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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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네 살에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아홉 살에는 이미 신동 소리를 들었고요. 13살에 미국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해서 19살에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에드가 리벤트리트 콩쿠르(Edgar Leventrit Competition)에서 우승을 합니다. 그로부터 전세계에서 섭외 1순위 바이올리니스트 종횡무진했습니다.
그런데 2005년에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치명적인 손가락 부상을 당하죠. 바이올린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무려 5, 6년 흘렀습니다. 정경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죠. 부상을 딛고 지난해부터 서서히 연주를 하다가 이번에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예술감독으로 모셔보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입니다. 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 정경화> 안녕하세요.
◇ 김현정> 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
◆ 정경화> 네, 언니하고 같이 합니다.
◇ 김현정> 마음에 드세요, 이 감독이라는 호칭은?
◆ 정경화> 아니요. 마음에 든다는 것보다 나는 감독, 그런 것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건 사양했는데. 아주 좀 흥미로운 것은 쭉 평생 같이 음악을 했던 언니랑 같이 이걸 한다는 게 의미가 있고 또 우리가 경험한 음악을 페스티벌에서 잘 진행해 나갈 수 있을 게 하도 흥분이 되어서. (웃음)
◇ 김현정> 언니랑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굉장히 흥미로우실 것 같아요.
◆ 정경화> 그렇죠.
◇ 김현정> 대관령음악제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다른 음악제와는 다른?
◆ 정경화> 위치가 너무 너무 아름답고요. 또 이번이 우리가 맡은 둘째 해인데요. 페스티벌로서는 아홉 번째고요. 그런데 이번에 아주 특별히 셀리브레이트할 것은 1300석이 들어가는 뮤직 텐트를 그러니까 옛날 축음기 모양으로 해서 지었는데 정말 큰 기대가 됩니다. 너무 아름다워요, 텐트가.
◇ 김현정>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여튼 무조건 할 수 있는 거네요, 텐트 안에서는.
기대가 됩니다, 대관령의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그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국제음작제. 거기에 예술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정 선생님.
◆ 정경화> 네.
◇ 김현정> 요즘 연주하는 거 어떠세요?
◆ 정경화> 연주하는 것은 현실 같지가 않고 굉장히 좀 꿈속에서 사는 것 같아요.
◇ 김현정> 꿈꾸는 기분.
◆ 정경화> 그래요. 왜 그러냐 하면 이건 완전히 보너스, 정말 손 부상당하고는 그때는 다시 연주를 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하도 그게 오래 갔기 때문에.
◇ 김현정> 우리가 2005년으로 잠깐만 돌아가 보죠.
그러니까 40년 동안 세계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는데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손에 통증이 왔어요. 그게 연주회가 시작되고 나서죠?
◆ 정경화> 그렇죠. 그때 러시아 오케스트라랑 협연을 갖다가 2회를 하기로 스케줄이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그 전에 벌써 제가 손 치료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손이 좀 좋지가 않아서.
그런데 그걸 갖고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에요. 그래서 연주 전에 하도 손이 아파서 다섯 군데를 가서 치료를 받다가 나중에는 수가 없으니까 “주사라도 또 조금 놔주세요.” 그랬더니 그게 완전히 마비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무대에 올라가서 그렇게 관중들한테 표를 돌려드리겠으니까 그 다음 연주는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번 연주는 3일. 2, 3일 후인가 3일 후인가 했어요. 하고 그러고 나서는 그 다음에는 전혀 못 했죠, 손이 완전히 망가져서.
◇ 김현정> 이제는 포기다, 끝이다. 이렇게 생각하신 거예요.
◆ 정경화> 아니, 포기가 아니고. 포기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되니까 아, 하나님께서 지금 나한테 원하는 뜻이 뭐고 내 사명이 뭔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후손들, 후손들 키우는 거. 그래서 줄리어드에서 그렇게 열심히 안 가르쳤는데 안 가르치다 보니까 정말 좀 답답한 게 학생들한테 보여줄 수가 없잖아요.
◇ 김현정> 내가 이걸 보여줘야. 그때도 손이 아예 안 움직인 거예요, 아예?
◆ 정경화> 왼손을 쓸 수가 없으니까 전혀 애들한테 보여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저한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죠. 왜냐하면 여태까지 순전히 직접 연주 생활을 하던 사람이 교수 노릇을 하려니까 그걸 딱 정리를 해서 조리 있게 얘기를 해 줘야 되니까.
◇ 김현정> 얘기를 해야죠, 가르쳐야 되는 거니까. 뭔가 이론화시켜야 되는 거니까.
◆ 정경화> 55분을 가르치면 5시간을. 어떻게든지 가르쳐줘야 되니까. 그럴 정도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저한테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잖아요.
◇ 김현정> 맞아요, 가르치면서 또 배우는 게 있으니까.
◆ 정경화> 그래서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손이 나아져서 재작년에 와서 아시카나지랑 브람스 콘체르토를 했는데 꼭 여자가 애를 배면 9개월 동안 애를 갖고 있지만 저는 5년 동안 그 아마 브람스가 뱃속에 있었던 모양이에요.
◇ 김현정> 5년 동안 브람스곡을 임신하셨다가 낳으신 거예요. (웃음)
◆ 정경화> 그래서 어떻게 기적적으로 그것도 재작년에 와서 브람스 콘체르토를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그래도 그게 상황을 이루고 마쳤어요.
◇ 김현정> 선생님, 그러니까 지금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도 저는 그냥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럼 지금 이제 다시 재기에 성공해서 5년 만에, 6년 만에 다시 선 정경화, 다시 만난 연주가. 자신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뭐가 달라졌고. 어떻습니까?
◆ 정경화> 지금은 너무 너무 한가하죠. 정말 제일 달라진 것은 제가 무대에서 긴장도 했고 또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가기 싫을 때도 있었고 굉장히 힘든 때가 많았었는데.
그리고 그때는 너무 완벽주의였기 때문에 만일에 실수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가든지 그러면 이건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내 책임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얼마나 수치스럽냐. 그리고 평생을 연주 생활을 그렇게 해 왔는데.
지금은 나가서 연주할 때 그렇게 자유스러울 수가 없어요. 정말 긴장을 안 해요, 나갈 때는.
◇ 김현정> 이제 즐기는 거네요.
◆ 정경화> 정말 아주 자유롭고 그 음악을 그냥 있는 대로 전달을 할 수가 있죠.
이건 정말 기가 막히죠. 기적적인 또 선물을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 김현정> 원래 보너스 받으면 말이죠. 사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그 보너스 받은 인생의 꿈은 뭡니까?
◆ 정경화> 그런데 저는 사고 싶은 것도 없고 지금 연주를 하는 게 제가 보너스를.
◇ 김현정> 그냥 지금 이 자체가 보너스예요. 더 이상 욕심 없어요.
◆ 정경화> 없죠. 그 이상 욕심낸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놈 하죠. (웃음)
◇ 김현정> (웃음) 참 큰 연주자의 큰 여유가 보입니다. 정경화 선생님, 이번에 대관령국제음악제 7월 21일부터 8월 11까지 열리는 이 음악제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잘 치르시고요. 앞으로도 무대에서 그 여유로운 연주, 아름다운 연주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정경화> 고맙습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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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9(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정경화가 대관령음악제를 키우는 뜻은"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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