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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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19(화) 신순애씨 "열세 살 청계천 봉제여공 환갑에 석사되다"
201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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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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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성공회대 정치경제학 대학원 신순애 씨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그 중에서도 피복공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하는 분들을 예전에는 ‘시다’라고 불렀죠. 그 당시 시커멓게 먼지가 쌓인 곳에서 시다라고 불리우던 열세 살 어린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45년이 흐른 지금 이 환갑의 나이가 된 이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논문을 써서 석사학위를 받습니다. 이 감동의 이야기가 지금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직접 만나보죠.
성공회대 정치경제학 대학원 신순애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 신순애>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축하드립니다.

◆ 신순애> (웃음) 네. 축하받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감사드립니다.

◇ 김현정> 논문 제목이 아주 특이해요, ‘13살 여공의 삶.’ 뭘 담은 논문인가요?

◆ 신순애> 제가 어려서부터 평화시장 들어가 일하게 된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미싱기술자가 된 과정, 공장 내부에 일하는 과정들을 담았고요.
제가 청계 노조를 알고부터 전두환 정부가 강제해산될 때까지, 그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를 쭉 서열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쭉 썼지만, 그 안에는 우리 노동자들의 역사도 담겨 있고, 정치 이야기도 담겨 있고 두루두루 담겨 있는, 이런 논문이군요.

◆ 신순애> 네.

◇ 김현정>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봉제일 시작한 때가 13살, 그로부터 몇 년 동안 하신 거예요?

◆ 신순애> 66년부터 시작해서요. 약 25년 이상은 했을 겁니다.

◇ 김현정> 한번 그 66년 13살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 신순애> 네.

◇ 김현정> 몇 시간이나 일하셨어요, 66년에는?

◆ 신순애> 출근시간은 아침 8시고요. 퇴근 시간은 거의 집에 따라서 달랐어요.
예를 들면 성남 사는 친구는 10시 반, 창동 사는 친구는 11시. 중랑구, 뚝방. 이런 데 사는 친구. 저 같은 경우에는 11시 20분, 창신동 문화촌, 신당동 이런 친구는 11시 30분.

◇ 김현정> 왜 다른 겁니까? 퇴근시간이?

◆ 신순애> 12시에 통행금지가 있으니까 그 직전까지 일하는 거죠.

◇ 김현정> 일할 수 있는 데까지.

◆ 신순애> 사장들은 성남 사는 친구들을 되게 싫어했어요.
그래서 반대로 그걸 아주 재미있게 이용하는 친구들은 “성남 산다”고 그러고 10시 반에 퇴근해서 약간 2, 30분 여유를 느끼기도 했었죠. (웃음)

◇ 김현정> 그래요. 업무 시간도 시간이지만, 환경이 아주 열악했잖아요. 어떤 장면들 기억나세요?

◆ 신순애> 어떤 장면? 제가 그러니까 배고픈 거. 우리가 기본, 뭐라고 그러나 자연의 섭리. 배고픈 거, 우리가 먹고 자고 싸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거잖아요. 그걸 마음대로 못했고요. 더 힘들었던 건 제가 사춘기 접어들면서 생리할 때는 정말 제가 논문 주제도 ‘악몽의 생리’라고 썼는데.
그때는 정말 아주 지금도 악몽으로, 나의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김현정> 가장 기본적인 건데, 생리현상. 그것조차 감시를 받고.

◆ 신순애> 마음대로 할 수 없었죠.

◇ 김현정> 화장실 못 가게 했어요?

◆ 신순애> 물론 못 가게 하지는 않았는데요.
일단 화장실을 가면 제가 논문에도 수록을 했는데. 앞에 2, 30명이 줄을 서 있는 거예요.
그러면 최소한 3, 40분은 기다려야 됐고요. 생리할 때, 설사 가방 속에 생리대가 있어도 공장에서 일단 일이 바쁘니까 마음대로 못 가고.
또 화장실을 가면 또 그렇게 줄을 서야 되고. 때로는 “야, 왜 또 화장실 또 가냐.” 이렇게 핀잔주기도 해서. 그런 것들이 제일 힘들었죠.

◇ 김현정> 그렇게 일하고 월급 얼마나 받으셨어요?

◆ 신순애> 600, 700원 그랬습니다.

◇ 김현정> 600원, 700원이면 그 당시에 쌀 한 가마니가 얼마였습니까, 쌀 한 가마니?

◆ 신순애> 제가 이번에 조사해 보니까 3560원이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면 쌀 한 가마니 값도 안 된다는 얘기네요, 한 가마니가 안 되는.

◆ 신순애> 네.

◇ 김현정> 그래요. 그렇게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팍팍한 삶이었는데.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 신순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노동자가 주인이 되지 않는 세상, 아니면 노동을 천시하는 세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있어서.
우리는 노동자를 보면 ‘아, 정말 피땀 흘려서 너무 열심히 살고 보람된 분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교육시킬 때, 공부하지 않으면. “야, 저 아저씨 보이지?” 길거리 지나가다가 청소하는 아저씨 보고는 “너, 저 아저씨 보이지?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처럼 저런 거 해야 돼.” 하면서, 그래서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마음 아프죠.

◇ 김현정> 그러네요. 초중고 검정고시 차례대로 통과하고 이번에 석사까지.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한 건데.
학사모 쓰고 졸업장 받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 어려움을 버티셨을 것 같아요.

◆ 신순애> 아니,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 김현정> 그건 아닙니까? (웃음)

◆ 신순애> 네.

◇ 김현정> 이름도 없이 7번 시다라고 불리다가 석사 학위를 딱 받던 날, 그 날은 기분이 어떠셨어요?

◆ 신순애> 아직 받지 못했고요.

◇ 김현정> 그러십니까?

◆ 신순애> 8월 달에 정식으로 석사모를 받을 계획이고요.
현재는 마치 아이가 숙제를 끝낸 것처럼 홀가분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은 무겁습니다.

◇ 김현정> 왜 무거우세요?

◆ 신순애> 아직도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제가 1970년대, 그러니까 “월급 좀 올려달라”고 데모를 하면 정부기관에서 뭐라 그랬냐 하면. “1인당 국민소득 1000불만 되면 여러분의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
그런데 지금 2만불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그럼 2만불 시대면 제가 대충 계산해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 8000만원은 됩니다, 소득이.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연소득 8000만원 된 가정이 몇이나 있는지, 참 가슴 아픕니다.

◇ 김현정> 그래요, 지금 청취자 1233님도 “지금도 봉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도 못 켜고요.” 이런 문자도 주셨는데.
알겠습니다, 이번 논문이 좀 계기가 돼서 이런 사정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좀 다른 세상, 다른 환경이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혹시 책으로 출판되면 제가 꼭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신순애> 감사합니다.

◇ 김현정>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오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