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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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김현정의 뉴스쇼"
- 309일간 故 김주익 생각 자주해
- 제1차 희망버스 보며 희망 얻어
- 김여진에 미안해 연락 못하기도
- 캄보디아 후원 어린이 약속 지켜야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
국회 여야의 권고로 노사합의가 시작이 됐고요. 어제 최종타결이 된 한진중공업. 309일간 35m 고공크레인에 머물렀던 김진숙 지도위원도 크레인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체포가 된 상태에서 병원 검사를 받고 있는데요. 그 체포 직전에 저희가 마지막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리인터뷰인 셈이죠. 그래서 기존의 인터뷰와는 조금 느낌이 달랐습니다. 직접 들어 보시죠.
◇ 김현정> 땅을 밟는 게 얼마 만이신 거죠?
◆ 김진숙> 오늘이 309일째 됐죠.
◇ 김현정> 다시 찬바람 불고 눈이 내리는 계절까지 왔어요. 바람 많이 불고 낙엽 우수수 떨어지는 이런 날은 무슨 생각하셨어요?
◆ 김진숙> 솔직히 김주익 씨 생각을 제일 많이 했죠.
◇ 김현정> 김주익 씨라면 2003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익 전 노조지회장을 말씀하시는 거죠?
◆ 김진숙> 네.
◇ 김현정> 제가 지난번 인터뷰를 했을 때 김진숙 지도위원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8년 간 한 번도 보일러를 놓고 잔 적이 없다. 그 동지들, 동료들을 생각하면 차마 방에 불을 넣고 잘 수가 없었다.” 하셨는데, 그 부채의식을 이제는 좀 떨쳐내셨습니까?
◆ 김진숙> 빚을 다 갚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지켜냈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그 때 트위터가 있고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살아 내려올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어제 오늘 많이 들어서 사실은 잠을 못 잤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요.
◇ 김현정> 2003년에도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만 할 수 있었다면, 그분들도 그렇게 목숨 끊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요.
◆ 김진숙> 그때도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그 아까운 사람이 살아서 내려올 수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 김현정> 그럼, 300여 일 가운데 가장 좌절했던 순간은 언제예요?
◆ 김진숙> 그때 6월 27일에 조합원들이 다 끌려 나갔으니까, 그리고 전기도 끊어지고 크레인이 완전히 용역에 의해서 고립됐었거든요. 여기는 아무도 접근 못하고요. 그 순간부터 훨씬 힘들어졌죠.
그러면서 매일 공권력 투입 얘기가 나오고 실제로 특공대들이 크레인을 다 샅샅이 훑어보고 가기도 하고 그런 순간순간들이 그때마다... 여기서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크레인도 바닷가 쪽으로 끌고 간다고 했을 때도, 등대에 올라가겠다고 그러고요.
◇ 김현정> 그때 말입니다. '내가 최후의 순간에는 몸을 던질 수 있겠구나.' 정말로 생각하셨던 거예요?
◆ 김진숙> 그때는 그런 판단, '내가 죽어야 되겠다. 살아야 되겠다.' 이런 게 아니라 '아. 이제 그런 순간이 왔나보다.' 그러니까 이걸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요. 그리고 저는 여기 올라올 때 그런 걸 다 버리고 올라왔기 때문에 목숨에 대한 이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되겠다.' 이게 아니라 그냥 그랬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 김진숙> 많아요. 희망버스 타셨던 분들 너무 너무 고맙고, 그 물대포를 맞고 연행되는 상황에서도 희망버스 할 때마다 오시는 분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서 응원해 주셨던 분들, 날나리들. 하여튼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 김현정> 정말 많죠. 그 중에도 딱 하나 이름을 대라면 제일 첫 번째는 누구인가요?
◆ 김진숙> 이 친구 이름을 제가 한 번도 얘기를 안 했었는데요. 이 크레인에 309일 동안 밥을 삼시세끼 올려주던 친구, 황이라라는 친구인데요. 그러니까 이 친구 혼자 밥해서 밥 나르고, 여기서 요구하는 거 양말 올려달라고 하면 양말도 구해서 올려주고, 이런걸 혼자 다 해 주셨어요.
◇ 김현정> 그 위에서 말입니다. 식사며, 잠자리며 하다못해 용변이며, 이거 다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 김진숙> 식사는 끼니때마다 올려주니까 했고요. 용변 같은 경우는 비닐봉지에 담기도 하고 바구니에 담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 잠은 조그마한 조종실이 있으니까 조종실에서 자고요. 그래도 거기도 비가 오면 전부 쇠로 되어 있어서 습기 때문에 벽에서 물이 흘러내려요.
◇ 김현정> 목욕이라든지 좀 씻어야 할 텐데 이거는 어떻게 하셨어요?
◆ 김진숙> 제대로 못 씻었죠. 그러니까 사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목욕입니다.
◇ 김현정> 내가 땅 밟으면 목욕부터 해야겠다,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셨군요?
◆ 김진숙> 네.
◇ 김현정> 제일 먼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 김진숙> 캄보디아에 있는 아이인데, 아시아평화인권연대라는 단체를 통해서 결연사업으로 맺은 아이가 있어요. 작년에 가서 그 아이를 보고 "내년 여름에 꼭 올게." 이렇게 약속까지 하고 왔는데, 여름도 지나가버렸네요.
◇ 김현정> 캄보디아에 후원해 주던 아이를 못 만나셨군요. 황이라 씨가 거기 안에서 생활을 책임지셨다면, 바깥에 대중에게 김진숙 지도위원의 생활을 알린 분은 김여진 씨가 대표적이죠?
◆ 김진숙> 사실은 그분의 공이 제일 큽니다. 저는 그때 팔로우가 몇 명 없었기 때문에 그 분이 한 번씩 글을 올려주는 게 사실 큰 힘이 됐었고, 정말 진정성을 가지고 한진(중공업)과 싸움을 같이 했던 분입니다. 마음이 아파요. 너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시켜서요.
◇ 김현정> 또 지금 임신하셨잖아요?
◆ 김진숙> 그래서 하여튼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트위터에서도 아는 척도 잘 못하고, 너무 미안해서요. 웬만큼만 신경 쓰면 괜찮은데, 너무 애를 끓는 게 눈에 보여서요. 그래서 많이 미안하고 많이 고맙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300일을 도대체 뭘 위해서 왜 그렇게 싸우는 거냐, 이거 불법 아니냐. 정당성 주장하기 전에 법과 원칙을 지켜라.” 이런 반론도 많이 받으셨어요?
◆ 김진숙>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워낙 정리해고 자체가 상식과 개념에서 어긋났던 부분이 많았고, 특히 한진중공업이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게 그동안 노사합의를 몇 번 상습적으로 어겨왔어요. 이런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된다.
그리고 정리해고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해서 겪어야 되는 고통들, 그 가족들의 눈물들. 이런 것은 정말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누군가는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어떤 수단이 되고 방법이 되든지 간에요.
◇ 김현정>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을까요? 크레인 위에 목숨 걸고 올라가는 것밖에?
◆ 김진숙> 제가 작년에도 정리해고 432명하면서 단식도 24일 해 봤고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은 사실 3년을 싸워왔습니다. 뭘 안 해 본 게 있겠습니까? 노숙투쟁도 해 보고 어디 탄원서도 내보고 할 거 다 해 본 것인데 안 된 거예요. 그걸 막을 수가 없었어요. 크레인에 올라와서도 309일이나 걸렸던 일인데...
◇ 김현정> 그렇군요.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 김진숙> 내려간다면 병원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요.
◇ 김현정> 병원으로 가고, 그리고 경찰에 가서 조사도 받으시게 될 수도 있고요?
◆ 김진숙> 조사받아야죠. 당연히.
◇ 김현정> 그리고 나면, 가고 싶은 곳은 어디세요?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 김진숙> 제일 가고 싶은 곳은 캄보디아입니다. 목욕 갔다가 캄보디아에 가서 그 약속을 지켜야 돼요, 제가.
◇ 김현정> 얼른 비행기 값 모으셔야겠네요. (웃음) 몸이 성하지는 않으실 텐데 이렇게 인터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김진숙> 너무 고맙습니다.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1/11(금) 땅밟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캄보디아에 가고 싶다"
201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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