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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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미얀마 출신 난민 조모아 (Zaw moe aung)
정치 혹은 종교적인 문제, 전쟁, 가난 등의 이유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국적을 상실한 사람. 내국인은 아니지만, 내국인처럼 기본권을 인정받은 사람. 이런 사람을 난민이라고 합니다. 난민 하면 아주 특수한 케이스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지금 우리나라에 입국을 신청한 난민이 한 1000명이 된다고 그래요. 마침 오늘이 세계 난민의 날이어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난민 인정을 받은 한 분 연결을 해 보겠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분이세요, 조모아 씨 연결이 되어 있어요. 안녕하세요?
◆ 조모아>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난민으로 인정된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 조모아> 제가 2008년도에 난민 신청했으니까 4년 정도 되었습니다.
◇ 김현정> 4년 정도. 조모아 씨처럼 우리나라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분이 총 몇 명이나 되나요?
◆ 조모아> 정확하게 모르지만, 아마 200명 이상 있는 것 같았습니다.
◇ 김현정> 200여 명.
◆ 조모아> 네.
◇ 김현정> 그럼 조모아 씨는 원래 미얀마에서 어떤 일을 하던 분이세요?
◆ 조모아> 제가 1988년 버마 민주봉기 일어난 이후에 같이 민주화 운동 했기 때문에 미얀마 민주화에 대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88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그때 참여했던 민주화 운동가가 되는 거군요.
◆ 조모아> 네.
◇ 김현정> 그러다가 민주화 운동이 탄압이 심해지자 탈출을 한 겁니까?
◆ 조모아> 아주 심하고요. 우리 선배들, 후배들도 제 앞에서 사망당하고, 고문당한 사람들 엄청 많았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그래서 탈출을 해야겠다, 여기를 떠나야겠다라고 생각은 했는데.
나가서 민주화 운동은 해야겠다 생각은 한 건데. 왜 그 많은 나라 중에 하필 한국이었습니까?
◆ 조모아> 한국이 아시아 내에 같이 싸운 나라도 되고요.
한국과 버마의 역사도 아주 비슷하고요. 또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경험이 많이 있는 나라라서 한국에 가서 민주화 운동 하게 되면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서 우리 한국을 선택했습니다.
◇ 김현정> 민주화의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라, 그래서 한국.
한국행을 결심은 했는데 어떻게 난민으로 탈출을 하는 건가요, 저는 그것도 궁금해요.
◆ 조모아> 처음에는 우리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음에 불법체류자로 살았어요.
불법체류자로 한국 내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또 버마 민주화도 계속해야 되기 때문에 한국 시민들하고 한국 단체들이 좀 “당신이 이렇게 계속 버마 민주화를 하게 되면 위험하다. 따라서 추방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민 신청하면 한국은 난민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난민 신청해 보라“고 그래서 우리 난민 신청했습니다.
난민 신청 중에도 우리 동지들도 차별당하다가 추방당한 분도 있었습니다.
◇ 김현정> 추방당한 사람도 있고. 그런데 조모아 씨 같은 경우에는 그럼 난민으로 신청하고 나서 얼마나 기다리신 거예요? 허가가 나고 나서?
◆ 조모아> 저는 2000년 5월 달에 난민 신청하니까 2008년에 그러니까 8년 만에 난민 신청 받았습니다.
◇ 김현정> 8년 만에?
◆ 조모아> 네.
◇ 김현정> 그럼 8년 동안 기본권 인정을 못 받으니까, 어디 직업도 못 구하고 어떻게 그 기간을 버티셨어요?
◆ 조모아> 사실은 많이 힘들었죠. 그렇지만 우리도 사람이니까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장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을 했습니다.
◇ 김현정>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 조모아> 그렇지만, 일을 할 수 없지만 서로가 이해해 줬기 때문에 제가 일을 하게 됐습니다. 이 타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 김현정> 그러다가 대법원까지 가서 난민 신청이 드디어 받아들여졌을 때, 그때는 어떤 기분.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을 것 같아요.
◆ 조모아> 그럼요. 제가 난민 신청 중에 얼마나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또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기분이 아마 좋아졌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한국으로 난민으로 와서 지금 살고 있는. 그럼 지금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세요?
◆ 조모아> 지금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 김현정> 어떤 일을 하신다고요?
◆ 조모아> 물티슈 회사에서 제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물티슈 회사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받으면 참정권만 제외하고는 기본권을 다 얻는 거니까, 삶이 훨씬 좀 더 나아지겠어요?
◆ 조모아> 네. 난민 신청자하고 난민 인정자 별로 많이 차이나지 않아요.
왜냐, 난민 인정자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고 또 다음에 의료보험도 혜택이 있기 때문에 이것밖에는 이 이후에는 따로 없습니다.
◇ 김현정> 그 말씀은, 그 말씀은 그러니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도 여전히 난민에 대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어떤 시각, 이런 것은 크게 변하지 않더라. 이런 말씀.
상처받은 일이 많으셨나 봐요?
◆ 조모아> 저도 지금 많이 난민 인정받았지만, 어디 국내 통장도 있잖아요. 통장도 자유롭게 만들 수가 없어요.
◇ 김현정> 통장.
◆ 조모아> 네. 통장. 또 다음에 뭐냐 하면 우리 외국인 등록증만 보여줘도 안 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 김현정>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주는데도 난 난민 지위 인정받았다 하는데도 안 만들어줘요?
◆ 조모아> 안 만들어줘요. 왜냐하면 여권을 보여줘라. 여권은 우리가 난민 신청을 하니까 여권은 우리 원래는 대사관에서 우리가 연장해요. 우리 대사관에서는 안 되잖아요.
◇ 김현정> 대사관이라는 게 없는 거죠. 사실 국적이 없는 거죠, 난민이란.
◆ 조모아> 네. 그래서 우리가 기간도 연장할 수 없고. 그래서 문제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우리는.
◇ 김현정> 알겠습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도 어렵지만, 받고 나서도 국가가 없는 신세라는 게 참 서럽다는 이야기인데.
미얀마, 사실 미얀마라는 이름은 군부가 바꾼 이름이라 조모아 씨는 버마라고 부르시죠?
◆ 조모아> 네. 우리는 해외에서는 버마 민주 운동가들은 버마로 하고요.
◇ 김현정> 조모아 씨. 버마가, 조국 버마가 다시 민주화가 되면 돌아가실 생각이세요?
◆ 조모아> 생각은 있습니다. 저도 버마 내에서 한국처럼 할 일들이 엄청 많습니다.
◇ 김현정> 할 일이 많다. 그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얼마 전에 국회의원, 하원의원 됐잖아요. 보시고는 감회가 남다르셨겠어요.
◆ 조모아> 기분이 좋습니다. 지금부터 버마 민주화는 100%는 아니지만 10% 정도는 시작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김현정> 10%는 시작했다, 민주화가.
그래요. 아무쪼록 우리도 엄연히 세계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고 작년에는 국회에서 난민들에 대한 인권보호법까지 통과를 시켰는데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는 거 오늘 좀 알았고요.
난민에 대한 시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버마가 빨리 민주화가 됐으면 좋겠다.
오늘 여러 가지 생각한 아침이네요. 오늘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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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20(수) 조모아 씨(미얀마) "난민의 날,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
201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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