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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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6/15(금) 김별아 작가 "40년 평지형 인간, 백두대간을 타다"
2012.06.15
조회 405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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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소설가 김별아



누군가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구도 산을 대신 타줄 수는 없습니다.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고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으로 밀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산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길섶에 꽃과 풀이 눈에 들어오고.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아이들의 노래와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미실’로 유명한 작가죠, 김별아 작가가 쓴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한 구절을 읽어드렸습니다. 김별아 작가는 “인생의 절반을 나는 평지형 인간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살아왔다는데. 어느 순간 동네 뒷산도 아니고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됩니다. 그것도 심야 산행으로 종주를 했다고 해서 지금 화제인데요. 직접 만나보죠. 작가 김별아 씨,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 선생님?

◆ 김별아>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그러니까 백두대간을 얼마 만에 성공하신 거예요?

◆ 김별아> 저희는 한 달에 두 번씩 해서 20개월 동안 39차 산행을 통해서 완주했습니다.

◇ 김현정> 20개월, 거의 2년 동안?

◆ 김별아> 네.

◇ 김현정> 그렇게나 오래 걸리나요?

◆ 김별아> 그걸 쭉 이어서 하시는 분들, 한 50여 일 걸리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이제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학생 동아리였기 때문에 다 생업도 있고 이제 학업도 종사하고 있고 이러니까 휴무일에만 갔었죠.

◇ 김현정> 혼자 종주하신 게 아니라, 학교의 학부모. 또 아이들 다 데리고?

◆ 김별아> 네.

◇ 김현정> 그래요. 실은 저도 평지형 인간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지리산 한 번 도전했다가 실려 내려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백두대간을 완주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 김별아> 제가 고백한 대로 정말 40년을 절대로 저는 산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싫어한다고 심지어 생각을 하고 살았고요.
제가 과천에 10년 이상을 살았는데 청계산을 한 번도 안 올라가 봤어요.

◇ 김현정> 정말 제대로 평지형 인간이시네요.

◆ 김별아> 그래서 이렇게 평지만 살살 걸어다니고 그랬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이제 인생의 반고비인 것 같고.
그래서 이전에 살아오던 방식과 좀 다르게 살고 싶다. 이게 가장 컸었고요. 그래서 제 인생 중에 가장 싫어했던 걸 한번, 꺼리고 피했던 걸 한번 해 보자. 그 생각이 있었고.
저희 아이랑 또 같이 종주를 했기 때문에. 제가 뭐 돈이나 집을 물려주지는 못할지라도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 이런 생각도 있었고요.
그리고 뭐 백두대간이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정말 우리 전통 지리관에서 얘기하는 한반도의 등줄기잖아요.
그래서 맨날 산을 타고 다니면서 보던 그 마루금, 능선을 걷는 거기 때문에.
직접 우리가 사는 삶터를 내 발로 밟아본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겁이 없어서, 저도. (웃음)

◇ 김현정> 그럼 힘든 적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
특히 그런 이유가 심야산행을 택했어요, 심야산행?

◆ 김별아> 그게 밤에 계속 걸은 건 아니고요.
저희가 무박산행을 주로 하고 한 6번, 7번 정도 1박 2일을 했었는데.
다들 금요일 날 한 동절기에는 한 새벽 3시에 출발하고 하절기에는 새벽 1시 또 출발해서 도착하면 한 4, 5시 이렇게 돼서 헤드랜턴 끼고.
그렇게 해야 하루치 산행 거의 나오니까 불가피하게 그렇게 했습니다.

◇ 김현정> 가장 힘들었던 기억 대라고 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셨겠네요?

◆ 김별아> 늘 초반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미친 짓을 하나. 늘 투덜거리면서 다녔고요.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데는 구간마다 다 그렇기는 한데.
대야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정상까지 한 100m 정도가 직각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암벽까지 등반장비를 갖추고 하지 않는데. 거기는 진짜 자일을 걸고 마지막에는 안 올라가져서 올라갔는데.
팔, 다리가 다 후들거리고. 그런데 막 살겠다고 줄에 매달려서 대롱거리면서 제가 사실은 굉장히 오만하게 삶과 죽음을 함부로 논했구나. 정말 삶이 본능이구나, 너무나 살고 싶더라고요, 거기서는. 기억이 많이 나요.

◇ 김현정> 종주를 하면서 속으로 외친 구호도 ‘까불지 말자’였다면서요?

◆ 김별아> 저희 팀의 구호가 ‘까불지 말자’였는데.
그게 아이들도 있고 이러니까 안전이 가장 큰 문제고요. 그리고 중간중간에 국립공원들은 굉장히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등산객분들이 많이 생겨서 길들이 좋은데.
중간에는 그런 이정표도 없고 정비되지 않은 길들이 굉장히 많아요, 험해요.
그리고 경북, 문경, 괴산 이쪽 지역은 아주 험한데, 자칫 잘못하면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도 방심하거나 오만하면 어김없이 산이 가르치더라고요, 따끔하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 김현정> 그게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이고 산을 타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게 또 그런 의미죠.

◆ 김별아> 저는 울트라 왕초보이지만 어쨌든 간에 많이 배웠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 김현정> 책의 이름도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이런 제목인데. 산을 통해서 뭔가 좀 치유를 받으신 거예요?

◆ 김별아> 제가 1차에서 16차 산행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산행기를 냈었는데 그때 이제 제 고백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제가 별로 밝고 명랑한 아이가 아니었고 내면에 이렇게 우울함이나 상처 같은 게 많았던 편인데.
그게 절반 이상을 넘어가면서 서서히 그게 어느 한순간 이뤄진 게 아니고.
저 같은 경우 상당히 강박적인 완벽주의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꼭 해내야 되고 안 하면 못견디고 스스로 괴롭히고 이랬는데.
산을 사실 저희가 길게는 14시간, 15시간까지, 짧게 6시간 이렇게 탔으니까. 그렇게 하고 나면 정말 최선을 다하는 거거든요. 마지막 에너지 한 방울까지 다 쏟기 때문에 비관하거나 이렇게 좌절하거나 이런 게 없더라고요. 굉장히 성취감이 많고.
그래서 스스로 좀 많이 용서했습니다.

◇ 김현정> 용서, 산과 용서. 이 아침에 참 좋은 얘기였네요. 김별아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