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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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창호 대장
오늘 화제 인터뷰의 주인공은 지구의 가장 높은 곳을 무산소로 등반한 산사나이입니다. 히말라야 14좌를 최단시간에 그것도 무산소. 그러니까 산소통 매지 않고 등반을 한 건데요. 무산소 등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군요. 그런데 지난 5월 20일에 성공을 했는데 이번 주에서야 성공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 사연이 있다는데요. 산사나이 김창호 대장 만나보죠. 김 대장님, 안녕하세요.
◆ 김창호> 안녕하세요.
◇ 김현정> 고생 많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김창호> 감사합니다.
◇ 김현정> 히말라야산맥의 14좌를 무산소로 오르신 거예요?
◆ 김창호> 네.
◇ 김현정> 그 안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이 포함이 된 거고요.
◆ 김창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에베레스트가 몇 미터죠?
◆ 김창호> 8848m입니다.
◇ 김현정> 8845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오는데. 이걸 비교를 제가 잠깐 해보자면 북한산 꼭대기가 837, 한라산이 1950미터 그러니까 북한산의 10배, 한라산의 4배가 넘는 거죠.
◆ 김창호> 그렇습니다.
◇ 김현정> 성공까지 얼마나 걸리셨어요?
◆ 김창호> 저희는 3월 11일날 해발고도 0m를 출발해서 정상등정까지 80일간의 대장정이었습니다.
◇ 김현정> 80일. 보통은 해발 0m부터가 아니라 중간지점까지 헬기타고 가서 거기서부터 오르지 않나요?
◆ 김창호> 헬기타는 원정팀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에베레스트 티베트 쪽으로 가게 되면 5400m까지 차량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리고 네팔쪽으로 등정 시도를 하는 팀은 2840m까지로컬 항공기를 타고 이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는 아이디어를 바꿔서 누구나가 생각하듯이 에베레스트 등정하게 되면 해발고도 0m에서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을 해서 바다에서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가는 대장정이었습니다.
◇ 김현정> 바다에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카약 이런 거해서 가셨다면서요, 바다부터.
◆ 김창호> 네. 저희 바다에서 카약으로 5일간 자전거로 893km 그리고 걸어서 베이스캠프까지 그리고 다시 등반을 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무산소로 등정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 김현정> 보통은 동력을 이용하는데 무동력, 무산소 이런 기록이기 때문에 더 뜻깊은 기록인 거죠. 최초 우리나라 최초. 그런데 산소통 맨 거하고 안 맨 거하고 차이가 어느 정도나 큰가요?
◆ 김창호> 8000m 이상에는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한국보다 산소가 3분의 1 가량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통은 8000m의 지대를 죽음의 지대라고 그러는데 사람이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적응과정을 거치고 올라가는데 산소를 사용하면 8000m에서 한 6000m대를 걸은 거와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서 산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위험스러운 그런 등반입니다.
◇ 김현정> 그냥 고산증을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좀 어지럽고 숨이 가쁘고 이 정도 알고 있는데 그 수준을 넘습니까? 8000m 넘어가면?
◆ 김창호> 그렇죠. 보통 저희 위도 30도에서는 3000m부터 고소증세가 나타나고 심화되면 고소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망, 사고에 이르기도 하는데요.
◇ 김현정> 그러면 8000m 이상으로 갔을 때 정상 올랐던 그 기억은 어떻게 희미하게라도 나기는 나세요?
◆ 김창호> 제가 그전에는 세계 2봉이 8611m였습니다. 그런데 에베레스트하고는 한 240m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 김현정> K-2하고 에베레스트하고 200m죠.
◆ 김창호> 그런데 수치로 보면 그냥 쉽지 않을까 그러는데 거기에서는 성층권 근처까지 가기 때문에 한 10m 단위로 공기의 산소량이 굉장히 많이 변합니다. 심지어는 공기가 청명하지 않고 가스냄새가 난다는 느낌이 있고요. 그래서 부족한 희박한 공기와 산소 때문에 뇌가 작동을 다 못합니다. 그래서 인지하는 것도 적고요. 그래서 제가 8700에서 정상까지 갈 때에는 몽롱한 기분으로 마치 구름위를 걷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기억에도 여기에 있던 것보다 실시간으로 이렇게 많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 김현정> 약간 기억상실같이?
◆ 김창호> 마치 영화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태극기는 잘 꽂고 오셨어요?
◆ 김창호> 정상에서 보통은 저희가 태극기를 들고 환희를 느끼고 그다음에 거기서 사진도 찍고 하는데 저는 이번에 그럴 느낌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보면 그냥 조용하게 앉아 있다가 2시간 가량.
◇ 김현정> 정신이 없어서.
◆ 김창호> 앉아 있다가 내려오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김현정> 내려와서도 기억이 잘 안 나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셨는지.
◆ 김창호> 기억 납니다. 그런데 마치 끊어진 필름처럼 이게 내가 희박한 공기속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그런 건지 진짜 현실이었는지가 구분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 김현정> 엄청난 일입니다. 무산소로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건 우리나라 최초 김창호 대장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고 오셨는데 이렇게 성공한 게 5월의 일인데 성공기자회견을 이제서야 하셨어요? 그 이유가 있었죠?
◆ 김창호> 저희가 히말라야 등반을 한다는 거는 개인적인 어떤 능력도 있지만 동료와의 교감과 동료와의 힘으로서 같이 손잡고 정상을 가는 게 어떤 등산의 매력입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1, 2등을 가리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저는 출국할 때 대원이 5명이 갔었는데 들어올 때는 1명의 대원을 가슴에 안고 들어와야만 했습니다.
◇ 김현정> 고 서성호 대원. 올라갈 때는 같이 갔는데 하산하는 과정에서 그만 세상을 떠났죠.
◆ 김창호> 네. 성호는 저하고 8000m 11좌 11개 봉우리를 같이 했습니다, 1년 동안. 그래서 동료를 넘어서서 형이었고 친동생이었는데 성호의 꿈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에베레스트를 산소를 안 쓰고 올라가는 게 하나의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성취하고 마지막 캠프의 텐트에 돌아와서 잠 자는 도중에 그렇게 변을 당했습니다.
◇ 김현정> 탈수증세, 탈진으로 결국은 세상을 떠나고 만. 친형제와 같은 동생. 꿈은 이뤘습니다. 서성호 대원. 꿈은 이뤘지만 가족들과는, 형제들과는 동료들과는 헤어져야 되는 상황 너무 마음 많이 아프시죠?
◆ 김창호>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래서 14좌 무산소 등반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 기자회견조차 두 달 동안 열지 못했던 김창호 대장. 대장님. 그런데 고 서성호 대원을 생각해서라도 그다음 꿈을 이루셔야 될 것 같아요.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 될 것 같아요.
◆ 김창호> 제가 이번에는 8000m 히말라야 지구상에 있는 8000m가 넘는 14개 봉우리를 한국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산소통을 이용하지 않고 그다음에 세계적인 기록으로 본다면 최단 기간 7년 10개월 정도 최단기간으로 등정을 했는데요. 지금은 특별한 어떤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호의 49제가 아직 남아 있고요. 하지만 다음에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14개를 오르고 이런 것보다는 어떤 양적인 것보다 좀 더 어떻게 오를 것인가라는 어떤 질적인 부분을 좀 쫓아가보려고 그래요. 그래서 저만의 낮지만 높지는 않고 7000m라도 제가 생각하는 그런 작품을 한번 그려볼 생각이 있어요.
◇ 김현정> 작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 김창호> 저는, 산악인들은 아이들한테는 놀이터에서 놀지만 산악인들은 히말라야니까 거기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 김현정> 장인의 투혼이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요. 힘내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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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7/5(금) 김창호 대장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 산소통은 山모독”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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