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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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축구 산문집 낸 시인 최영미
당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당신이 그렇게 강한 줄 몰랐어요. 사랑한다 김남일, 사랑한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감격에 겨워 나는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문장을 포기하고 느낌표만 찍고 싶다. 시인 최영미 씨가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르던 날 쓴 글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지루해한다는 이야기가 두 가지죠. 군대와 축구얘기인데.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친숙한 시인 최영미 씨는 축구에세이까지 출간을 했습니다.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만나볼까요. 시인 최영미 씨입니다.
◇ 김현정> 시인과 발레 이러면 자연스러운데 시인과 축구는 잘 매치가 안 되네요. 언제부터 그렇게 축구를 사랑하게 되셨어요?
◆ 최영미> 그러니까 한 10여 년 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축구경기를 봤어요.
◇ 김현정> 어떤 계기 뭐가 그렇게 사랑스러우셨어요, 그때?
◆ 최영미> 그냥 재미있었어요. 한국이 네덜란드에 5:0으로 졌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어느 날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보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남자들하고 똑같아요. 남자들이 축구 왜 좋아하냐고 저한테 묻는데. 똑같은 이유로 재미있었어요.
◇ 김현정> 재미있었어요, 그냥 하여튼 재미있었어요. (웃음)
그 책에 보면 나는 2002년 월드컵의 최대 피해자다 이렇게 쓰셨는데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 최영미> 당시 그때 제가 장편소설을 구상중이었는데 축구경기를 보느라고 글을 못 썼어요. 핑계를 대자면. 그래서 만일 제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 장편소설이 더 빨리 나왔겠죠. 5년을 더 끌었는데. 그 이후로.
◇ 김현정> 그후부터 유럽의 클럽축구경기부터 죄다 섭렵을 하신 거예요.
지금까지 본 경기들 중에 최고의 명승부다 꼽는 게임이 있다면 어떤 경기입니까?
◆ 최영미> 우선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경기도 역사에 남는 명경기죠. 그리고 또 그것은 제가 직접 못 봤고 제가 본 경기로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스날과 바르셀로나 경기를 봤어요.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직접 가서 런던에서. 그런데 그 게임이 사실은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더 잘했어요. 더 훌륭한 팀이었는데. 경기 결과는 바르셀로나가 먼저 득점했는데 그후 아스날이 따라붙어서 2:1로 바르셀로나가 졌어요.
그런 게 참 재미있게 경기를 잘했지만 졌어요.
◇ 김현정> 잘했지만 졌던 경기, 이런 것을 명승부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 최영미> 네, 실력대로 가지 않는 거죠, 결과가.
◇ 김현정> 주변에서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나요? 무슨 시인이 저렇게 축구를 좋아하나?
◆ 최영미> 많죠. 그런 질문 너무 많이 받아서 지겨워요. (웃음)
◇ 김현정> 뭐라고 답하세요. 그럴 때?
◆ 최영미> 남자들하고 똑같은 이유로 여자들도 축구를 좋아할 수 있고.
◇ 김현정> 시인도 똑같이 좋아할 수 있다, 시인이라고 뭐 특별하냐.
◆ 최영미> 그렇죠. 오히려 더 다른 사람들이 안 보는 걸 보기 때문에 그런 재미로 경기를 보죠.
◇ 김현정> 다른 사람들이 안 보는 걸 본다는 건 예를 들면 어떤 걸가요?
◆ 최영미> 예를 들면 아주 섬세한 경기 시작하기 전에 경기결과를 예측해 봐요.
그러면 그게 재미있어요. 선수들이 터널을 빠져나올 때 터널이라고 해요, 경기장 들어오는 통로.
동굴같이 생겼죠. 거기 나올 때 선수들의 표정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가요.
표정과 얼굴에 드러나는 몸 상태. 그리고 뭐라고 그럴까 하여튼 그 제 생각에는 경기 전에 이미 경기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을 해요.
◇ 김현정> 그런 것들, 그런 섬세한 것들까지 보는 재미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책 ‘공은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에세이를 보니까 영국의 박지성 선수부터 이청용, 정대세, 오언 코일, 황선홍 감독 등등을 만나셨는데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어떤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 최영미> 아무래도 사실은 정대세 선수하고. 만나기 힘든 사람이니까 그리고 오언 코일 감독은 제가 외국감독이니까 그분하고 만날 때 제가 사실 신경을 많이 썼죠. 영어, 내 영어가 통할까, 안 통할까.
◇ 김현정> 직접 하신 거예요, 영어를?
◆ 최영미> 그럼요. 제가 질문도 다 영어로 작성하고. 그런데 제 영어가 통하고 그분이 스코틀랜드 출신이라서 스코틀랜드 악센트가 심한데. 제가 공포감이 있었어요. (웃음)
그런데 다행히 제가 미리 요청을 했죠. 이러이러하니까 내가 영어가 약하니까 천천히 말해 달라. 그때는 정말 천천히 말씀하셔서.
저랑 또 나이도 비슷하고 다른 박지성이나 이청용 선수들은 다들 저보다 한참 아래잖아요, 나이가.
그래서 아무래도 대화할 때 통하는 면이 적은데 그 오언 코일 감독은 저보다 몇 살 어렸지만 비슷한 연배라서 얘기가 잘 통했어요.
◇ 김현정> 저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이러셨습니다. 보면서 우리 축구에는 사실 승부조작으로 한동안 떠들썩했는데 최영미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더라고요.
◆ 최영미> 그러니까요. 제가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라는 시를 쓴 게 한참 전이고 최근에 승부조작이 불거져서 저도 굉장히 슬프고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는데요.
제가 그런 시를 쓸 때는 운동장의 언어는 투명하다 육체의 언어잖아요, 말하자면.
사실은 승부조작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모든 운동경기에 있어서 어느 나라에나 사실은 밖으로 표출되는 건데. 그런데 저는 어느 정도는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는 해요. 대부분 승부조작이 임금이 적어서 말하자면 용돈을 벌려고 하는 그런 생계형이 사실은 많아요. 그러니까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아주 고소득이지만.
◇ 김현정>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우리 K리그 선수들은.
◆ 최영미> 한국에 있는 K리그는 관중들도 적고 일종의 상대적인 박탈감, 그런 걸 느꼈고. 선수들이 돈의 유혹에 넘어간 건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제가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라고 쓴 것은 그들의 승부는 투명하고 누가 잘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다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경기장에 가서도 보이고 텔레비전으로 다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누가 반칙을 했는데 심판이 마침 그걸 못 봐서 넘어가더라도 관중은 알잖아요. 그래서 쟤가 퇴장감인데 퇴장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아는 거예요.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죠. 현실 사회에서는 누가 반칙을 했든 우리가 잘 몰라요, 보통사람들은.
◇ 김현정> 좀 어렵네요. 어려운 이야기네요. 복잡하고.
◆ 최영미> 저는 일종의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고 싶었던 건데. 현실에서는 이렇게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밀어낼 때가 많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나쁜 사람들이 더 잘하고 쉽게 말하면.
그런데 운동장에서는, 경기에서는 그런 나쁜 선수들이 잘 나가기 힘들고 왜냐하면 실력이 대세기 때문에.
◇ 김현정> 그래서 축구장에서만은 정의가 살아 있다, 그런 말씀.
알겠습니다. 최영미 씨 덕분에 축구경기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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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0/13(목) 최영미 시인 "축구에 빠진 여자,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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