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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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3/31(목) 진중권 문화평론가 "카이스트 총장, 교육개혁가 아닌 경영개혁가"
2011.03.31
조회 519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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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스트 학생 자살, 빡빡한 학사관리시스템이 주범
- 대학에 천박한 시장만능주의가 물들고 있어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변상욱 앵커
■ 대담 : 문화평론가 진중권

한국의 카이스트는 한국영재교육의 요람입니다. 고급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고, 과학기술을 첨단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세운 특수국립대학이죠. 그러나 요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서, 오늘은 이 고민을 해보려고 합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 변상욱> 일각에서는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기 때문에 성적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진중권씨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진중권> 글쎄요, 우리가 자살의 원인을 확실히 말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역시 그것 아니겠습니까?

◇ 변상욱> 그런데 어떻게 보면 성적이 아주 나쁜 학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좋은 학생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특히 이번 카이스트 같은 경우는 최근 5년간 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라고요. 그런 것을 보면 카이스트 특유의 빡빡한 학사관리시스템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진중권> 네, 제가 거기에서 잠깐 강의를 한 적이 있지만 학사관리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5년 동안 8명이 자살을 했고, 특히 올해만 벌써 3명째 아닙니까? 그렇다면 빡빡한 학사관리시스템이 학생들의 자살을 낳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죠. 특히 지난 1월에 목숨 끊은 학생은 특별전형을 통해서 카이스트에 입학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 변상욱> 공고 출신이었다는 학생이죠?

◆ 진중권> 네. 특별전형으로 학생을 뽑은 것은 일반전형만으로 선발 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족함이 있고 그 부족함을 보완하자는 취지였는데 그렇게 뽑힌 학생들에게 일반전형과 동일한 수준의 학점,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고요. 제가 볼 때에는 그 특별전형이라는 것도 정말 우리 학교에 필요한 인재를 뽑겠다, 이런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 학교는 이렇게 다양한 선발기준을 사용해서 학생들을 뽑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과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 변상욱> 카이스트 학생들은 사실 전액 다 장학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총장이 들어간 뒤에 성적순에 따라서 모두 장학금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일부는 돈을 내라고 한 것 같은데요. 그래서 학생들의 일탈과 실수에 돈을 매기는... 교육철학으로서는 좀 부적절한 철학이 아니겠느냐, 라는 내부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글쎄요, 이런 방법이 학생들에게 자극을 주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쁜 방법일 수도 있고요, 어떻게 판단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진중권> 일각에서 그 분을 교육개혁가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교육개혁가라기 보다는 경영개혁가에 가깝거든요. 또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등록금으로 학생들의 목을 죄는 것이 면학분위기 조성의 방법이라면 단연코 비교육적이라고 봅니다. 사실은 상당히 치사한 것이거든요.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학생들을 더욱 잘 가르쳐야 할 학교의 의무를 등록금을 가지고 학생들을 경쟁 속에 몰아넣는, 사실 아주 손쉬운 방식으로 회피해버리는 거죠. 또 교육의 목표가 학점의 제고에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경제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이 그분의 업적이라면 업적일 텐데요. 제가 볼 때에는 교육개혁이라기보다는 카이스트라는 공기업의 경영을 개혁한 것이다, 이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 변상욱> 카이스트라는 공기업, 그 말씀이 참 와 닿습니다.

◆ 진중권> 제가 보기엔 그 분에게 결여된 것은 교육철학입니다.

◇ 변상욱> 사실 저도 카이스트하면 자기가 정말 미친 듯이 좋아하는 분야의 연구에 몰입해서, 그게 물론 결과가 제대로 나오든 실패로 끝나든 간에 그렇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이거니... 했는데, 이걸 성적순으로 사람들을 압박한다니까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 진중권> 흔히 우리는 경쟁만 하면 뭐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이상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찰스 퍼시 스노라고 아주 유명한 분이 있죠. 세계적 논쟁을 낳았던 책,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됐는데요 그 책의 저자입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옥스퍼드 대학에서 그동안 했던 개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과를 일등으로 졸업한 학생에게 표창장을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없앤 것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왜냐하면 옥스퍼드 수학과를 1등으로 졸업했다, 얼마나 큰 영예겠습니까? 그래서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벌였는데요. 문제는 그 포상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100년 동안 수학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수학시험에서 점수 잘 받는다고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건 아니고, 또 점수경쟁이라는 것이 오히려 수학적 창의성의 발달을 가로막아왔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시험을 위해서 문제를 푸는 능력, 학점 받는 능력,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알고리즘에 가깝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종합적인 능력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이겠죠. 여기에 창의력이 필요한데요. 문제를 발명하고, 제기하고, 그 해결방법을 창안해내는 것. 이것이 어려운 것이지, 딸려 나온 계산문제들 있잖아요. 이런 것을 해낼 사람들은 차고 넘칠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이 지금 어느 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 변상욱> 그래서 카이스트의 면담제도도 만들어가지고 상담교사도 배치를 했다, 얘기는 그렇게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도 교사 한 명당 몇 백 명을 맡아야 되는 상황이어서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고. 지금 말씀하신 김에 전체 대학생들도 1년에 자살하는 통계를 보니까 한 270-350명사이더라고요. 그러면 카이스트는 카이스트대로 그런 특징이 있지만 다른 대학들도 그렇게 썩 나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진중권> 사실은 카이스트, 라는 곳은 전체 다른 대학에서 보여주는 것의 가장 첨예한 형태를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이른바 경쟁이라는 것은 또 상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지지 않겠습니까? 그것 뿐이고. 사실 요즈음 뭐라 그럴까요, 대학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형태의 시장만능주의를 한국에서는 대학이 제일 먼저 하고 있어요. 경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요즘에 교수, 제자가 학문을 통해서 만난다기보다는 학점을 통해서 만납니다.

저도 강의를 해봐도 강의시간에 질문이 없어요.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이겁니다. “성적평가 어떻게 해요, 중간고사 언제 봐요?” 이것 외에는 일체 질문이 없고요. 그 다음에 학기 끝나고 점수 올라달라는 전화가 옵니다. 심지어는 학부모도 학교로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애가 철이 없어서 수강신청을 엉뚱한 것을 했어요. 변경해 주세요.” 경쟁이 워낙 심하니까 부모가 나서서 학생들 스펙 관리해 주는 거거든요. 이런 식으로 경쟁, 경쟁, 하다보니까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지금 다 어른이 된 학생들을 아이로 관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그나마 자의식이 있고, 사회의식이나 비판의식, 이런 것을 가진 학생들은 학교에서 가만 놔두지도 않고요.

◇ 변상욱> 일탈자죠.

◆ 진중권> 그렇죠. 얼마 전 제가 다니던 중앙대에서 한 학생이 거기에 반대했습니다. 구조조정... 그러니까 대학을 장바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요. 학생이 농성을 벌였더니 학교 측에서 학생들을 다 퇴학을 시켰어요. 그리고 법원에서 퇴학처분 무효판결을 받아오니까 교수들이 다시 회의를 해가지고 무기정학을 내렸습니다. 사실 그런 것을 막는 것이 교수들의 임무인데, 그걸 학생들이 했거든요. 교수들이 나와서 학생들을 변호해줘야 되는데 자기들끼리 회의해가지고 징계를 때리잖아요. 그러니까 야만적인 일이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고요. 제가 볼 때에는 이런 시장 만능주의 풍조가 카이스트에서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 변상욱> 시대정신의 문제이고, 이 나라의 교육철학, 시스템의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러면 대학이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가려 해도 사실은 정부의 교육제도가 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진중권> 교육제도도 있지만 제가 볼 때에는 대학들 스스로 미친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교육이 아니라 기업으로 이해를 하거든요. 등록금 받아가지고 건물 지을 생각 하고, 땅 살 생각을 하지... 제가 볼 때에는 다들 미쳤습니다. 대학이라는 것은 시장과 협력도 해야 되지만 때로는 시장을 견제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대학이 가장 시장적이에요. 요즈음 대학 한번 들어가 보시면 그게 마트지 대학이 아닙니다.

◇ 변상욱> 좀 판타지도 있고, 상상력도 막 넘쳐나고, 미친 듯이 학문에 몰입도 하고, 세상에 대해서 어떨 때에는 비판도 하고, 독설도 내뱉고, 이런 대학을 꿈꿨는데, 대학이라는 그 정체성에 대해서 나중에 깊이 있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