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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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25(화) 김숙향 필리핀 선교사 "필리핀 빈민촌의 크리스마스 기적"
20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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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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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필리핀 톤도 파롤라 마을 빈민활동 김숙향 선교사


세상의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 이번에는 필리핀으로 가보겠습니다. 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20여 분쯤 달리다 보면 톤도 파롤라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폭 1m 남짓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판잣집 수만 채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곳인데, 하루에도 수십 건의 강력범죄가 발생하는 필리핀 최대의 빈민촌이에요.

그래서 현지인들조차 가기를 꺼리는 곳, 봉사자들마저 외면하는 곳. 그곳이 바로 톤도마을인데요. 한 한국인 여성이 이 톤도마을에 22년 전에 자리를 틀고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아대책 기아봉사단원으로 필리핀 톤도에 가 있는 김숙향 선교사 연결을 해 보죠. 김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 김숙향>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투. (웃음)

◇ 김현정> 오늘 아침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 김숙향> 저희는 매일 아침 새벽예배가 있어서 5시 전에 일어났죠.

◇ 김현정> 지금 거기가 몇 시죠?

◆ 김숙향> 여기 시간으로는 지금 7시 조금 넘었죠. 한 시간 차이죠.

◇ 김현정> 그 빈민촌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오죠?

◆ 김숙향> 당연하죠. 필리핀은 1년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명절이 크리스마스예요.

◇ 김현정> 최대 명절이군요. 오늘 같은 날은 마을 분위기가 어때요?

◆ 김숙향> 많이 고조돼 있죠. 선물들 들고 집집 돌아다니고, 또 친척집 방문하고 친척들이 오고. 들떠있는 분위기예요.

◇ 김현정> 최대 빈민촌인데도 선물들, 자그마한 것들 준비해서 주고받고 그렇습니까?

◆ 김숙향> 그렇죠. 큰 게 목적이 아니고 조그마한 거라도 마음, 정성을 담아서 이웃들에게 나누고, 또 고마움을 표현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그런 거 다 똑같은 거 같아요.

◇ 김현정> 그 얘기 들으니까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선물을 못한 제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요. 필리핀 최대의 빈민촌 톤도 파롤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제가 앞에서 잠깐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세요.

◆ 김숙향> 파롤라라는 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래서 땅에다가,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움막 같은 걸 짓고 시작을 하고. 그런 빈민촌이죠. 그 한 가지 목적은 부모들이 그나마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싶다, 그런 생각들이 있어요.

◇ 김현정> 몇 명이나 모여살고 있습니까?

◆ 김숙향> 한 30만.

◇ 김현정> 30만명이요?

◆ 김숙향> 네. 한 도시입니다, 대도시.

◇ 김현정> 그러니까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말하자면 대도시로 왔는데, 가진 건 하나도 없으니까 결국은 쓰레기 더미 한 켠에 판잣집 짓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30만명?

◆ 김숙향> 네. 한 집에 조그마한 4, 5평짜리 그 집에 한 7, 8명, 10명, 12명 이렇게 살아요.

◇ 김현정> 거기서 그럼 선교사님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 거예요?

◆ 김숙향> 처음에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방과후 교실이라고, 저희는 학교는 아니에요. 학교를 갔다 온 아이들. 또 오전반, 오후반이 있어서 가기 전 아이들이 저희 센터에 와서 영어, 수학, 과학. 그런데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 교육입니다. 물론 학과 과목도 중요하지만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런 거를 아이들 때부터 교육하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김현정> 제가 듣기로는 그런 교육하기 전에는 7살, 8살 아이들이 하루 종일 쓰레기 더미 한 켠에서 도박하고 음주하는 아이들도 있고, 이렇게 보냈다면서요?

◆ 김숙향> 그러니까 쓰레기 뒤져갖고 돈 될 거 있으면 비닐 같은 거 주워서 팔고, 거리 방황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냥 먹을 게 없어서 먹을 거 찾아다니고 쓰레기 뒤져서 먹을 거 찾고 그렇게 살았죠.

◇ 김현정> 그렇게 살다가 방과후 교실을 연 거는 언제부터세요?

◆ 김숙향> 12년 전이에요. 저희가 2000년도에 들어왔어요. 제가 오기는 22년 전에 왔지만 톤도에 들어오기는 12년 전에 들어와서 지금 시작하고 있는 거죠.

◇ 김현정> 그 아이들을 그럼 몇 명이나 가르치고 있습니까?

◆ 김숙향> 지금 현재로는 저희가 센터가 2개여서 750명.

◇ 김현정> 와, 750명.

◆ 김숙향> 한 센터에 한 500명, 한 센터에 250명.

◇ 김현정> 그러면 비용 문제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하세요? 무료로 식사도 제공하고, 교실 운영하려면 운영비라는 게 필요할 텐데요.

◆ 김숙향> 처음에는 저희가 시작할 때는 그렇게 많은 아동들이 아니었고요. 100명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기아대책을 통해서 아동들이 1 대 1 결연이 되어 있어요. 우리 아동 하나가 한국분 한 분 후원자가 있으세요. 그래서 그거를 통해서 지금은 여러 가지 부분에 교육적인 면, 영적인 면, 정서적인 면, 실체적인 면을 골고루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김현정> 필리핀 최대의 빈민촌에서 22년 동안 봉사를 하고 있는 김숙향 선교사,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제가 듣기로는 김숙향 선교사가 광산 3개를 가진 재벌집의 외동딸이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 빈민촌을 22년 전에 찾아가게 되셨어요?

◆ 김숙향> 그게 하나님의 손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나고 나면. 가장 부유하게도 살아봤고, 또 아버님 사업이 망해서 고등학교 때는 쌀이 없어 도시락을 못 싸가고 학교에 갔어요. 그래서 그런 것을 통해서 참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저에게 삶을 가르쳐준 것 같아요. 그래서 22년 전에 사실 봉사하려고 왔죠. 필리핀에 선교사로 왔어요.

◇ 김현정>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부유하게도 살아보고 아주 바닥도 겪어보고. 이러면서 내가 살아야 될 방향을 찾으신 거예요?

◆ 김숙향> 네. 그런데 결론은 그건 거 같아요. 내가 나를 위해서 살려고 하면 참 삶이 불행하고 참 힘들고 어려운데, 남을 위해서 살고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세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거를 잘 견디고 나갔던 것 같아요, 하나님 때문에.

◇ 김현정> 그러면 지금 행복하세요?

◆ 김숙향> 네, 행복해요. 제가 하는 일이 있고 목적이 있고, 또 그 목적이 저를 위하기보다는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기 때문에요.

◇ 김현정> 한국에서 살았다면 오늘 같은 날 훌륭한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식구들과 모여서 케이크 자를 수도 있고, 좋은 데 드라이브 할 수도 있는데 그거 다 포기하시고 쓰레기 더미에서 그 빈민촌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있는 생활이 정말 행복하시단 말입니까?

◆ 김숙향> 필리핀에 있다고 좋은 식당에 못 가는 거 아니에요. 저희 교사들, 우리 스태프들 데리고 한국식당 가끔 가요. 그런데 그런 먹는 거, 그런 입는 거.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데 안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느냐, 그게 중요한 것 같은데요. 저에게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요.

◇ 김현정>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다...

◆ 김숙향> 네,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 김현정> 참 마음이 부자시네요. 부럽습니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아이들 중에, 만났던 아이들 주에 가장 기억이 남는 학생은 누구일까요?

◆ 김숙향>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도 참 중요한 아이들이 많아요. 지금 현재 한국에서, 한국국가장학생으로 경북대 컴퓨터공학 4년, 내년 2월이면 졸업하죠. 그 학생이요.

◇ 김현정> 필리핀에서 선교사님하고 같이 공부하다가 한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 김숙향> 걔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저희 센터에 와서 시작을 했어요, 방과후 교실. 그랬는데 여기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의 국가장학생이 돼서 1년에 한 3명, 우리나라에서 주는 거기에 합격해서 경북대에 갔고, 이제 졸업하는 상황에 있는 아이예요.

◇ 김현정> 그러면 그 학생은 졸업하고 나서 다시 고국으로, 필리핀으로 돌아갑니까, 어떻게 됩니까?

◆ 김숙향> 처음에는 제가 공부할 때 “졸업하면 뭐할래?” 물어봤더니 자기네 과는 졸업하면 한 70, 80%가 삼성으로 들어갈 수 있대요. 그래서 ‘삼성맨이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필리핀 빈민촌에서 삼성맨이 된다는 것 자체부터가 너의 삶에 성공일 수 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서 우리가 그런 삶에서 왔으니까 한국에서 그 장학금으로 공부만 잘하면 박사학위까지 공부할 수가 있다. 기회가 있어서. 박사학위까지 공부를 계속하면 너는 군대도 안 가고, 또 빨리 졸업하니까 필리핀에서 최연소 공학박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론 그게 어떤 포지션의 박사학위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네가 필리핀에 돌아와서 국가를 위해 무언가 연구를 하고, 또 빈민촌을 위해서 너의 삶을 드린다면 그게 더 값어치 있지 않겠냐.“ 처음에는 별로 대답을 안 하고, 한 두세 달 아무런 메일이 없었어요.
사실 지금 그 가정의 현재 상황이 엄마가 심장병을 겪고 있어서 매일매일 약값이 필요하죠. 그리고 정말 조그마한 집에서 사니까 집이라도 좀 넓히고 싶고, 부모님 편하게 해 드리고 싶고. 삼성 들어가면 가능하거든요.

◇ 김현정> 그런데 돌아오겠다고 OK를 했어요?

◆ 김숙향> 네. 3개월 후에.

◇ 김현정> 돌아가서 빈민촌 아이들의 희망이 되겠습니다, 약속을 했네요?

◆ 김숙향> 정말 좋은 샘플이 되는 거죠.

◇ 김현정> 제가 갑자기 뿌듯해지네요. (웃음)

◆ 김숙향> 고맙습니다. (웃음)

◇ 김현정> 좋은 일 하고 계십니다. 우리 필리핀 빈민가에도 성탄의 기쁨이 전해질 수 있도록 김숙향 선교사님이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다시 한 번 메리 크리스마스고요. 오늘 귀한 시간, 복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