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29(금) "봉사활동 중 산사태 희생학생을 추모합니다"-인하대 이본수 총장
2011.07.29
조회 795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인하대학교 이본수 총장



춘천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지난 수요일 새벽. 한 펜션에서는 전날 농촌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피곤에 지친 대학생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굵은 비가 쉴새없이 내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펜션이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하지만 뒷산이 무너져내렸고 순식간에 펜션 4채를 덮쳤습니다. 투숙객 13명이 숨졌는데 그중에 10명이 인하대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사실 학교차원에서 간 행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하대학교는 사고가 나자마자 대책반을 꾸리고 장례를 준비하고 있어서 눈길을 모으죠, 총장 역시 나서서 사고가 나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갔는데요. 인하대학교의 이본수 총장, 직접 연결을 해 보겠습니다.

◇ 김현정> 총장님, 나와 계십니까?

◆ 이본수> 네,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학생들, 동아리 학생들이 35명이 갔는데 그중에 10명이 숨지고 한 13명이 입원치료, 지금도 받고 있나요?

◆ 이본수> 입원치료 받는 사람은 현재는 10명입니다.

◇ 김현정> 10명으로 줄었군요. 상태가 위독한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 이본수> 처음에 걱정을 좀 했었는데 위독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이제는 없습니다. 약간 좀 많이 아프냐, 적게 아프냐 차이가 있습니다.

◇ 김현정> 10명이 숨진. 개교이래 최대 참변이 아닐까 싶은데요.

◆ 이본수> 그렇습니다. 57년 개교이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 김현정> 심경이 어떠세요, 총장으로서.

◆ 이본수> 제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아 있는데 목소리처럼 매우 착잡합니다. 착잡할 정도가 아니라 참담합니다. 더더군다나 현장에 가서 아들, 딸을 잃은 어머님들을 보는 순간에 말이 안 나오는 정도로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얘기를 하려고 그러니까 말이 좀 잘 안 되네요.

◇ 김현정> 총장님도 자제분들이 있을 텐데, 그 얼굴도 떠올리고 그러셨을 것 같아요.

◆ 이본수> 아이들을 셋이나 키웠습니다마는 제 아이들을 잃어버린 거 이상으로 정말 슬프고 참담하고 착잡하고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 김현정> 현장으로 사고가 나자마자 직접 달려가셨어요.

◆ 이본수> 사고가 나서 여기서 기본적인 조치를 취한 다음에 부총장 일행을 먼저 보내고 바로 뒤따라서 제가 그쪽으로 갔죠.

◇ 김현정> 도착해 보니까, 어떤 상황이던가요?

◆ 이본수> 도착해서 사고현장을 먼저 갔습니다. 우리 부총장이 병원에 대기했었기 때문에 사고현장을 먼저 갔는데 생각보다 사고현장이 겉보기로는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 자리였는데 사고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떻든 산사태가 나서 4채의 집이 반파 또는 전파돼 있었고 그중에 한 펜션에 있었던 우리 학생들이 사고를 당한 상황이라 도대체 그 현장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웠습니다.

◇ 김현정> 아비규환의 상태였다, 이렇게 한마디로 묘사를 하더라고요.

◆ 이본수>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생각보다는 예를 들어서 우면산 사태나 이런 거에 비하면 규모가 아주 작았기 때문에 아비규환 정도는 아니지만 참 보기 딱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도 10명이나 숨졌다니 말이죠. 건장한 대학생들인데도.

◆ 이본수> 그게 이해가 안 될 정도의 사고였습니다.

◇ 김현정> 건장한 대학생들인데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는가, 산사태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해요.

◆ 이본수> 그렇습니다. 물과 흙과 돌이 합쳐져서 내려온 그 양이라는 게 트럭으로 100여 대분의 트럭분이 한 집을 밀고 내려왔으니까 그 힘이라는 건 보기 전에는 우리가 말하기 어려울 것으로 상상을 합니다.

◇ 김현정> 부상당한 학생들도 다친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클 것 같습니다.

◆ 이본수> 매우 큽니다. 제가 병실에 있는 학생들을 다 만나봤는데 경상인 학생들도 그렇지만 중상인 학생들은 자기 몸 가누기도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살아 있고 동료들을 잃었다는 마음 때문에 매우 큰 충격 속에 있었습니다.

◇ 김현정> 유가족들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테고요.

◆ 이본수> 그렇습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고요. 바로 몇 시간 전까지도 전화통화를 주고받고 아이들 가르치던 뒷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지금은 죽고 없다는 것에 대해서 그분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이고 또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 김현정> 동아리 이름이 '아이디어뱅크'예요. 발명동아리인데. 발명동아리인데 어떻게 그곳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된 건가요?

◆ 이본수> 우리 '아이디어뱅크'라는 발명동아리가 벌써 오래된 동아리고요. 역사가 있고 전통이 많은 동아리입니다. 1997년부터 벌써 봉사활동에 나갔고 금년에 14번째 나갔는데.
벽재에 있는 학교들을 찾아다니면서 자기들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발명의 꿈을 키우고 과학기술인이 되도록 격려하고 이런 일들을 지금까지 쭉 해 왔습니다. 금년에도 특허청 산하의 발명진흥회의 협력, 지원을 받아서 선택한 것이 창현초등학교를 선택한 것입니다.

◇ 김현정> 참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겠습니다마는 이 학생들이 선한 일을 하러갔던 학생들이라 더 안타깝습니다.

◆ 이본수> 본인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주 뛰어난 학생들일 뿐만 아니라 그 본인의 능력을 본인만 가지고 있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전수함으로써 그런 꿈을 가진 학생들을 늘리겠다, 이런 아주 훌륭한 동아리죠.

◇ 김현정> 장례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이게 합동으로 치릅니까?

◆ 이본수> 워낙 첫날 사고소식을 전하고부터 학교장으로 합동장례식을 치르도록 우리가 결정을 했고 그렇게 해서 지금 인하대학교 부속병원에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장에서 일반인들도 좀 있고 저희 학생 유족들도 있는데 그분들의 일부 의견이 원인도 분석하고 책임도 좀 따지고 한 다음에 장례를 해야 될 것 아니냐 그래서 일정은 아직 못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분들이 너무 오래 학생들이 차가운 곳에 있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개별적으로 장례를 치르시겠다고 한 분들이 계셔서 지금 두 분이. 한 분은 인하대병원에 와서 오늘 발인을 합니다. 또 한 분은 일산병원에 가 있고. 세 분이 곧 오시겠다고 연락을 해서 준비중에 있는 상황입니다.

◇ 김현정> 총장님, 제가 언뜻 떠오른 생각인데 선한 일 하다가 떠난 학생들, 명예졸업장이라도 좀 학교에서 주시면 어떨까요?

◆ 이본수> 그럼요. 이번에 벌써 지시를 했습니다마는 4학년인 한 학생이 있습니다. 이민성 학생이라고 신소재공학부에 4학년이 있는데 제가 아직 확인을 못 한 게 이번 8월 졸업대상자가 되는지, 내년 2월 졸업대상자가 되는지 그건 좀 확인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8월 졸업대상자라면 이번 8월 졸업식에 명예졸업장을 주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금 조금 전에 지시를 했습니다.

◇ 김현정> 모든 학생들한테 지금 주면 안 될까요?

◆ 이본수> 단계적으로 1학년도 있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생각해서 졸업장을 주는 시기가 꼭 이번 졸업식인 게 좋으냐 하는 건 좀 검토해 봐야 되겠습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지금 20초 남았는데요. 총장님.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제자들, 혹시라도 병원에서 이 방송 듣고 있을 제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 한 말씀만 해 주시죠.

◆ 이본수> 병원에 있는 우리 학생들, 너무 슬픔에만 잠겨 있지 말고 지금 먼저 간 우리 학우들이 다 피우지 못한 꿈, 그걸 대신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회복해서 꿋꿋이 일어나고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서 발명의 꿈, 새로운 과학기술의 꿈을 이룩하는 데 온 정열을 다 바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희망을 전합니다.

◇ 김현정>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이본수>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인하대학교 이본수 총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