런 학자들이라 이렇게 관찰이 뛰어나면 관찰이 뛰어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탐정물이 굉장히 많은 거죠. 보통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가령 왓슨 박사는 보지 못하는 걸 홈즈가 보니까요. 그런 것처럼 이 사람들 자체가 관찰력이 뛰어나니까 그 관찰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가지고 탐정물을 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해서 지금 여섯 권을 썼습니다.
◇ 변상욱> 하긴 로맨스에 담아내긴 오히려 불편하겠군요. 탐정물, 추리물에 담아내면 제격이겠습니다. 원작인 ‘열녀문의 비밀’은 그렇게 시작이 됐군요. 애당초 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셨던 거군요?
◆ 김탁환> 처음에는 ‘열하일기’를 읽고 굉장히 놀랐었죠. 대학 들어가자마자 수업시간에 열하일기를 읽었는데, 굉장히 놀라운 여행기였습니다. 세상에 두 종류의 여행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같이 굉장히 누가 보던지 아주 객관적인 정보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책이 있고요. 열하일기 같은 경우에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이나 어떤 생각들을 다양한 문체로, 자기가 쓸 수 있는 온갖 문체로 다 표현한 거죠. 그래서 열하일기는 그 속에는 소설도 있고, 시도 있고, 논설도 있고, 사전도 있고요. 다양한 문체로 자기 감각을 다 표현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그 책을 읽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나중에 작가가 되면 연암선생에 관해서도 꼭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고. 연암 박지원뿐만 아니고 그 주위에 있는 분들이 다 재미있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모여서 우정을 서로 나누고 북경에 다 한 번씩 갔다 와서 지금으로 치면 뉴욕에 한번 갔다 오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 전체에 관해서 소설을 써봐야겠다, 그래서 한 10권 정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중에 6권 쓴 겁니다.
◇ 변상욱> 영화화를 미리 염두에 두고 하신 건 아니었고요?
◆ 김탁환> 그렇지는 않죠. 그렇지는 않은데, 탐정물들은 흔히 영상물로 구조 자체가 범인을 잡는 이야기니까요. 대중영상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큰 거죠. 그래서 옮겨질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 변상욱> 궁금한 건 소설가는 트위터에는 어떤 문장을 남길까라는 거였는데요. 지금 ‘IT가 문화를 바꾼다’라는 주제로 오늘 얘기를 시작합니다만, 트위터를 맨 처음에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어떤 거였습니까?
◆ 김탁환> 딱히 특별한 계기는 없는 것 같고, 제가 논어를 그때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요. 트위터에 140자 글자 제한이 있고, 그 속에서 자기 생각을 펼치는 건데. 논어를 읽다가 트위터를 구경 하다보니까 공자라는 분이 만일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트위터를 했을 것 같다, 공자님이 아주 짧은 문장으로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시거든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같이 보다가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짧은 140자 속에 표현을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고요.
그리고 근대 이후로 작가가 독자를 만날 때는 그 사이에 출판사가 있어가지고 항상 출판사를 거쳐서 작가들을 만나거든요. 독자와 작가들이 어울리는데. 트위터 같은 것을 이용하면 작가랑 독자가 바로 바로 만날 수 있는 거죠. 물론 바로 바로 만나니까 이게 시간이 약간 매일매일 투자해야 되는 부담은 있지만, 직접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게 궁금하기도 했고요.
◇ 변상욱> 평소 싸이월드 같은...
◆ 김탁환> 저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변상욱> IT에 꽤 익숙해하셨던 거군요?
◆ 김탁환> 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매체에 관심이 있는 거죠. 이야기라는 게 아날로그 이야기시대가 있고, 디지털 이야기시대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날로그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구비이야기나 혹은 소설 같은 텍스트 위주의 이야기였다면 디지털기기를 통해서 영화라든지 게임이라든지 혹은 블로그나 혹은 싸이월드나 이런 쪽에서 짧은 이야기들이 많이 퍼지기 시작하고.
구비이야기 연구하는 사람들은 제2의 구비이야기의 시대가 왔다, 옛날에는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손에서 손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그런 것들이 다 웹에 남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웹으로 이야기를 연구하는 방향성이 옮겨지고 있는 거죠. 그 전에 굿이라든지 이런 걸 연구하던 분들이 이제는 웹사이트를 연구해서 그 속에서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파되고, 어떻게 소멸되는가,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가지는가, 이런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고요. 저도 이야기 자체가 이야기를 쓰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가 어떻게 퍼져갈 수 있을까, 이런 데 관심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디지털매체로 넘어온 것 같습니다.
◇ 변상욱> 트위터를 예로 든다면 하루에 몇 번 들여다보십니까?
◆ 김탁환> 통계 낸 것을 보니까 제가 매일 9번 정도 글을 올리더라고요. 그리고 시간은 한 한 시간 정도인 것 같아요. 정해놓고.
◇ 변상욱> 팔로잉 하시는 분들은 좀 적은 것 같고, 팔로워들은 더 많은데?
◆ 김탁환> 많지는 않고요. 한 6천 명 정도 제 글을 보는 것 같고, 제가 따라 가고 있는 분들은 한 260분 정도. 260분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올리시니까요. 열심히 따라서 읽고 있습니다.
◇ 변상욱> 주로 올리는 내용은 어떤 걸 올려야 되겠다고 미리 생각해놓으신 게 있습니까?
◆ 김탁환> 제 일상이 이야기를 계속 소비하는 거니까요. 가령 일주일에 영화를 꼭 두 프로 정도 보고, 드라마를 꼭 한 두 프로, 세 프로 보고요. 소설을 한 일주일에 두세 권 읽으니까 이야기와 관련된 것들은 계속 이렇게 접하니까 그 속에서 생각들 또 멋진 문장들, 제가 쓰고 있는 작품 전체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오늘 쓴 것 중에서 내 맘에 꼭 드는 부분들을 소개하기도 하고요. 작년에는 1년 동안 논어를 아침마다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 변상욱> 실제로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을 오프에서 만나보신 적도 있나요?
◆ 김탁환> 있습니다. 제가 ‘밀림무정’이라고 하는 두 달 전에 호랑이가 나오는 소설을 쓰고 번개를 했습니다. 트위터 번개, 토요일, 일요일 잡아가지고 한 30명씩 모아가지고 호프집 하나 빌려가지고 술을 마셨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오더라고요. 가령 토요일 모였을 때는 ‘방가방가’를 만드신 육상효 감독님도 오시고. 트위터에서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알 수가 없잖아요. 굉장히 즐거웠고, 1년에 한두 번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 변상욱> 이야기와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 김탁환> 그렇죠. 이야기고, 제가 ‘1/n’ 이라고 문화매거진 계간지를 하나 하니까 창의성, 자기를 창의계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많이 오신 것 같아요.
◇ 변상욱> 창의족, 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 김탁환> 네.
◇ 변상욱> 혹시 환경이나 이쪽에도 관심이 본래 있으셨던 겁니까? ‘밀림무정’을 읽다보니까 이것은 평상시 관심이 있었으면 모를까...
◆ 김탁환> 그런데 쓰면서 그 작품을 준비하면서 관심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그 작품도 한 5년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 변상욱> 호랑이를 쫓는 포수의 이야기.
◆ 김탁환> 도드라진 것은 한 짐승과 한 인간이 도드라지는데. 그 소설을 쓰려면 개마고원 자라는 나무들, 개마고원에서 호랑이의 먹이가 되는 짐승들, 이런 생태를 잘 알아야 되거든요. 바로 쓰진 못했어요. 왜냐하면 쓰려고 하니까 내가 아는 나무가 없는 거죠. 봄의 숲과 여름 숲, 가을의 숲, 겨울의 숲이 다 다르고. 또 아침의 숲과 저녁의 숲이 다르거든요. 냄새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고. 호랑이의 어떤 시선으로 숲을 또 봐야 되니까요. 그런 걸 한 3-4년 계속 공부하다보니까 맹수를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그러니까 이게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는 인간인 것 같아요. 인간들이 동물들을 계속 멸종시키고 있고요. 그중에서도 특히 호랑이나 사자나 이런 맹수들이 점점점점 살기가 힘들어져서 결국은 인간들에 의해서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 거죠.
◇ 변상욱> 어쩌면 먹이사슬의 맨 위에 가 있으니까 맹수가 편안하게 잘살 수 있다면 밑에서 안정되게 잘 되어있는 거겠죠?
◆ 김탁환> 맹수가 생태숲이 있으면 한 숲을 조정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거죠.
◇ 변상욱> 그러고 보니까 전근대와 근대와 넘어가는 그 상황에서, 호랑이의 족적도 그렇지만, 지금 이순간도 인간이 뭐라 그럴까요, 근대에서 IT가 횡행하는 초현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IT문화라는 게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소설가의 통찰력으로 얘기해보시면.
◆ 김탁환> (웃음) 반반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잃어버리는 것도 있고요. 그리고 좋아지는 것도 있고. 가령 제가 정재승 선생하고 ‘눈먼시계공’ 작업을 할 때는 정재승 선생이 미국에 출장을 간다든지 제가 외국에 출장을 가도 서로 의논을 해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죠.
◇ 변상욱> 그래도 소설 작업이 계속될 수 있는 거군요?
◆ 김탁환> 이메일 주고받고 채팅을 통해서 서로 시간차가 나는데, 여기는 낮이고 저기는 밤인데도 약속을 하면 만나서 의논을 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시간과 공간을 좁혀놓은, IT가 굉장히 좁혀놓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엄청난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거고요. 그런데 소설가 입장에서 보면 소설가가 19세기 소설가보다 20세기, 21세기 소설가들의 상상력이 더 뛰어나냐?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제가 보기에는 19세기 소설가들이 가장 상상력이 스케일이 크고 깊거든요. 도스트예프스키, 톨스토이, 허먼 멜빌, 이런 인물들이 세계 어느 국가냐, 어느 대륙이냐, 이런 구별을 막론하고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나오기 전에 그 사람들의 상상력이 가장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거죠. 아주 개인적으로 사소한 일을 가지고 우주적인 질문을, 종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시대였고요. 지금은 이제 그런 것들을 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데 물어본다든지, 그래서 이게 다 파편화되고 있는, 그래서 그렇게 거대한 어떤 상상력은 나오기 어려운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죠. 그런 부분들은 잃어버리고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변상욱> IT가 실제로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는 부분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 김탁환> 우선 요즘 젊은 소설가들은 작업하다가 예를 들어서 어떤 단어라든지 어떤 상황이라든지 이런 걸 모르면 바로 바로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거죠. 그런 게 굉장히 좋고. 옛날에 원고지에 쓸 때는 소설가들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야 됐었거든요. 지금은 HWP나 워드나 이런 부분들이 편집기능이 있는 거죠. 그래서 가령 1장부터 쓰다가 막히면 바로 7장을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퇴고를 하다가 6장을 1장 앞으로 넣어야겠다, 이런 게 가능해지는 거죠. 그게 아주 손쉽게 이야기 자체를 다시 해체시켜서 다시 만져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젊은 소설가들이 유리한 거고요.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떻게 소설을 그렇게 쓰냐,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쫙 써야지... 저도 보면 저는 문명의 이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 변상욱> 소설가로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언급은 어느 정도로 하고 계십니까?
◆ 김탁환> 글쎄요, 그때그때 하는 편입니다.
◇ 변상욱> 소설을 통해서만 하는 게 아니고 트윗을 통해서도 하시고?
◆ 김탁환> 네. 가령 ‘열녀문의 비밀’ 같은 것도 당시 2005년도에 지방분권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방분권문제를 계속 고민하다가 이게 정조시대 때 보면 규장각에 ‘이덕무’라는 사람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있었는데, 경기도 적성이라는 고을로 파견돼 나가거든요. 그래서 중앙에서 잘 나가던 어떤 서생이 지방에서도 과연 행정을 제대로 할 수 있나, 이런 게 문제가 됐죠. 그런데 이덕무 선생이 가서 그 행정을 잘해가지고 상도 받고, 계속 고가평점에서 최상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그 작품은 지방분권문제에 관한 제 나름대로의 답인 거죠. 그래서 역사소설이라는 건, 역사소설은 다 정치소설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좀 그 정치적 입장을 역사에 빗대어서 좀 더 깊게 넓게 보여주는 그런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변상욱> 아마 그 시대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지방분권, 서울을, 그때는 한양을 중심으로 한 어떤 지배체제의 뭐라 할까요, 개혁이면 개혁, 이런 얘기들도 들어갔겠죠. 그래서 재미있는 시대가 정조시대가 되는 건데, 요즈음 시대를 보면서도 어떤 개혁이나 이런 걸 꿈꾸시거나 생각하십니까?
◆ 김탁환> 작가들은 원래 좀 더 나은 삶, 그런 것들을 항상 꿈꾸고. 저 같은 경우는 제가 계속 비극을 많이 쓰거든요. 비극을 많이 쓰는 게 계속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뭔가 개혁을 하려고 꿈꾸었다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실패하는 사람들, 그런 인물들을 계속 그렸던 것 같아요. 허균도 그랬고, 이순신 장군도 그랬고.
◇ 변상욱> 만약 소설가가 아니라면 소설가라는 이런 저런 딱지를 다 떼고 나면 인간 김탁환은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를 한다면 어떤 사람입니까?
◆ 김탁환> 좀 몽상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걸 가지고 제 나름대로 이렇게 뭔가 상황도 만들어보고, 일을 좀 꾸며보고, 그런 종류의 인간이죠.
◇ 변상욱> 산책, 몽상, 요건 아주 잘 이어지고. 맹수, 이렇게 하거나 IT하면 여기서 약간 왠지 갭이 생기는 느낌인데?
◆ 김탁환> 소설가한테 호기심이 굉장히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역사쪽에 한 10-15년 쯤 관심을 가지고 보다가 원래 어렸을 때부터 SF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좋아했고, SF를 쓰고 싶어서 제가 카이스트에 한 4년 정도 교수로 있었던 거고요. SF를 쓰기 위해서는 과학을 많이 알아야 되니까 그걸 과학책을 읽으면서 아는 것보다는 과학자들과 점심 먹는 게 낫겠다, 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했던 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과학자들과 같이 생활을 4년 동안 했던 거고요. 지금 생각은 과학이라는 게 역사만큼 더 이야기를 소설을 만들거리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저한테 두 개의 날개다, 하나는 역사고, 하나는 과학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변상욱> 뭔가 멋진 소설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문학을 꿈꾸는 사람한테 어떤 충고를 들려주고 싶습니까?
◆ 김탁환> 가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한테 책을 하나도 안 읽는 것보다는 백 권의 걸작을 읽는 게 낫고요. 백 권의 걸작을 읽는 것보다는 한 편의 졸작을 쓰는 게 낫습니다. 뛰어난 작품을 읽어보면 어떤 게 어떤 부분이 뛰어나는지는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항상 문제가 되는 건 눈과 손의 괴리예요. 눈은 굉장히 높죠. 어떤 게 뛰어난 지 아니까요. 손은 안 따라 가는 거죠. 자기 손은. 그래서 절망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보는 것만큼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계속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지금은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는 구조니까 드라마나 영화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요. 문제는 손인 거죠. 그래서 계속 졸작을 쓰면서 내가 내 손이 무엇을 못 쓰는가를 깨닫고, 그 약점을 고쳐나가는, 그런 게 습작시절에 꼭 필요합니다.
◇ 변상욱> 혹시 소셜 네트워크, 혹은 사이버 속에서의 캐릭터하고 실제 나 자신하고의 괴리나 분열 같은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천연덕스럽게 그 안에서 잘 노는 사람도 있고, 본래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얘기를 써내려가거나 대화할 때는 그럭저럭 써내려가는 걸 보면 말이죠.
◆ 김탁환>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아바타라는 게 굉장히 새로운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소설가들한테는 소설가들은 원래 다중인격자들 입니다. 제가 ‘불멸의 이순신’ 쓰면서는 등장인물들이 백 명쯤 나오니까요. 백 명이 전부 다 캐릭터가 다르고요. 저들이 말하는 방법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제가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제가 여자가 됐다가 남자가 됐다가 어린이가 됐다가 노인이 됐다가 계속 이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프로들은 그러고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일상생활에 나왔을 때는 멀쩡한 거죠. 멀쩡하게 두 딸의 아빠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이렇게 잘 지내다가 작업공간에 들어가면 다중인격인 수많은 아바타들을 데리고 제가 막 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인터넷에서 아바타들 볼 때도 내 머리 속에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아바타보다 쟤가 좀 못하구나,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 변상욱> 전문적인 프로들은 괜찮은데 아마추어들은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 김탁환> 그럴 수 있겠죠. 인간은 다 분열되어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 변상욱> IT의 미래가 행복할 것 같습니까? 또, IT가 모습을 계속 바꿔갈 테니까 어떻게 바꿀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 김탁환> 소설 ‘눈먼시계공’의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2049년을 배경을 하고 있고요. 2049년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그게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게 한 30년이나 40년 정도고요. 그 이상 넘어가면 환타지가 되는 거죠. 정재승 교수님하고 저하고 계속 IT를 비롯해서 과학문명이 30년 후 어떻게 바뀔 것인가, 우리의 차는 어떻게 바뀔 것이고, 우리의 방송은 어떻게 바뀔 것이고, 이런 것들을 다 조항별로 100가지 정도를 정리를 해가지고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좀 정리를 하면서 보니까 항상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하더라고요. 그래서 IT에 관해서도 이게 아주 민주적인 어떤 국경을 뛰어넘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시간과 공간을 줄이고 오히려 더 민주적으로 갈 수 있는 어떤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이런 주장도 있고요. 또 한쪽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이용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을 만들 줄은 모르는 세상으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컴퓨터를 이용은 잘하지만 컴퓨터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잖아요. 그게 점점 심화되어가지고 나중에는 만드는 소수의 사람이 그걸 이용만 하는 다수의 사람을 지배하는, 그런 세상으로 갈 거다, 이런 디스토피아도 있습니다.
◇ 변상욱> 올해 계획은 어떤 게 있으십니까?
◆ 김탁환> 저야 소설 쓰고 있으니까요.
◇ 변상욱> 혹시 살짝 힌트를 주신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작업은 어떤 소설입니까?
◆ 김탁환> 영화로 치면 대부 같은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 변상욱> 대부 같은 소설. 그러면 조직과 관련된 커다란 인물이 하나 등장하고...
◆ 김탁환> 오랜 꿈이죠.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갈 대부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되느냐, 그런 걸 써보고 있습니다.
◇ 변상욱> 설특집 ‘IT가 사회를 바꾼다’ 오늘은 소설가 김탁환 선생을 모시고 IT가 우리의 문화, 우리를 미래를 바꿔 나갈 건가,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설날 아침에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