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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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발사 지덕용 씨
머리카락 자르러 여러분들 어디로 주로 가십니까? 요즘에는 남자분들도 미용실 가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 10년 전 만해도 이발소, 이용원 참 많았어요. 거품솔로 면도거품 풍성하게 바르고 쓱쓱쓱 얼굴에 문지르던 모습들. 또 하얀색 가운입은 이발사가 머리카락 잘라주던 모습들. 이제는 사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인데요. 젊은이들이 가득한 혜화동 그 한복판에서 무려 55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던 이발소가 이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합니다. 혜화동 이발사 지덕용 씨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직접 연결해 보죠. 이름도 참 예스럽네요. 문화이용권의 지덕용 옹입니다. 지덕용 선생님 안녕하세요.
◆ 지덕용> 안녕하세요.
◇ 김현정> 이발소하신 지 올해로 55년 되셨어요?
◆ 지덕용> 네.
◇ 김현정> 그럼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 지덕용> 지금 칠십 다섯입니다.
◇ 김현정> 일흔 다섯. 그런제 정정하시네요, 목소리가. 이발은 몇 살부터 시작하신 거예요?
◆ 지덕용> 이발은 17살 때부터 동네에서 내가 여기 이발 하러 다녔던 사람이거든요.
◇ 김현정> 이발을 하러다니다가 아예 그냥.
◆ 지덕용> 그때는 살기가 힘드니까 너 이발 배워볼래 해서 어떻게 인연이 돼서 이발을 배우게 된 거죠.
◇ 김현정> 그게 몇 년입니까, 그러면?
◆ 지덕용> 휴전되고 나서니까 한 55년, 54년인가 그정도 됐을 겁니다.
◇ 김현정> 1954년, 55년 그 무렵. 정말 오래 전 얘기네요. 그러면 그때 취직을 거기에 하셨는 얘기는 그 이발소는 훨씬 전에 문을 열었다는 얘기잖아요.
◆ 지덕용> 그렇죠. 휴전되던 해에 이걸 연 거죠. 제대 군인아저씨가 빈 가게를 해서 그때부터 일을 시작한 거죠.
◇ 김현정> 휴전되자마자.
◆ 지덕용> 네.
◇ 김현정> 1950년대 이발소는 어땠나요, 어떤 모습이었어요?
◆ 지덕용> 그때야, 50년대야 지금 말하자면 의자도 시원찮고 물 길어다 쓰고 불 때서 물 데워서 쓰고 그랬죠.
◇ 김현정> 이발소 의자하면 지금 생각하면 소파식으로 돼서 뒤로 쭉 기댈 수 있고 이런데 그 당시 의자는 어땠어요?
◆ 지덕용> 그 당시 내가 본 의자는 일본사람이 쓰는 나무로 만든 의자를 썼고요.
◇ 김현정> 뒤로 기대거나 이런 거는 없었겠네요.
◆ 지덕용> 뒤로 기대든 밑으로 젖히든 있어서 고리가 뒤에 걸리게끔 돼서 뉘어져 있죠.
◇ 김현정> 뉘어지기는 하는군요. 그런 식으로.
◆ 지덕용> 네.
◇ 김현정> 거기다가 직접 물을 길러다 썼어요, 머리 감길 때는?
◆ 지덕용> 그때는 물이 흔하지 않았거든요. 펌프라는 게 많았거든요.
◇ 김현정> 펌프?
◆ 지덕용> 네. 집이 피난 가고 문 닫은 집들이 많고 그래서 그 물 퍼다가 물을 넣어서 이렇게 기어서 쓰던 그때.
◇ 김현정> 물 길어와서 그거 데워서 그걸로 머리 감기고 면도하고 이런던 시절. 제일 전성기, 55년 동안 제일 전성기라면 언제인가요?
◆ 지덕용> 60, 70년대가 제일 전성기였죠. 그때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들 깎지 않고 여성들도 전부 이발소에서 단발머리하고 여학생들도 이발소와서 단발머리하고 그랬거든요.
◇ 김현정> 여성들이 미용실을 안 가고 이발소를 왔어요?
◆ 지덕용> 그당시만 해도 여학생들은 전부 단발머리인데 그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제일 어려운 게 단발머리인데그때는 초등학교하고 중학생들은 이발소 와서 단발머리로 자르고 그랬죠.
◇ 김현정> 그랬군요.
◆ 지덕용> 그때는 미용실이 그렇게 흔하지 않았거든요.
◇ 김현정> 제가 듣기로 면도를 하러 여성들도 왔다는 얘기도.
◆ 지덕용> 네, 그런 분이 있습니다. 면도를 하면 화장이 잘 받는다고요.
◇ 김현정> 정말이군요, 그 얘기가.
◆ 지덕용> 솜털이 다 깎아지지 않습니까?
◇ 김현정> 네.
◆ 지덕용> 그러면 화장이 잘 받거든요.
◇ 김현정> 그러니까 면도를 하고 신부화장 받는 경우도 있고. 했다는 이야기 정말이군요.
◆ 지덕용> 화장이 잘 받으니까요.
◇ 김현정> 그래요, 그런 추억도 있고. (웃음) 그때는 이발 한 번하면 가격이 얼마나 됐나요?
◆ 지덕용> 제가 여기 요금표가 60년 전부터 요금표가 모아놓은 게 있는데요. 20원 이렇게 됐거든요.
◇ 김현정> (웃음) 지금은 얼마에요, 그러면?
◆ 지덕용> 지금은 13000원이요.
◇ 김현정> 많이 올랐네요. 60원에서 13000원이면. (웃음)
◆ 지덕용> 물세는 얼마나 올랐습니까? 이건 안 오른거죠.
◇ 김현정> 물가 오른 거에 비하면.
◆ 지덕용> 네, 이건 안 오른 거죠.
◇ 김현정> 아니 혜화동에서 한번도 이사 안 하신 거예요?
◆ 지덕용> 네.
◇ 김현정> 서울 시내 한복판 혜화동 그 중심가에서 55년을 하였으니 손님들 중에도 꽤나 유명한 분들 많이 거쳐가셨겠에요.
◆ 지덕용> 네. 유명하신 분들 진짜 여기 혜화동이라는 게 그전하고 지금하고 달라서 그전에는 참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사셨거든요.
◇ 김현정> 그렇죠.
◆ 지덕용> 저는 그게 영광스러운 거죠.
◇ 김현정> 어떤 분들 기억나세요?
◆ 지덕용> 학자로서는 이희승 박사님.
◇ 김현정> 이희승 박사.
◆ 지덕용> 이병도 박사님. 84세에 두 분이 다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여기 오셨습니다.
◇ 김현정> 네. 또 어떤 분, 저희가 들으면 아는 분?
◆ 지덕용> 시인 조병화 시인.
◇ 김현정> 시인 조병화 씨.
◆ 지덕용> 33인에 있습니다. 이갑성님이라고 계십니다.
◇ 김현정> 아, 독립운동가 33인 중에?
◆ 지덕용> 네. 그분 자녀분이 여기 혜화동이 사셨거든요. 살아있는 동안에 여기 다니셨고.
◇ 김현정> 대단한 분이 다니셨네요.
◆ 지덕용> 그리고 또 영업하는 사람 중에 명월관 사장이라고. 명월관이라고 아십니까?
◇ 김현정> 유명한 기생집이잖아요.
◆ 지덕용> 네. 명월관 사장님.
◇ 김현정> 그분도 거기 다니셨고?
◆ 지덕용> 네. 그분도 여기 살아서 단골로 다니셨다 돌아가신 거고요.
◇ 김현정> 그래요.
◆ 지덕용> 이회창 씨도 여기 단골이셨습니다.
◇ 김현정> 이회창 전 대표.
◆ 지덕용> 네. 이수성 씨.
◇ 김현정> 이수성 전 총리?
◆ 지덕용> 학교 제직할 때까지 다 여기서 다니시고.
◇ 김현정> 유명한 사람들 얘기하자면 밤 새겠어요.
◆ 지덕용> 한도 끝도 없죠. 여기 유명한 사람이 더 많죠.
◇ 김현정> 그렇게 유명한 손님들을 이발도 하고 면도도 하신 거잖아요.
◆ 지덕용> 그렇죠.
◇ 김현정> 그런데 그 면도칼이라는 게 아주 예리하지 않습니까? 혹시 유면한 분들, 높으신양반들 거기 앉아있으면 좀 떨리거나 이러지 않으셨어요, 면도할 때? 이거 베면 어떡하나?
◆ 지덕용> 그렇지 않죠. 그때 유명하신 분이고 그건 관계 없죠. 여기오는 손님이니까.
◇ 김현정> 혹시라도 실수하신 적 없어요, 여차하면 실수하는 건데?
◆ 지덕용> 실수 왜 안 해요. 어느 여학생 단발머리 자르다가 귀잘라서.
◇ 김현정>이거 어떡해요?
◆ 지덕용> 내 귀 물어달라고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있었거든요. 이제 같이 늙어가죠.
◇ 김현정> 그 여학생이 혹시 지금도 옵니까?
◆ 지덕용> 여기 살다가 아버님이 의사선생님이었거든요. 의사선생님이었는데 이 동네에서 일했는데 초등학교 때 단발머리. 그때는 내가 한참 일을 배웠을 때 귀를 조금 건드려서 잘랐거든요. 그래서 밤낮 나만보면 내 귀 물어달라고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 김현정> 요새 같으면 소송걸 일인데. 그때는 그냥 넘어갔나보네요. (웃음)
◆ 지덕용> 네. (웃음)
◇ 김현정> 그게 정이에요. 그런 일도 있고. 참 세월을 깎는 이발사. 혜화동 이발사 지덕용 선생님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골들 50년 다니고. 내가 다니다 내 아들딸이 다니고 이런 단골들한테 문 닫는다는 얘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선생님?
◆ 지덕용> 그러니까 제가 빨리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는 거죠.
◇ 김현정> 지금은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까, 옛날 같이?
◆ 지덕용> 여기서 8명 이상이 일하던 데가 저 혼자 있습니다.
◇ 김현정> 요즘은 미용실들 중에도 체인으로 돼서 프랜차이즈로 된 미용실.
◆ 지덕용> 네. 남성들도.
◇ 김현정> 홍보 막하고 좋은 시설에. 따라가기 힘들죠.
◆ 지덕용> 네. 그러니까 40대 미만은 못합니다.
◇ 김현정> 그래도 그런 단골들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정말 손 맛을 아는 단골들이 있어서 여태까지 문을 못 닫고 계셨던 건데.
◆ 지덕용> 그래도 몸이 아파서 한 열흘만 놀면 난리납니다.
◇ 김현정> 그분들한테 그 단골들한테 어떻게 문 닫는다고 얘기하실 거예요?
◆ 지덕용> 손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손만 안 아프면 되는데 요즘에는 또 손이 고장나서. 인대가 늘어나고 관절염이 생겨서 그래서. 죽을 때까지 해야죠. 죽을 때까지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할 처지가 있었습니다.
◇ 김현정> 의자며 가위, 빗, 솔, 수건 이런 게 하나하나가 친구일텐데.
◆ 지덕용> 나도 골동풀이지만 전부다 골동풍.
◇ 김현정> 골동품이죠. 문 딱 닫고 나면 서운해서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실래요?
◆ 지덕용> 그러니까 지금 몸이 아파도 진통제를 먹으면 일을 해도 여기가 내 고향이고 내 터진이니까 집보다 여기가 낫습니다, 가게가.
◇ 김현정> 지금 문 닫는 날짜 정해지지는 않았죠?
◆ 지덕용> 정해졌지만 내 자신이 자꾸 보이콧이 되면서.
◇ 김현정> 문이 못 닫으실 것 같아요.
◆ 지덕용> 그래서 집이 이 근방이기 때문에 지금 문을 마음대로 못 닫아요.
◇ 김현정> 요즘 동네서점, 헌책방, 공중전화, LP판 이 추억이 담긴 장소들 사라져가는 게 아쉬운 데 앞으로도 건강하게 되시는 날까지 지켜주십시오.
◆ 지덕용> 하는 날까지 열심히 해야죠.
◇ 김현정>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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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1/02(금) 지덕용 이발사 "55년 혜화동 문화이용원 문 닫는다"
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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