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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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소설가 박범신
저축이 늘어나면 또 아파트를 늘리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죽어라고 일해서 과장, 차장, 부장, 상무에 오르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연봉, 늘어난 재산이 가져온 건 사랑의 황폐화뿐이었다. 가족은 단지 나를 통장으로 취급할 뿐이다.
영원한 청년작가죠. 박범신 선생의 신작, 소금의 한 부분을 제가 읽어드렸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는데요.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지금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이 소설의 배경이자, 작자의 고향인 논산을 독자들과 함께 걷고 계시다고 해요. (웃음)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연결해 보겠습니다. 박 선생님, 안녕하세요.
◆ 박범신>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이 논산땅걷기 마지막 날이라고요.
◆ 박범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지금까지 얼마나 걸으셨어요?
◆ 박범신> 하루에 한 15km씩 4일 걸었고요. 오늘 마지막날 5일째예요.
◇ 김현정> 하루에 15km씩?
◆ 박범신> 네. 15km 정도 걷습니다.
◇ 김현정> 논산이 고향이시죠, 그러고 보니까.
◆ 박범신> 네. 논산이 워낙 아름다운 곳이 많아서요. 요즘 고향이라고 하는 곳이 마음 속에서 지워졌잖아요. 고향에 사는 분도 한 시간도 걸어볼 기회도 없고 그래서 고향의 마음이 곧 첫사랑이고, 참마음이니까요. 고향만 마음 속에 지녀도 우리가 행복해지겠다, 이런 뜻으로 독자들하고 시민들하고 함께 걷고 있습니다.
◇ 김현정> 첫사랑의 마음을 찾아보자, 이런 의도네요, 그러니까. (웃음)
◆ 박범신>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논산은 뭐가 유명한지, 지금 아름답다고 하셨는데 뭐가 유명한지 언뜻 떠오르지 않아요.
◆ 박범신> 논산은 그냥 훈련소만 있는 줄 알아요.
◇ 김현정> (웃음)
◆ 박범신> 계룡산하고 대둔산 사이에 있어서요. 우선 논산 북구는 아주 경치가 좋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조선 중후반부를 지배했던 서인 그룹의 본거지가 또 논산입니다. 곳곳에 고택도 많이 남아있고요. 장교 서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화유적지도 경유하면서 걷고 있죠.
◇ 김현정> 논산에는 훈련소만 있는 게 아니다. (웃음) 좋은 말씀해 주셨어요. 그 아름다운 논산 땅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소설이 소금.
◆ 박범신> 네, 그렇습니다. 고향에 바치는 소설이기도 하고요. 제 어머니, 아버지에게 바치는 소설이기도 하고. 또 이 땅에 너무나 야수적으로 일해서 이만큼 부를 창출해 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할까요. 조금 뒤로 물러나 있는 아버지 세대들. 그 늙어가는 쓸쓸한 아버지의 등을 한번 보자, 우리가. 그들이 무얼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이런 걸 자라나는 세대들이 한번 살펴봐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바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죠.
◇ 김현정> 그런데 이 시대의 아버지 얘기를 담은 책인데 제목은 소금이네요.
◆ 박범신> 네. 아버지들이 우리 역사에서 소금 노릇을 한 거죠. 소금은 모든 맛의 기본이고, 또 너무 넘쳐도, 너무 모자라도 안 되는 기반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여기에는 염부 아버지가 나옵니다. 소금을 캐는 아버지가 나오고 그래서요. 상징적으로 소금이라고 붙였습니다.
◇ 김현정> 소금이 그렇게 중요한데 우리는 소금이 있을 때 소금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소금이 없어지고 나서야 아는.
◆ 박범신> 소설이 서두에 보면 염부가 자식들 가르치기 위해서 염전일을 너무 과로하게 해서 소금을 모으다가 소금 덮개 위로 넘어져서 실신해 죽는 장면이 맨 처음에 나옵니다. 우리 인체에는 0.85% 정도의 염도가 있습니다, 소금기가 있죠. 이 소금기가 넘치면 고혈압에 걸리거나 하는 것이고, 인체에 소금기가 0.2%로 줄어들면 죽음에 이릅니다. 그 염부는 자식들을 위해서 평생 소금을 거두는 일을 했는데 결국 자기 몸속의 염도가 부족해서 죽는 아이러니한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요.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을 소금이라고 붙이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이런 구절도 눈에 띄더라고요. ‘세상에 모든 아버지는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고,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다.’ (웃음) 박 선생님은 어느 쪽이세요, 둘 중에?
◆ 박범신> 그러면 제3의 아버지가 있죠. 99%의 아버지들은 집에서 견디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봅니다.
◇ 김현정> 그럼 박 선생님도 마지막이십니까?
◆ 박범신> 네, 마지막이죠.
◇ 김현정> 아버지들이 야수적으로 일한다고 말씀하셨어요.
◆ 박범신> 아버지 세대들은 야수적으로 일했죠. 지금은 8시간 노동, 주 5일제. 매우 행복한 환경이잖아요.
◇ 김현정> 그나마.
◆ 박범신> 저만 해도 젊었을 때는 13시간, 14시간씩 수당도 없이 일했던 날이 아주 많고요. 트럭 운전 라이선스를 따려고만 해도 한 5, 6년을 월급 없이 조수 노릇으로 트럭을 따라다녀야 했던 시대가 젊은 날이죠.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야수적으로 일했다고 할 수 있죠. 어떤 합리성이나 어떤 사회적 보상도 없이 일해서 2만불 소득이 된 거죠. 그러니까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2만불 소득이라는 게 공짜로 오는 게 아니고, 아버지 세대들의 비인간적인 수준의 노동을 바쳐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거대한 소비문명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이 2만불 소득이라는,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봐요.
◇ 김현정> 그러니까 아버지의 중요성도 잘 모르는 거죠.
◆ 박범신> 네. 그래서 그런 얘기를 이 소설에서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이제는 엄마, 아빠란 말 속에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만 들어 있을 뿐이다, 이런 구절도 있는데. 뭔가 좀 기계적인 존재가 된 것 같아요. 서글픈 마음이 드실 것 같아요.
◆ 박범신> 그렇죠. 뭔가 어머니, 아버지 하면 자식들에게 헌신해야 되고, 참아야 되고, 그런 어머니,아버지라는 말 속에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요. 그것이 저는 매우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스물이 넘으면 자식도 성인이니까 엄마, 아빠 또는 어머니, 아버지를 수평적인 인간관계로, 인간주의적 관점으로 아버지를 봐야죠. 아버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아버지라는 말, 어머니라는 말 속에는 끝없는 희생과 헌신을 해야만 어머니, 아버지인 것처럼 느끼는 어떤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다 할 수 있죠. 그래서 정말 어머니, 아버지를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로 한 인간으로 한번 들여다 보자, 그들이 당신들을 위해서 뭘 얻고 잃었는가, 지금 어떻게 쓸쓸한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 김현정> 그것은 딸들에게, 아들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셨을 거고, 그러면 내가 이 시대의 아버지라면, 내가 이 시대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어떻게 살아야 좋은 건지 결론 내리셨어요?
◆ 박범신> 여기에서는 아버지가 가출합니다, 이 소설에서. 50대 후반의 아버지가 가출해서 자아찾기의 긴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길에서 장애 딸 둘을 가족으로 새로 맞아들여서 열심히 또 돌보고 아버지 노릇을 하면서 대안가정으로써의 새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갑니다. 소비중심의 본래의 핏줄들은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가출할 때 마지막 딸이 20살 넘기죠. 지그지만 지금 아버지들이 쓸쓸한 건 우리 아이들을 거대한 소비문명에 빼앗기기 때문이에요. 옛날에 아버지들은 자식을 교육할 수가 있었어요. 특히 가부장적 시대의 전근대적인 아버지라고 하는 하나의 연결고리거든요. 수직적인 구조에서.
◇ 김현정> 그런데 이제는 돈만 벌어다 주는 사람. 아이들은 학원에서 가르치고.
◆ 박범신> 그렇죠, 선대의 전통을 내가 배우고 그다음에 자식을 가르쳐서 인계하는 시대인데. 지금은 우리 가 가르칠 수가 없어요. 소비문명이 아이들을 다 가르치죠. 애비가 뭐라고 말해도 소비문명이 아이들을 흐트려놓기 때문에 소비적인 욕망이 자본주의 구조의 아이들을 다 빼앗긴 상태로 아버지들이 놓여 있기 때문에 아버지들이 쓸쓸한 거죠. 그런데 아버지들도 자기 인생을 준비해야 돼요. 이 소설에는 그런 메시지도 강하게 있습니다. 노후 대비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인 것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문화정서적인 대비도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아버지는 가출한 이후 자기의 인생을 찾아가죠. 그런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 김현정> 소설을 읽어봐야겠네요. (웃음)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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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목) 소설가 박범신 "귀향 후 첫 신작, 이 시대 아버지를 생각하다"
201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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