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5/16(수) 노라노 패션 디자이너 "대한민국 1호 패션디자이너"
2012.05.16
조회 50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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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만날 분은 한국의 코코샤넬로 통하는 분입니다. 국내 패션디자이너 1호로 최초로 해외 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이자 국내 최초로 패션쇼를 열기도 한 분인데요. 올해 여든넷 되신 현직 디자이너입니다. 이분이 다가오는 23일부터 패션 인생 60년을 담은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지금 화제인데요. 직접 만나보죠, 패션디자이너 노라노 씨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 선생님, 안녕하세요?

◆ 노라노> 네, 노라노입니다.

◇ 김현정> 올해 연세가 정말 여든넷이 맞으세요?

◆ 노라노> 꼭 그렇게 콕 짚으셔야 돼요? (웃음)

◇ 김현정> (웃음) 몇 년생이십니까, 그러면?

◆ 노라노> 28년생이요.

◇ 김현정> 정말 정정하시네요, 그런데. 노라노라는 이름은 본명은 아니시죠?

◆ 노라노> 노명자

◇ 김현정> 노명자, 그 이름도 구수하고 괜찮네요.

◆ 노라노> 명자 이름은 너무 순하잖아요.

◇ 김현정> 순해서. 그런데 노라노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셨어요?

◆ 노라노> 제가 미국에 유학을 가면서 미국 이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지은 이름이죠, 노라.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죠. 인형의 집의 노라가 가장 신여성이라고 그럴까?

◇ 김현정> 신여성, 아주 독립적인 여성. 그러면 패션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신 것은 몇 년인 건가요?

◆ 노라노> 디자이너가 된다는 생각은 못 하고요.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려고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에 군정이 있었죠, 군사정권.
영어하고 타이핑을 할 수 있으면 취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공부를 해서 취직을 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이제 취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행장님이 거기서 주말마다 파티가 있어요.

◇ 김현정> 원래 미국 사람들이 파티를 자주 하죠.

◆ 노라노> 토요일 날 오후가 되면 거기로 파견이 돼서 도움을 줘야 돼요. 통역을 해 줘야 되거든요, 일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렇게 다녔었는데 하루는 거기서 제일 높은 분이 저더러 수고가 많으니까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오라고 그래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이에요?

◆ 노라노> 파티에 참석을 하라고.

◇ 김현정> 파티에 초대를 받으신 거예요.

◆ 노라노> 네, 그래서 처음으로 초대를 받아서 파티에 참석을 했는데. 그 후로는 계속 제가 이제 토요일 날이면 참석을 하게 됐어요, 파티에.
옷이 필요하니까 시장에 가서 그 당시에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일본 옷은 튿어서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었어요.

◇ 김현정> 일본 사람 옷을 사다가 다시 뜯어서 이브닝 드레스를 만들어서.

◆ 노라노> 제가 이제 옷을 만들 줄 아니까.

◇ 김현정> 옷 만드는 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 노라노> 우리가 일제시대 학교에서 재봉을 가르쳐요.

◇ 김현정> 재봉시간에 배운 기술로 드레스를 만드셨어요?

◆ 노라노> 네, 그래서 입었었는데. 재무부 국장급 되는 분의 부인이 저한테 물으시더라고요. “너, 네 옷을 어디서 샀느냐?”

◇ 김현정> 그 멋진 드레스는 어디서 샀니, 이렇게?

◆ 노라노> “제가 이거 만들어 입었어요”,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분이 놀라시면서 모든 사람한테 “얘가 패션디자이너로 소질이 있는 것 같지 않냐. 자기 옷을 자기가 해서 입었다고 그러는데 매번 멋쟁이로 입고 오더라. 우리 공부시키면 어떠냐?” 그렇게 됐어요.

◇ 김현정>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 노라노>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되더라고요.

◇ 김현정> 미국에 가긴 갔지만, 가서 미국인들과 함께 생소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공부한다는 게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 노라노> 제가 아르바이트 할 적에 단추를 꿰맨다든가 뭐 단을 한다든가 이런 일부터 좀 시작을 했어요, 아르바이트를. 그런데 이제 경험이 잘 없으니까 뭐 잘못되면 사람들이 웃더라고.

◇ 김현정> 동양에서 온 어떤 어린 여자아이가 여기 와서 이런 것도 못하는구나 하면서 처음에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어요.

◆ 노라노> 그때 제가 미국 가는데 원 웨이(one way)가 미불로 1000불이에요. 비행기표가 100불이 안 될 땐인데. 그러니까 엄청난 돈을 갖다가 무리해서 한 건데. 제가 그때마다 그랬죠. “아니, 내가 배울 게 있으니까 원 웨이(one way) 1000불을 내고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지 잘한다면 여기까지 왔겠느냐”고 이러고 한 적이 있어요. 그건 기억에 남습니다.

◇ 김현정> 당당하게. 그랬더니 그쪽의 반응이 어때요, 그렇게 당당하게 말했더니?

◆ 노라노> 아무 말도 못하죠.

◇ 김현정> 그야말로 찍소리 못하게 만들어 노셨군요. (웃음)

◆ 노라노> 그렇죠.

◇ 김현정> 그래요,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바로 한국으로 와서 어떻게 의상실을 차리신 건가요?

◆ 노라노> 뭐 그때 의상실을 열어봤어야 손님이 있어야죠. 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옷을 해서 입을 사람이 있나요. 길에 나가서 동창생을 만나면 억지로 데리고 와서 제가 옷을 해 입혔어요.

◇ 김현정> 명동숍으로 데리고 와서.

◆ 노라노> 연습을 해야 되니까, 배운 것을.

◇ 김현정>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양장점을 점점 키워가신 거군요.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니까 패션쇼도 역시 국내 최초로 여셨겠어요?

◆ 노라노> 네, 이제 그리고 6.25가 나고 52년에 정식으로 개업을 했죠.

◇ 김현정> 그럼 지금까지의 얘기는 6.25도 나기 전의 얘기예요?

◆ 노라노> 네, 그렇죠.

◇ 김현정> 정말 옛날, 정말 옛날 얘기.

◆ 노라노> 49년에 돌아왔으니까 50년에 우리 6.25가 났잖아요.

◇ 김현정> 그래서 52년에 정식으로 의상실 문을 열었어요. 그러면 그 단골손님들 중에 50년, 60년 이렇게 된 분들도 계십니까?

◆ 노라노> 짧게는 20년, 길게는 거의 60년 그런 분도 계세요. 그런데 이제 혼자가 아니시고 60년쯤 되면 2대로 걸쳐서 입으시는 거죠.

◇ 김현정> 그렇겠네요. 2대, 3대에 걸쳐서 입는 옷들.

◆ 노라노> 4대까지 있어요.

◇ 김현정> 4대까지 심지어는. 그런 특별한 손님들도 있고 또 여배우들 옷도 많이 지어주셨다고요?

◆ 노라노> 가장 고급스럽게 만든 것은 최은희 씨의 ‘춘희’ 그 영화 의상이 가장 고급스러웠어요. 그리고 김지미 씨의 ‘양귀비’ 양귀비 영화의 의상이 굉장히 비싼 옷이었죠.

◇ 김현정> 비싸다는 것은 얼마나 비쌌어요?

◆ 노라노> 120만원이었어요, 한 프로.

◇ 김현정> 1962년에 120만원?

◆ 노라노> 네.

◇ 김현정> 그럼 지금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하네요.

◆ 노라노> 굉장한 돈이죠. 그래서 그때 그 의상들을 극장에서 다 디스플레이해 주고.

◇ 김현정> 전시회까지 그랬던 기억들. 지금 옛날 얘기 하려면 10분이 모자를 것 같아요.

◆ 노라노> 맞아요, 한도 끝도 없죠.

◇ 김현정> 10분으로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 젊은 감각을 어떻게 유지를 하세요. 여든넷인데 어떻게 현직으로 뛰세요?

◆ 노라노> 글쎄요, 그냥 하고 있는 거죠 뭐.

◇ 김현정> 참 대단합니다. 현직이라는 그 자체가 저는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한데.

◆ 노라노>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는 이제 장인정신을 잘 안 알아주잖아요. 그런데 제가 브라운대학에서 강연을 갔을 적에 그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데 교수님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반세기 같은 일을 계속했다는 것을 가지고 무조건 인정해 주시고 대우해 주시더라고요.

◇ 김현정> 그런 게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실은 부족해요.

◆ 노라노> 아직은 그런 오래했다고 칭찬받은 적은 별로 없거든요. (웃음)

◇ 김현정> 제가 이런 인터뷰를 참 많이 합니다.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분들 인터뷰를 많이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정말 이런 분들에 대한 대우가, 예우가 아직 너무 부족하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오늘도 또 그 생각이 드네요. 언제까지 현장에서 디자인 하실 거예요?

◆ 노라노> 사람이 사는 동안 생산적으로 살아야지만 그게 사는 거지 놀면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게 되겠죠, 언제든.

◇ 김현정> 그럼요, 그럼요. 언제 한번, 저도 한번 옷 입을 기회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웃음)

◆ 노라노> 네, 한번 찾아오세요. 좋습니다. (웃음)

◇ 김현정>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