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5/15(화) 박영도 수원제일평생학교 교장 "내 인생의 8할은 야학과 함께"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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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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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수원제일평생학교 박영도 교장 선생님



5월 15일 오늘 스승의 날입니다. 어떻게 선생님들께 전화 한 통화, 옛 스승들께 전화 한 통화 하셨습니까?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많은 스승들 가운데서도 좀 특별한 분과 얘기를 나눠볼 텐데요. 7, 8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야학. 이게 요즘도 있을까 싶은데 그때만큼 많지는 않습니다만, 있습니다. 무려 30년이 넘게 야학을 지켜오고 있는 스승. 학생수가 한 200명 된다고 그래요. 수원제일평생학교의 박영도 교장선생님 만나보죠. 선생님, 안녕하세요?

◆ 박영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이게 30년이 넘었다면 몇 년도에 시작하신 거죠?

◆ 박영도> 저는 학생시절인 79년도부터 야학을 알게 돼서 82년부터 한 거니까 한 31년째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보통은 대학생 때 봉사활동으로 야학을 하다가도 사회인 되고 나면 멀어지게 마련인데. 어떻게 쭉 계속 해 오셨어요?

◆ 박영도> 뭐 제 삶에서 야학이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 같고요. 그게 제가 사회에서 가장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럼 이 일만 하십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직업이 또 있으세요?

◆ 박영도> 저는 회사원이고요. 99년도부터 시작한 벤처기업의 직원 한 10명하고 같이 일을 해결하고 있는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말하자면 요즘 얘기하는 투잡족이시네요.

◆ 박영도> 그렇습니다.

◇ 김현정>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 가르치고, 이런 식으로. 30년 전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야학 풍경도 많이 달라졌죠?

◆ 박영도> 많이 달라졌죠. 그 당시 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야학의 학생들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공부를 못하거나 어린 친구들이 주대상이었다면, 지금은 한때 이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 학습자들 50, 60대가 주류를 이루는 그런 성인 학습자들이 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럼 요즘에는 학생들이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런 게 대부분이겠어요?

◆ 박영도> 그렇죠, 그래서 저희가 이제 소위 학습자들 모시고 공부하고 있는 그런 일들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31년, 그럼 지금까지 제자 수가 얼마나 됩니까?

◆ 박영도> 글쎄, 뭐 어림잡아 1800명에서 2000명 내외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2000명 얼굴이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으시죠?

◆ 박영도> 그래도 제 기억 머릿속에는 대충은 기억을 하고 있는데 최근 한 10년 전에 졸업한 분들은 기수별로 이름을 다 암기하고 있는 그런 정도에 있습니다.

◇ 김현정> 1800, 2000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어떤 분인가요?

◆ 박영도> 글쎄, 이제 가장 최근에 일이라고 한다면 회갑 가까이 되신 어르신이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방송통신대학교를 4년 만에 졸업을 하신 그런 제자분도 계시고요. 제가 초창기에 또 가르쳤던 제자 중에는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 치과대학을 졸업해서 치과의사로 개업한 친구도 있고. 여러 제자들이 생각이 나네요.

◇ 김현정> 그러니까 가정이 어려워서 야학을 다니다가 서울대 치대에 들어갔어요?

◆ 박영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아마 가난해서 야학에 왔던 학생이지만, 지금은 이 제자가 선생님보다 더 부자가 됐겠어요? (웃음)

◆ 박영도> 아마 경제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죠.

◇ 김현정>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하십니까?

◆ 박영도> 네, 가끔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항상 화환도 보내주고 중간 중간 문안 전화도 주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런 보람 때문에 회갑 넘긴 분, 한글 모르던 분이 한글 알고 “고맙습니다.” 하는 그런 보람. 또 가난하던 학생이 이제 나보다 더 부자가 되는, 그런 보람 때문에 30년 운영하시는 거겠죠?

◆ 박영도> 그런 것이 제 가는 길에 큰 힘이 된다고 볼 수 있겠죠.

◇ 김현정> 그런데 아무리 그런 보람이 있더라도 야학이 비정규학교다 보니까 운영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어떻게 운영하세요?

◆ 박영도> 이제 이런 일련의 일들이 NGO의 활동이니까 가장 큰 어려운 점이 경제적인 문제죠. 그래서 뭐 시라든지 이런 지자체에서 저희 운영의 한 30, 40%를 지원을 해 주시고요. 나머지 부분은 또 저희 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이 십시일반도 해 주시고.
나머지 부분은 전체 운영비의 한 40% 내지 50% 되는 것은 운영자인 제가 알아서 해야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 김현정> 알아서? 알아서 한다는 건 어떻게 사비를 털어서 하신다는 말씀이세요?

◆ 박영도> 그렇죠, 뭐 제가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나 또 여러 분들께 도움을 요청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서로 해결해 가야 되고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집에서 아내분이 이게 이해를 해 주지 않으시면 결코 30년 불가능한 일인데. 이제는 좀 그만하세요. 말리지는 않으십니까?

◆ 박영도> 늘 그렇죠. 이제 할 만큼 했으니까 그만두는 게 어떠냐 하면서도 아주 뭐 결사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묵시적으로는 격려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얼마나 더 하실 생각이세요, 야학?

◆ 박영도>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죠. 얼마가 되든지 간에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한은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요즘도 학생들이 꾸준히 옵니까? 사실 야학이 많이 없어졌고 요즘은 돈 없어서 한글 못 배우고 학교 못 다니는 학생은 없지 않나, 이런 생각들 많이 했는데. 꾸준히 오나요?

◆ 박영도> 지금은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지만, 정신적으로 결핍되거나 또 가정 붕괴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이제 공부 기회를 놓친 사람들도 있고요.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성인 학습자들이죠. 한때 어려운 시기에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분들이.

◇ 김현정> 지금 와서 어디 가려고 해도 가서 배울 때도 없고 그런 분들. 그렇군요. 오늘 어떻게 이 학교에서도 스승의 날 행사 같은 거 하나요?

◆ 박영도> 저희 학교 선생님들이 한 마흔 분 정도 계시는데요. 대부분 현직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세요. 그래서 그분들이 오늘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학교에서 행사가 있기 때문에 저희는 내일 학습자들하고 졸업생들이 상을 차려줄 거고요.
아마 60대 제자들이 재롱잔치를 할 겁니다, 선생님들을 위한.

◇ 김현정> 그래요. 그것보다 더 뜻깊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뿌듯하실 것 같아요. 참 우리가 스승을 잃어버린 사회라는 얘기를 자주 하는데 오늘 진짜 스승님 뵙게 돼서 제 기분이 다 좋네요. 제자들 훌륭하게 많이 키워주세요.

◆ 박영도>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