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0/3(목) 최명진 씨(최원균 옹 아들) “천국에서도 워낭소리 들리세요?"
2013.10.03
조회 445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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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최명진 (故 최원균 옹 아들)


여러분, 영화 <워낭소리>를 기억하십니까? 2009년에 개봉을 해서 자그마치 300만 관객이라는, 그러니까 한국 독립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인데요. 거기 주인공은 늙은 소 한 마리, 그리고 한 평생 땅을 지키면서 살아온 소의 주인 농부 할아버지였습니다. 많이들 울었어요, 그 영화보고. 빠르게,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느릿느릿 묵묵히 걸어가는 할아버지와 소의 이야기, 참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었는데요. 그렇게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바로 그제, 이 영화의 주인공 최원균 할아버님께서 폐암으로 별세하셨습니다.
지금 인터넷을 중심으로 뜨거운 추모열기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는 그 <워낭소리>의 의미를 아들인 최명진 씨와 함께 짚어보려고 합니다. 고 최원균 할아버님의 아드님 최명진 씨 연결이 돼있습니다. 최명진 씨, 나와 계십니까?

◆ 최명진> 네, 여보세요. 최명진입니다.

◇ 김현정> 지금 빈소에 계시는 거죠.

◆ 최명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어요?

◆ 최명진>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워낭소리> 감독님도 왔다 가시고요?

◆ 최명진> 아버님 별세하신 그날 오셔가지고 지금 현재도 같이 계시고요.

◇ 김현정>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계세요. 영화의 혹시 관객 분들, 이런 분들 중에 조문 오는 분도 계세요?

◆ 최명진> 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 또 실제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너무 많이 오셔서 딱히 누구 제가 명단을 드리기가..

◇ 김현정> 그렇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지금 많은 분들, 관객 분들까지 조문을 오는 이런 상황. 향년 85세세요, 우리 할아버님. 폐암으로, 그런데 폐암이란 걸 아신 게 얼마 안 되셨다면서요.

◆ 최명진> 2012년 12월경에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저희 9남매 병원을 모시고 갔는데 그 과정에서 폐암진단을, 말기 진단을 선고를 받았습니다.

◇ 김현정> 작년 12월에 말기진단을. 그러니까 손쓰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군요.

◆ 최명진> 네, 많이 늦었고요. 그다음에 너무 진행이 많이 돼서 준비를 좀 해달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럼 그때부터 계속 병원에 입원해 계셨어요, 할아버님?

◆ 최명진> 아니요, 그때 이제 담석도 같이 있어서 담석치료는 완쾌를 하셨고요. 그리고 곧바로 한 달 정도 있다가 시골집에 모시고 있는 게 좋다고 해서 시골의 집에 와 계시다가, 한 달 보름 전에 통증이 많이 또 심해져서 병원에 오셨다가 그때부터 이제 쭉 계시다가 그저께 별세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 김현정> 제가 듣기로는 마지막 까지 계속 밭 갈고, 소 끌고, 농사일 계속 하셨다면서요. ‘나는 농사를,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다’ 하시면서.

◆ 최명진> 원래 평생 농사일을 해오셨고, 또 그걸로 해서 저희 9남매를 키워 오셨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땅을 생각하셨던 분이 아버님이셨습니다.

◇ 김현정> 故 최원균 할아버님, 사실 연예인도 아닌데 단 한 편의 영화로 많은 분들한테 잔잔한 감동을 주셨고 워낙 강하게 각인이 되어 있던 분이세요. 그래서 성함은 잘 몰라도, ‘워낭소리 할아버지’ 하면 다 알거든요. 그 정도로 감동도 주시고, 영화도 큰 흥행이 됐는데. 그런데 그 화려한 흥행 뒷면에는 가족들에게 상당히 상처가 되는 일도 있었다면서요.

◆ 최명진> 네, 사실 그 영화를 통해서 저희 9남매가 평상시에도 저희들이 부모님께 기대에 충만은 되지 않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마는 9남매다 보니까 영화를 통해서 방영되고 실제로 누님 한 분 같은 경우는 식당을 하셨는데 폐업을 했습니다, 결국은.

◇ 김현정> 왜요, 무슨 일로요?

◆ 최명진> 안타깝게, 시골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시골 분들은 한 번 이미지가 조금 그렇게 되면 쉽게 말해서 팔아주지를 않으시더라고요.

◇ 김현정>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가 혼자 이렇게 외롭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본 관객들이 ‘아니, 9남매나 된다면서 왜 아버지를 저렇게 방치 하냐. 이 불효자식들’ 이렇게 된 거예요?

◆ 최명진> 네, 바로 그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있어서 폐업을 했고, 저도 지금 현재는 가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 김현정>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게 계세요, 최명진 씨는.

◆ 최명진> 네, 타이틀곡 <아버지>라는 노래로 3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대에서 한 번 이렇게 대기실에 어르신들 세 분 정도 오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 제가 또 잠깐 한 10분정도 오해된 부분을 설명해드려서 그런 부분도 푼 적도 있고요.

◇ 김현정> 영화라는 것이 편집이 되기 때문에 가족들의 얘기가 안 담겼을 뿐이지, 그런 건 아니죠. 좀 속상하기도 하셨겠어요 가족들이, 그럴때는.

◆ 최명진> 네, 그렇죠. 저희 9남매가 1년에 4번 정도 부모님하고 같이 해서 모입니다마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영화 방영되고 나서 같이 눈물 흘린 적도 있고요.

◇ 김현정> 마음고생도 좀 하셨고요.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지금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드리면서 아버님 어떤 모습이 제일 기억나세요?

◆ 최명진> 어릴 때 보면 오로지 소하고, 달구지하고, 농사일만 하셨는데.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그러면 지금 10월 말쯤 되면 추수가 끝나는데 보통 산에 가서 이듬해 3월까지, 봄에 농사일 시작하기 전까지 저희들하고 같이 산에 가서 한겨울에 나무를 하러 많이 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때 시골에서 저희들은 연료가 나무로 해서 밥을 먹고, 소죽도 끓이고. 그러다 보니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그렇습니다. 산에 아버지가 나무를 해서 같이 내려오는데 영화를 보셨지만 아버님 다리 한 쪽이 불편하시고, 그래서 산에서 아버지가 지게를 짊어진 채로 ‘너희들은 어리니까 하지 말라’고 하고 아버님이 짚고 내려오시다가 산 정상에서 굴러서 많이 다친 적도 있고. 또 비가 많이 올 때 보면 다리가 불편하시다 보니까 밭일을 하고 소낙비가 내려도 빨리 걷지를 못 하시고, 또 소가 빨리 못 걸으니까 집에 오시는데 보면 옷이 흠뻑 젖으셔서 이렇게 지게 짊어지고 오시는 그런 모습이 생각이 많이 나서 사실 빈소 앞에서, 저희 형제들도 그렇지만 어제도 그런 얘기 많이 했고.

◇ 김현정> 아버지의 그 쓸쓸한 뒷모습.

◆ 최명진> 눈물이.. 당연히 눈물을 많이 흘려서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되는데 그런 게 참 가슴 많이 아픕니다.

◇ 김현정> 아마 천국에서도 지금 누렁이와 함께 밭 갈고 계신 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할아버님.

◆ 최명진> 안그래도 어제 밤에 저희 형제들이 다 그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 김현정> 그런 얘기 하셨죠.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평안하실 거라고 믿으면서 워낭소리 할아버님 보내드리겠습니다.

◆ 최명진> 일단 국민여러분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요. 많은 관심을 주셔서, 열심히 하는 가수 되겠고. 너무 감사합니다, 국민여러분.

◇ 김현정>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