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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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9/1(목) 이마트 질식사 故 황승원 군 어머니 "등록금, 산만한 돌덩이 같았다"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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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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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故 황승원 군 어머니 김영순 씨

지난 7월 2일 경기 일산 이마트에서 인부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동기에 냉매가스를 빼고 청소를 하는 작업 중에 냉매가스에 질식을 한 겁니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변을 당한 대학생 황승원 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여동생과 월세 20만원 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지내왔고, 제대 후에 복학을 해야 하지만 도저히 형편이 안 돼서 아르바이트에 나섰던 거죠. 사망 후에도 업체들 간의 보상문제가 얽히면서 40여일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또 다시 대학들이 개강을 하고 또다시 등록금 시즌이 되면서 고 황승원 군처럼 등록금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은데요. 이들을 위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고 황승원 군의 어머니 김영순 씨를 연결해 보죠.

◇ 김현정>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요?

◆ 김영순> 네, 아이 그러고 나서 병원에 있다가 얼마 전에 퇴원했어요.

◇ 김현정>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 김영순> 위장도 망가지고 정신과 치료도 받고, 그러고 있다가 나왔어요.

◇ 김현정> 그러면, 일은 안 나가십니까?

◆ 김영순> 일은 못하고 있어요, 몸이 계속 아파서.

◇ 김현정> 원래는 일을 하셨죠?

◆ 김영순> 예, 일 했죠.

◇ 김현정> 어떤 일 하셨어요?

◆ 김영순> 공장에 다녔었어요.

사고 40여일만에 눈물의 장례 "살아서 고생, 죽어서도 냉동실"

◇ 김현정> 어머님은 공장 다니고 아들은 아르바이트 다니고. 따님은 대입검정고시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단란한 가족이었는데... 장례는 언제 치르셨습니까?

◆ 김영순> 장례는 15일에 치렀어요.

◇ 김현정> 8월 15일, 장례까지 참 오래 끌었어요?

◆ 김영순>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40일 넘은 거예요.

◇ 김현정> 이마트 측과의 보상문제 합의 때문에 40일이나 장례도 못 치르고. 그때 부모 심정이 어떠셨어요?

◆ 김영순> 처음에는 그 사람들한테 화만 나다가, 나중에는 저 자신한테 화가 나더라고요. 아이를 그렇게 냉동실에 넣어놓고, 살아서도 그렇게 죽을 고생을 시키다가 죽은 다음에도 그렇게 얼른 못 보내고 거기다가 넣어놓고, 어미라는 여자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고요...


"살아서 죽을고생 죽어서 냉동실" 아이에게 부끄러워서 하늘을 못쳐다 봐

◇ 김현정> 아들 생각이 언제 제일 많이 나세요?

◆ 김영순> 저는 요새 하늘을 못 쳐다보겠어요. 하늘을 쳐다보면 괜히 아이가 거기서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아이한테 미안하고 아이한테 부끄러워서. 하늘을 못 쳐다보겠어요...

◇ 김현정> 뭐가 그렇게 미안하세요?

◆ 김영순> 한 번도 편하게 못 해 주고. 집도 형편 없는 데다가 애를 데려다 놓고, 공부도 편하게 못하게 하고, 해 보고 싶은 건 하나도 못 해 보고, 연애도 못해 보고, 아이들끼리 미팅도 못 해 보고, 놀러도 못 가보고, 그런 게 다 너무 가슴이 아파요.

◇ 김현정> 등록금 벌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한 거죠?

◆ 김영순> 처음에는 방학 때만 하다가, 제대하고서는 바로 일 시작한 거예요.

◇ 김현정> 어떤 일을 했습니까? 이마트 지하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 김영순> 같은 일이에요. 냉각기 보수하고 이러는 그런 회사라 그러더라고요.

◇ 김현정> 보수가 얼마나 나오는 거였나요?

◆ 김영순> 한 달에 150만원 나오는 거예요.

◇ 김현정>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텐데 대학생이 할 만한. 그 일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 김영순> 그렇죠. 제가 그랬어요. “보통 다른 아이들이 하는 그런 똑같은 아르바이트 해라, 그거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라고 그랬더니, 이 녀석이 보통 아르바이트 해서는 돈을 그만큼 못 번다고, 거기 돈 많이 준다고 그러면서 거기 갔던 거예요.

"승원이 어깨에 큰 산만한 돌덩이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 김현정> 등록금 마련, 어느 정도 황승원 군에게 부담이고 압박이었을까요? 사실은 대학 다니는 자녀가 없는 가정에서는 등록금이란 게 그 정도로 부담인가, 이게 잘 이해가 안 가거든요?

◆ 김영순> 이 녀석이 처음에 시립대 다니기 전에 00대를 1년 다녔어요.

◇ 김현정> 편입?

◆ 김영순> 아뇨, 재수해서 다시 수능 본 거예요. 그런데 00대를 다니면서 두 학기를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거의 800만원 정도 돼요. 그럼 제가 거의 1년을 벌어야 되는 돈이에요. 그러니 이 녀석 도저히 자기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또 시립대는 그나마 좀 학비가 싸니까 이 녀석 학자금 갚고 학비 해야 된다고. 그러니까 보면 어깨에 큰, 진짜로 산만한 돌덩이를 하나 달고 다니는 것 같아요, 항상.

◇ 김현정> 평소에도 아주 알뜰하고 근면한 아들이었나요?

◆ 김영순> 네, 평소에 걔는 돈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어도 꼭 저한테 물어보고 사먹어요. 뭐 사준다고 그러면 싫다고 그러고. 청바지 하나 갖고 입고 다니고, 청바지 사준다고 그러면 됐다고 하나 갖고도 충분하다고. 생전 돈을 안 써요. 그런 것도 너무 가슴이 아파요, 지금.

◇ 김현정> 효자였네요. 아주 속 깊은 아들...

◆ 김영순> 네.

◇ 김현정> 아르바이트 갔던 마지막 날, 인사는 나누고 보내셨어요?

◆ 김영순> 제가 퇴근하는 시간에 그 녀석이 나가는 시간이어서.

◇ 김현정> 공장 갔다 오시면 아들 나가고 이렇게?

◆ 김영순> 네, 그래서 그날은 전화통화만 했어요.

◇ 김현정> 마지막에 무슨 대화 나누셨어요, 전화로?

◆ 김영순> 그냥 조심해서 잘 갔다 오라고. 이 녀석도 저보고 조심해서 잘 들어오라고 그러고. 그냥 그렇게 얘기했어요.

미처 못한 말..."승원아, 오늘은 가지 말고 쉬어라"

◇ 김현정> 그 마지막 대화에서 미처 못 한 말, 이 말은 내가 꼭 했어야 되는데, 가슴에 맺힌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 김영순>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승원아, 오늘은 가지 말고 쉬어라” 이 소리를, 그 소리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김현정> 지금 저 하늘에서 우리 승원 군이 어머니 모습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듣고 함께 울고 있을 것 같은데. 황승원 군같이 등록금 때문에 고민하는 청춘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생들이 거리에서 등록금 때문에 시위한다는 뉴스 나오면,그냥 뉴스만 봐도 가슴이 너무 아프실 것 같아요?

◆ 김영순> 저는 옛날에는 우리 아들만 그렇게 힘든 줄 알았어요. 우리 아들만 그렇게 예쁘고 우리 아들만 그렇게 힘든 줄 알았더니, 진짜 예쁘고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저는 걔네 볼 때마다 내 자식 보는 것 같고. ‘아이고, 저 녀석들 어떡하나’ 저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학비 이거 진짜 말도 못하게 비싸요. 우리 같은 서민들이 보기에는 이거 몇 달치 생활비예요. 그런 걸 아이들한테 어떤 학자금 대출이란 걸 만들어서 애들한테 어깨에 또 짐을 하나씩 더 지어주고. 그런 것은 빨리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 김현정>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됐습니까, 세 식구?

◆ 김영순> 제가 버는 게 한 달에 100만원, 110만원 벌었어요.

◇ 김현정> 무슨 공장 다니셨어요, 어머니?

◆ 김영순> 라벨 만드는.

◇ 김현정> 황승원 군이 아르바이트 하기 전까지는 110만원 가지고 세 식구가 사셨고. 아들이 800만원 등록금 내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자기가 벌어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겠네요?

◆ 김영순> 그럴 수밖에 없죠. 제가 도저히 어떻게 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이, 부모라는 사람이 도저히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죠.

◇ 김현정> 아드님 친구들도 좀 만나보셨죠, 이번에?

◆ 김영순> 군대에서 친구들이 많이 왔더라고요.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그냥 저는 걔네들 보고 헤어질 때 “재미있게 놀고 공부 열심히 하고 싶은 것 다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라” 그러라고 얘기했어요.


등록금 시위, 승원이처럼 이쁘고 힘들게 사는 아이들 "정치인 쌈질 말고 귀 기울여야"

◇ 김현정>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황승원 군 같은 또 다른 우리 사회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정부에 꼭 이것만큼은 좀 들어 달라, 이야기하고 싶으신 게 있으셨다면 말씀을 좀 해 주시죠.

◆ 김영순> 서로 쌈질만 하지 말고, 아이들이 하는 소리를 제발 좀 귀 기울여서 듣고, 내 아이가 하는 소리다, 이렇게 생각하고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보면 다들 그래요. 아이들 기죽일 생각들이나 하고. 제 아들이 00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구청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요. 누군지 모르겠어요. 거기 의원 되는 사람이 어느 대학 다니느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00대학 다닙니다”했더니 “거기 나와서 먹고는 살겠냐” 이러더래요. 애가 아르바이트 갔다 와서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저는 어른이 되는 사람들이 도대체 아이들을 자기 아이 아니라고, 자기 아이 배부르다고 배고픈 아이들은 아이 취급도 안 하고, 인간취급도 안 하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도대체 어떻게 믿고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 김현정> 등록금도 좀 신경을 써줘야죠? 이렇게 나 몰라라, 뒷짐 지고만 있으면 안 되겠죠?

◆ 김영순> 안 되죠. 제일 중요한 아이들인데, 제일 예쁘고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제일 열심히 살 아이들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죠.

◇ 김현정> 우리 사회 곳곳에서 우리 고 황승원 군처럼 등록금 마련 때문에 고통 받는 젊은이들, 학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아드님의 희생이, 우리 황승원 군의 희생이 등록금을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바랍니다. 어머님, 오늘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인터뷰 응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얼른 건강 회복하시고요.

◆ 김영순>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