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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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6(금) 김주원 前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김주원의 또다른 도전"
2012.07.06
조회 442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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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주원 前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 씨. 15년 간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동을 해 왔고요. 요즘에는 TV 예능프로그램 출연하면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고 있는 분인데요. 15년간 몸담았던 국립발레단을 떠납니다.
말하자면 프리랜서 발레리나가 된 건데. 며칠 전에 마지막 작품에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직접 들어보죠. 발레리나 김주원 씨입니다. 안녕하세요?

◆ 김주원>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국립발레단 무용수로서 마지막 공연을 일요일에 하셨다고요, 지난 일요일?

◆ 김주원> 네. 7월 1일 3시 공연으로 마지막 무대를 마쳤습니다.

◇ 김현정> 안 울었어요?

◆ 김주원> 저는 안 울 줄 알았는데 공연 다 끝나고 마지막 커튼콜 때 관객분들이 기립박수 치시는 것 때문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현실적인 눈물을 흘려봤던 것 같아요.

◇ 김현정>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죠, 그 순간에는.

◆ 김주원> 네. 그분들이 진심으로 저한테 15년 동안 국립발레단의 모습에 대한 박수를 쳐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 김현정> 지금 또 울먹울먹하시네요, 또. (웃음)

◆ 김주원> 아니에요. (웃음)

◇ 김현정> 그런데 김주원 하면 국립발레단이었고 국립발레단 하면 김주원이었고.
국립발레단의 얼굴 같은 분인데 왜 갑자기 이렇게 발레단을 떠나기로 하신 거예요?

◆ 김주원> 정말로 15년 동안 김주원이라는 이름 앞에는 저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라는 수식어밖에 없었어요. 그 외에 다른 수식어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국립발레단은 1년에 한 150회 정도 공연을 소화를 해내야 되는데 평상시에도 한 5개의 정도의 작품을 항상 연습을 하고 있어요.

◇ 김현정> 동시에, 연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군요.

◆ 김주원> 네. 그래서 이제는 제가 이렇게 다작보다는 한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고 충실하게 역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국립발레단의 얼굴이기도 하지만, 김주원이라는 아티스트로 관객분들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현정> 깊이 있는 변화를 좀 해 보고 싶었다, 이런 말씀이에요.

◆ 김주원> 네. 국립발레단에 있으면 아마 편하게 제가 좋은 작품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겠지만, 제가 열심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김현정> 그렇군요. 제가 기억이 나는 게 김주원 씨의 그 발사진이 한번 공개가 된 적이 있었어요.

◆ 김주원> 네.

◇ 김현정> 상처투성이에 반창고로 발가락 하나하나 동여맨 사진.
이게 발레리나 발이냐, 남자축구 선수 발이냐, 이런 댓글들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도 그 발은 그렇습니까?

◆ 김주원> 네, 예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웃음)

◇ 김현정> 토슈즈를 몇 켤레나 지금까지 바꿔 신었을까요?

◆ 김주원> 세어본 적이 없어서 많을 때는 하루에 두 켤레, 세 켤레 신을 때도 있어요.

◇ 김현정> 하루에.

◆ 김주원> 네. 백조의 호수 전막 같은 경우에는 공연 한 번에 두 개 정도 신게 되거든요.

◇ 김현정> 그야말로 백조예요. 겉으로는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물속으로는 끊임없이 물길질 하고 있는.

◆ 김주원> 발레리나가 그런 것 같아요.

◇ 김현정> 15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러면.

◆ 김주원> 언제나 항상 저한테는 슬럼프나 힘들었을 때가 부상이나 아플 때였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족저근막염. 이거 이름도 좀 어려운데 이런 앓았던 적도 있죠?

◆ 김주원> 네. 저한테는 이렇게 사형선고처럼 팀을 관두라는 이야기를 여러 병원에서 들었던 경험이었어요, 족저근막염이라고.

◇ 김현정> 그게 어떤 병입니까, 그게?

◆ 김주원> 발바닥에 족저근이라는 근육이 있는데요. 그 근육은 되게 크고 두꺼워서 통증을 잘 못 느낀대요.
그런데 제가 허리나 목이나 다른 부위가 상당히 심하게 아픈 상태로 한 4, 5년 정도 춤을 췄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발이 너무 부어서 토슈즈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바늘로 발끝을 의사 선생님이 찔렀는데 피가 철철 나도 제가 못 느끼고 있었어요.

◇ 김현정> 그럼 어떻게 감각이 마비가 된 거예요?

◆ 김주원> 네. 신경이 눌려서. 그러니까 그냥 걷는 것도 힘들 텐데. 토슈즈는 당연히 신을 수 없다라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 김현정> 그 순간을 그럼 어떻게 극복했어요? 무용가한테 무용하지 말아라, 토슈즈 신지 말아라라는 말은 지금 말씀하셨듯이 정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거였을 텐데.

◆ 김주원> 네. 그런데 울거나 하지 않고 올림픽 같은 데 보면 인대나 근육이 끊어진 상태에서 경기를 하시는 분들 가끔 봤어요. 그래서 그렇게 움직이는 게 가능한가? 하고 제가 수소문을 해서 그 운동선수 트레이너를 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한 10개월, 1년 가까이 그분이랑 하루에 12시간 운동선수랑 똑같이 트레이닝을 했어요.
그때 제 꿈은 토슈즈를 신는 게 꿈이었는데.

◇ 김현정> 1년 만에 신었어요?

◆ 김주원> 네, 선생님이 한번 신어보라고 해서 신었는데 아프지 않고 서지더라고요.

◇ 김현정>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었겠네요.

◆ 김주원> 네. 그때 제가 무대에 선 게 ‘브누아 드 라 당스’ 제가 상 받는 무대가 첫 무대였어요, 부상 이후에.

◇ 김현정> 2006년에 그 ‘브누아 드 라 당스’, 이게 최고 여성무용상. 말하자면 무용계의 아카데미 같은 건데. 그 병에서 극복하고 난 다음에 바로 상을 탄 거예요?

◆ 김주원> 네. 그래서 그때 상 받은 것보다 저는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춘다는 것에 더 행복했었어요, 그때.

◇ 김현정> 그랬군요. 그런 어려움 끝에. 그런데 그때 그 상 받고 나서 해외 유명발레단에서 입단제의도 많이 받았다고 제가 들었는데, 왜 그때 안 가셨어요?

◆ 김주원> 그 상의 의미가 더 컸던 이유는 100% 국립발레단에서 만든 작품, 한국 사람들이 모두가 출연을 했고 한국 사람들의 의상과 음악과 세트. 모든 게 메이드 인 코리아였어요. 그래서 외국 사람들도 동양 사람이 이런 감정표현을 하는 것에 되게 놀라셨었거든요.
그래서 김주원이라는 발레리나는 한국 관객들로 만들어진 발레리나거든요.
그러니까 꼭 크고 화려한 무대, 관객이 2000명가량 있는 큰 무대뿐만 아니라 저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무료공연부터 구청에서 공연하고 초등학교 아이들 강당에서 춤추고, 그렇게 만들어진 무용수가 김주원이더라고요.

◇ 김현정> 정말로 메이드 인 코리아네요.

◆ 김주원> 아직까지도 그런 제의들이 오는데 저까지 나가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나름 있었어요, 그래서.

◇ 김현정> 그렇군요. 그래요, 이제는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주원이 아니고 그냥 발레리나 김주원입니다. 앞으로의 목표, 어떤 걸까요?

◆ 김주원> 한국 관객분들이 보시지 못했던 좋은 작품들이나 어떤 그런 공연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또 다른 예술 장르와의 그런 어떤 협업들도 여러 가지로 계속 준비를 하고 있어요.

◇ 김현정> 아주 파격적인 것도 혹시 생각하세요? 예를 들면 노래라든지 연기라든지 아주 다른 무대에 발레를 접목시킨 어떤 것.

◆ 김주원>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네요. 제가 이제부터 생각해서 준비해 볼게요. (웃음)

◇ 김현정> 그래요. 김주원 씨, 응원하겠습니다.

◆ 김주원>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