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5/8(화) 국민 아버지 이순재 "아버지란 이름은..."
2012.05.08
조회 571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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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배우 이순재

어제 이 시간에는 국민어머니, 나문희 씨와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들으시고는 어떤 분이 “왜 국민아버지는 출연을 안 하느냐?” 하시더군요. 오늘 어버이날인데요. 국민아버지 한 분을 모셨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짜 배우, 연기 거장이고요. 정말 아버지 역할도 많이 하신 분이세요. 이순재 씨,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대표로 초대합니다.


◇ 김현정> 이순재 선생님, 안녕하세요?

◆ 이순재> 안녕하세요. 이제는 할아버지인데 아버지가 됐네. (웃음)

◇ 김현정> (웃음) 선생님, 눈 부상은 정말 어떠세요? 괜찮아지셨어요?

◆ 이순재> 네.

◇ 김현정> 언론기사에서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연극 공연하는 중에 눈이 찢어지셨죠?

◆ 이순재> 세트에 부딪혀서 눈이 찢어져서 피가 좀 났었죠.

◇ 김현정> 피가 조금이 아니라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공연을 멈추지 않으셨더라고요?

◆ 이순재> 멈출 수가 없죠.

◇ 김현정> 아니, 그 정도가 되면 잠시 관객들한테 양해를 구해도 되지 않습니까?

◆ 이순재> 아니야,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요. 이어나가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그건 뭐, 내 불찰이고.

◇ 김현정> 그러면 그냥 막고 하셨어요?

◆ 이순재> 네, 바꿔가면서 하고 그랬죠.

◇ 김현정> 부상을 당한 연극이 바로 지난주에 끝난 ‘아버지’라는 연극인데요. 저는 눈이 찢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계속 연기를 하셨다는 그 말씀을 듣고는 ‘그래. 바로 저 모습이 우리 시대의 아버지다. 아파도 안 아파 보여야 되고, 힘들어도 안 힘들어 보여야 되고. 상처 나고 골병 나도 아버지니까, 아버지다워야 하는 거.’ 아버지 하기가 참 힘들네요?

◆ 이순재> 아버지라는 역할이 시대를 초월해서 어떻든 간에 집안의 가장이고, 집안의 기둥이고, 또 집안의 생활조건 주체가 바로 아버지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도 보게 되면 그 아버지가 평생 30여 년 동안 외판원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는 말씀이에요. 사고도 생길 수 있고 그렇지만 그렇게 무릅쓰고 다니는 건 뭐냐, 본인만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가족이라는 전체를 생각해서 노력을 한 아버지라는 말이에요. 마지막에 결국은 돈 걱정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는 말이에요.

그게 아버지의 역할이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자식들 입장에서 볼 때는 '우리 아버지가 우리한테 정말 관심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본심은 역시 가정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 또 그 책임감 때문에 여기에 평생을 바치고 사는 거예요.

◇ 김현정> 맞아요. 그게 예나 지금이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역할을 참 많이 하셨는데 몇 편이나 했는지 기억나세요?

◆ 이순재> 40대 들어서부터 서서히 아버지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50대, 60대, 70대 중반까지 갔는데요. 요즘에는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됐으니까 아버지의 아버지가 됐지. (웃음)

◇ 김현정> 재벌 아버지, 가난한 아버지, 완고한 아버지, 부드러운 아버지까지 안 해본 역할이 없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버지는 그 중에 어떤 아버지입니까?

◆ 이순재> 가장 대표적인 건 '대발이 아버지', 그 다음에 과거에 KBS에서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들의 그 아버지, 아주 평범한 아버지, 그러면서도 가사에 늘 관심을 가지는 그런 아버지들.

◇ 김현정> 이순재 선생님은 실제로 가정에서 어떤 아버지세요?

◆ 이순재> 사실 우리 애들한테 아버지 구실 제대로 못 했어요. 왜냐하면 변명 같지만 그때는 요즘처럼 무슨 영화 한 편 찍고 TV 드라마 하나 해서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영화도 동시에 한 10편 계약하고 같이 찍고 넘어가야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TV도 한 두 프로 계속해서 해야 되는 입장이에요. 그러니까 한 달에 집에서 자는 시간이 많으면 일주일 아니면 닷새예요.

◇ 김현정> 한 달 30일 중에 닷새밖에?

◆ 이순재> 그럼요, 20여 일은 바깥에서 주야주야로 뛰는 겁니다.

◇ 김현정> 나중에 아이들이 아버지인 줄 알기는 아나요? (웃음)

◆ 이순재> 우리 아이들이 그러죠. "우리 어렸을 때 아버지는 뭐했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애들이 인사해요.

◇ 김현정> 저는 굉장히 근엄한 아버지의 모습이실 것 같았는데 그럴 시간, 여유조차 없으셨네요?

◆ 이순재> 나는 그렇게 근엄한 입장은 아니에요. 자연히 그런 역할을 못하다 보니까 애들한테 군림할 수 있는 그런 아버지도 아니고. 그냥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

◇ 김현정> 지금 이 선생님의 아버님은 생존해 계시나요?

◆ 이순재> 돌아가신 지 한참 됐어요.

◇ 김현정> 아버지, 어떤 분이셨습니까?

◆ 이순재> 조언자고, 격려자고. 예를 들어서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연극을 시작하고 배우의 길을 들어서야겠다고 결심해서 이걸 선택했는데 이게 체면이 있지, 집에다 대고 연락을 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돈 달라는 소리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감추고 몰래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면회를 가보니까 우리 아버지가 오셨더라고요.

오셔서 이렇게 보니까 한심하지. 꼴이 뭐, 그때 두 끼 정도 먹고 뛸 때니까. 처량한 모양이더라. 이렇게 보더니 “이거 꼭 해야 되겠느냐?” 그러더라고요. “이제 길이 없다. 최선을 다해서 할 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래, 앞으로의 세상은 뭐든 일류가 되면 밥은 먹지 않겠느냐.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라.” 용돈 주고 가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제 나는 연극 시작하면 초대권하고 프로그램을 집으로 붙이는 거죠. 올라와서 용돈 좀 주고 가시라고. 그런 아버지였어요.

◇ 김현정> 대단한 아버님이시네요. 사실은 서울대까지 나온 아들이 공부 안 하고, 좋은 데 취직 안 하고 연극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밀어줄 아버님이 그 시절에 그리 많지는 않았을 텐데요?

◆ 이순재> 그렇죠. 어쨌든 말려봤자 소용없는 걸 판단하셨으니까.

◇ 김현정> '꼭 해야겠니?' 하면서도 '잘 챙겨먹어라' 하면서 돈 쥐어주고 떠나시던 그 장면..

◆ 이순재> 그렇죠, 그렇죠. 그 다음부터 내가 이제 마음 놓고 여기에 정진하게 된 중요한 일이 바로 그 계기죠.

◇ 김현정> 그렇군요. 이제 자녀 입장도 돼보고 어버이 입장도 돼보고, 이 입장 저 입장 다 겪어보시니까 옛날에는 잘 이해 안 가던 부모님들의 마음이 ‘아, 이래서 그러셨구나.’ 이해 가는 게 많으시죠?

◆ 이순재> 그렇죠. 그래서 이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아들, 딸이 말 안 들으면 "네가 키워봐라. 네가 아들, 딸 키워서 부모가 되면 우리 입장 알 거다" 하는 얘기가 그 얘기예요. 그리고 부모들이라는 게 아무래도 내리사랑이란 말이야. 그게 넉넉할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마음은 나타나는 조건하고 또 다르다는 말이야. 그런데 자식의 입장에서는 그 편차에 따라서 부모한테 불만을 가질 수 있고 또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는데, 자기들이 자식을 키우면 우리하고 똑같은 입장이 된다는 말이야. 그때 비로소 '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이야기했던 게 바로 그 얘기구나' 하는 겁니다.

◇ 김현정> 오늘 아버지 자격으로 모셨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치열하게 살고 있을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힘내라고 한 말씀 해 주시죠.

◆ 이순재> 힘내세요. 요즘 사실 직장 다니는 아버지들은 통장을 마누라한테 뺏겨서 상당히 기가 죽었겠지만, 우리 때는 그래도 통장을 내가 쥐고 있었거든. (웃음) 가장 중요한 주권을 뺏긴 입장에서 좀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야 되겠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부드러우면서도, 그러면서도 꼭 지켜야 될 가치관, 이건 어려서부터 다져줘야 됩니다.

◇ 김현정> 오늘 어버이날인데 어떻게 자녀들한테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받으셨어요?

◆ 이순재> 저는 이제 뭐, 다 커서. 애들도 다 40대가 됐는데요. 자기 애들 챙기기 바쁘고 자기들이 바쁜데 뭐. 나는 지금 촬영 나와 있어요.

◇ 김현정> 아, 그러셨군요. 비싸고 싸고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전화 한 통화라도 그 안에 진심을 담아서 하면 좋을 거 같아요.

◆ 이순재> 그렇죠. 꽃다발 안 갖다 드리더라도 전화 한 통화면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무슨 아이들한테 뭘 바라나.

◇ 김현정> 맞아요. 진심을 담은 전화 한 통 오늘 잊지 마시고요. 오늘 어버이날에 귀한 말씀 전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이순재 선생님, 좋은 연기 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