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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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4/6(금) 테너 조용갑 "용접공에서 복서로, 다시 세계적 성악가로"
2012.04.06
조회 284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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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테너 조용갑


오늘 화제의 인터뷰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오페라 가수를 한 분 모시겠습니다. 이 분의 삶이 좀 남다릅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용접기술공, 여러 가지 배달일도 했고요. 프로복서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성악가가 되기 위해서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떠났고 14년이 흘러서 지금 세계적인 성악가가 돼서 금의환향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 데뷔무대를 가졌어요. 테너 조용갑 씨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용갑 씨, 안녕하세요?

◆ 조용갑> 네, 안녕하세요. 조용갑입니다.

◇ 김현정>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토스카 공연. 14년 만에 한국 무대, 소감이 어떠셨어요?

◆ 조용갑> 너무 좋았다고 할까요? 한국이 오랜만에 정말 처음으로 한 무대여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 김현정> 혹시 그 섬마을 가거도 고향분들도 몇 분 오신 분들 계세요?

◆ 조용갑> 한 몇 분 오셨죠.

◇ 김현정> 우리나라의 최서남단이잖아요. 거기서부터 오려면 배 타고, 버스 타고 한참 걸려서 오셨겠네요?

◆ 조용갑> 네, 거기 가거도에서는 쾌속선으로도 목포까지 오는데 4시간 걸리고 또 기차를 타고 또 올라와야 되니까 한 8시간, 10시간 넘게 와야죠.

◇ 김현정> 섬마을분들. 섬마을에 문제아로 아주 유명하셨다, 이런 과거 얘기를 제가 들었는데 어떻게 섬마을에서 지내시다가 어떻게 성악까지 하게 되신 거예요?

◆ 조용갑> 제가 가거도에서 뭐 이제 워낙 저희 집이 가난하고 그래서 또 아버지가 좀 폭력적이시고 그래서 많이 방황을 했고 그 다음에 문제도 많이 일으키고 또 사고도 많이 쳤는데 그러다가 중학교까지밖에 없었어요, 학교가.
그래서 고등학교를 갈 수 없고 형편 때문에. 그래서 서울로 상경하고 이제 학교를 그래도 가야 된다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진학하고 그래서 신문팔이와 아파트책자, 전철에서 장사하는 거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모든 걸 하다가 중간에 권투를 하게 됩니다.

◇ 김현정> 권투. 제가 보니까 그냥 권투를 했습니다, 정도가 아니라 통산전적 9전 5승의 프로복서를 하셨어요?

◆ 조용갑> 네. 그래서 중간에 정말 하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그때 뜨거운 마음에 세계를 품는 어떤 성경의 뜨거움을 받아서 세계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된다, 이런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게 주먹인 줄 알고 권투쪽으로 갔다가 한국 챔피언 전초전까지 경기를 했다가 그 경기에서 판정으로 지게 되면서 그 이후 바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러니까 그 부분이에요, 그 부분. 배달일 하고 세차일하고 자장면 배달하고 그러다가 산전수전 다 겪고 프로복서까지 갔을 때는 이게 넉넉해서 간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프로복서를 하다가, 복싱을 하다가 유학을 가게 됐을까? 성악으로 유학을 가게 됐을까?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 조용갑> 늘 제가 그러면서 음악을 우연치 않게 배우게 되고.

◇ 김현정> 우연찮게 어떻게 배우게 되신 거예요?

◆ 조용갑> 그냥 기타를 하나 배우게 됐는데 교회에서 늘 기도하고 찬양하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성악가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테이프를 하나 사고, 파바로티 테이프를 사서 따라서 흉내 내다가 정말 “유학을 가도 될 정도로 괜찮다.”라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 그러면서 목사님이 “재능이 아깝다.” 해서 저를 후원해 주시고 그렇게 해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이탈리아로.

◇ 김현정> 말하자면 복싱하면서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걸 듣고 사람들이 잘한다, 그냥 성가대에만 서 있기 아깝다, 그래서 유학까지 가신 거예요.

◆ 조용갑> 네. 저의 형편으로는 안 되니까 목사님의 후원 하에 거기까지 가게 됐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어쨌든 유학을 가긴 갔는데, 그게 몇 살 때죠?

◆ 조용갑> 그게 이제 27살이고 늦은 나이에 출발을 하게 되고 그 전에는 전혀 성악하고는 관련 없이 전문적으로 배우지를 않았죠.

◇ 김현정> 그러면 악보도 볼 줄 모르고 말도 안 통하고 음악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고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 조용갑> 그렇게 너무나 어려웠지만, 그 중간에 언어 같은 경우는 바로 이제 이탈리아 사람하고 부딪히면서 배우기 시작했고요. 음악적인 테크닉은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반복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루에 10시간 정도 연습을 했고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마 두 달, 석 달을 걸렸을 거예요.

◇ 김현정> 남들보다 훨씬 더 연습을 하신 거예요.

◆ 조용갑> 더 많은 시간과 많은 걸 투자해야 남들을 따라갈 수 있었죠. 그래서 저는 더 많이 열심히 했어야만 했고요.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유럽에서 말 그대로 성공을 했습니다. 20회 이상 유명 콩쿠르를 석권했고요. 유럽 전역에서 300회 이상 오페라 주역으로 활동 중이십니다. 그러다가 14년 만에 한국에 오신 건데. 아까 공연 얘기를 잠깐 했는데요. 부모님들도 오셨어요?

◆ 조용갑> 네, 저희 아버님은 이탈리아에 가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고요. 어머니는 그 전에 이탈리아로 많이 오셔서 저희 공연을 많이 봤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과. 그런데 한국에 왔을 때는 못 오셨어요.

◇ 김현정> 왜 못 오셨어요?

◆ 조용갑> 이제 일도 있고 가거도에 계속 일도 하시고 그러시거든요. 그런데 가거도에서 서울 한번 나오기가 사실 쉽지는 않아요. 배 타고 이렇게 와야 해서.

◇ 김현정> 가거도를 가긴 하셨어요? 다녀오셨어요, 고향도?

◆ 조용갑> 아니요. 가거도를 아직까지 못 갔는데. 못 간 지 14년이 됐습니다.

◇ 김현정> 가보셔야겠네요. 가서 어머님도 업고 섬 한 바퀴 도셔야겠어요.

◆ 조용갑> 네. (웃음)

◇ 김현정> 앞으로의 꿈은 어떤 걸까요?

◆ 조용갑> 저는 이제 제가 어렵게 공부를 했고 그래서 TOP(Truth of Players)라는 팀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이 팀은 뭐냐 하면 봉사단체이고 진실한 연주자들의 모임이라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재능기부단체이기도 하고 군부대와 교도소와 그 다음에 경찰들과 여러 재능이 필요한, 음악이 필요한 곳에 전하는 그런 단체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을 개발 못한 사람들을 오디션을 거쳐서 제가 모아서 가르치기도 하고 이탈리아에 후원도 하는 그런 어떤 학교이면서도 공연단체이면서도 그리고 찾아가는 공연이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 조용갑> 이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TOP 봉사단체를 통해서 제2의 조용갑, 제3의 조용갑 많이 만들어주세요.

◆ 조용갑> 네, 알겠습니다.

◇ 김현정> 오늘 아침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