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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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9/14(금) 박형규 목사 "민청학련 재심,검사마저 무죄구형하는 희한한 풍경이..."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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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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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 어물쩍 넘어가선 안돼...유가족 찾아와 사과해야"


■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남북평화재단 박형규 이사장


검사가 피고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변호사가 변호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일은 있어도, 검사가 피고인의 무죄를 구형하는 일은 없죠. 그런데 이런 일이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졌습니다. 유신시절이던 1974년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았던 한국 기독교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죠. 박형규 목사. 박 목사에 대한 재심이 38년 만에 열렸고요. 거기서 검사가 무죄를 구형했습니다. 물론 판사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참 이런 일도 있네요.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입니다. 박형규 목사 직접 모셔보죠.

◇ 김현정> 이제 연세가 아흔 되셨어요.

◆ 박형규> 네, 며칠 후면 만 아흔인데 아직은 걸어 다니고 작대기 짚고 다닙니다.

◇ 김현정> 목소리에서 아직 건강함이 묻어나서 참 다행입니다, 목사님.

◆ 박형규> 고맙습니다.

◇ 김현정> 우선 좀 그 당시로 우리가 돌아가 보죠. 1972년 대통령 특별선언으로 유신독재가 시작이 됐는데 여기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신 거예요.

◆ 박형규> 그렇습니다. 제가 주도해서 한 것은 아니고요. 당시에 학생들, 우리 서울제일교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학생들이 유신체제는 거부해야 된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 김현정> 박정희 대통령이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서 인민혁명을 기도한다.” 이런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민청학련하고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4호를 공포했습니다.

◆ 박형규> 네, 그랬어요.

◇ 김현정> 그런데도 계속 유신반대운동을 하셨어요.

◆ 박형규> 네. 사실은 저를 빨갱이로 몰기 위해서 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죠. 저는 한국전쟁 시대 때에 맥아더 사령부의 직원으로 있었고 미국대사관. 거기서 활동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오명을 덮어씌우려고 하면 미국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서 “아니다, 맥아더 사령부에서 일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빨갱이로 만들려고 아주 여러 가지로 공작을 했는데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도 어떻게 15년형을 받으셨어요?

◆ 박형규> 재판도 그게 보통 판사가 하는 게 아니고 군에서 군재판을 했으니까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죠.

◇ 김현정> 긴급조치 4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군 재판, 속결재판을 한 거예요. 그래서 15년형. 그 억울함을 어쩌셨어요?

◆ 박형규> 가족들이 매우 힘들죠. 그렇지만 저희 가족들은 큰아들은 2번 감옥에 갔고요. 작은 아들은 1번 감옥에 갔고.

◇ 김현정> 아드님들도 같이 유신반대운동, 민주화운동을 하신 거군요.

◆ 박형규> 그렇죠. 저희 집사람도 첫 해는 울고만 다녔고, 다음 한 1년 후에는 학생들 가족, 어머니들 이런 사람들을 함께 해야 되니까 저희 집사람이 굉장히 투사가 됐죠. 앞장서야 되니까.

◇ 김현정> 온 가족이 시대가 만들어낸 투사, 유신이 만들어낸 투사가 되신 거예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씀하십니다만, 참 어렵게 30년 넘게 보내고 2010년에 재심을 청구하셨어요.

◆ 박형규> 글쎄요. 나는 재심이 되는지 안 되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재심을 하겠다고 그것도 또 재미있는 거는 검사가 무죄라는 걸 말을 하고 재판장이 그걸 받아들여서 무죄 선고를 한 거예요.

◇ 김현정> 바로 그 점인데요. 제가 잠깐 검사의 구형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 무죄를 내려주십시오.’ 이렇게... 이 검사의 구형문을 현장에서 듣고 어떠셨어요?

◆ 박형규> 놀랐어요. 검사가 여자 분인데. 검사가 무죄를 구형한다는 게 또 이게 없었던 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변호사도 앉아 있었는데 더 크게 “동의합니다.” 그런 식으로. 그리고 판사가 판결을 “무죄를 판결합니다.” 선언했어요.

◇ 김현정> 즉시판결이 내려졌어요. 꿈인가 생시인가 하셨을 것 같아요. 소감이 어떠셨어요?

◆ 박형규> 나는 사실 그때 항소 포기를 했거든요. 학생들도 많이 항소를 포기 했어요. 항소해 봤자 안 되니까.

◇ 김현정> 그게 안 됐던 시절이니까요. 유신시절은.

◆ 박형규> 안 되는 시절이니까 다 포기하자고 그래서 서대문구치소에서 영등포교도소로 가고 그랬는데 아마 법조계에서도 과거의 잘못된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이번에 이 사안이 더 주목을 끄는 건 긴급조치를 발동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아마 더 관심을 좀 모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5.16, 또 유신 이런 것과 관련해서 또 인혁당 사건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이것은 두 가지 판결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형규> 역사인식이 잘못된 거죠. 사실은 솔직하게 박근혜가 정말 국민에 그거 하려면 '아버지가 독재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됐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다, 사죄한다.' 그렇게 얘기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것을 우물우물 넘기려고 사죄도 안 하고 그렇게 하는 바람에 박근혜가 지금 어려워진 거 아닙니까?

◇ 김현정> 박근혜 후보가.

◆ 박형규> 네. 자기 아버지를 죄인으로 만들기 쉽지 않다. 그런 얘기했죠.

◇ 김현정> 바로 그 점인데요. '역사인식을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건 아버지와 딸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있다. 그걸 좀 이해해 달라.' 이렇게 당에서는 얘기하는데 어떻게 보세요?

◆ 박형규>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서 자식이 책임을 질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기 아버지가 그랬으면 아버지라도 이렇게 하는 거는 잘못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얘기하면 국민들이 좀 납득이 가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그걸 정당화하는 거거든요.

박정희 독재가 사실은 한국 역사 속에서 가장 잘못된 정치적인 탄압이거든요. 박정희의 군부독재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이 많고. 특히 대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사형을 당했잖아요. 아무 한 일도 없이. 그래서 인혁당 관계된 사람들. 인혁당을 조작해서 만들어서 인혁당을 처단을 했으니까.

◇ 김현정> 마치 민청학련 사건하고 비슷한 거죠?

◆ 박형규> 네. 지금 그것이 무죄판결이 돼서 공식적으로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인정을 했는데 유가족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면 또 모르지만 그걸 정당화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 김현정> 한국 민주화운동의 아버지이자 산 증인입니다. 박형규 목사와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대선 앞두고 있으니, 우리 차기 지도자, 차기 대통령의 덕목이랄까요? '이것만은 좀 해 주십시오.' 나오신 김에 부탁의 말씀해 주신다면?

◆ 박형규>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대통령이 되면 우선 대통령은 모든 백성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그런 분,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저도 동감합니다.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부터 먼저 보살펴라. 이런 말씀. 이제 아흔이신데, 건강하시고요. 또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