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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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0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오금자 할머니 (92세, 시집 '아흔 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 출간)
‘창밖을 내다보니
삼악산 눈꽃 송이송이 두 팔 벌려 나를 반기네.
살며시 뺨에 입맞춤하고 사르르 눈물되어 사라져 간 그대.
삼악산 첫눈.’
제가 이 시의 맛을 잘 살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참 순수한 시다, 이런 느낌 드시죠?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만날 분이 바로 이 시의 저자십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연세가 무려 아흔둘. 아흔둘의 할머님께서 생애 첫 시집을 내셨어요. 예순 넘어서 첫 시집 내도 이게 뉴스감인데, 자그마치 아흔둘의 할머님이 어떻게 첫 시집을 내게 되셨을지 이제부터 직접 만날 텐테요. 제가 할머님 사진을 봤거든요. 아주 전형적인 아흔두 살의 백발의 그저 여러분 댁에 계신 그 할머니 모습을 그려놓고 들으시면 됩니다. 만나보죠. 춘천에 계세요. 오금자 할머님, 오금자 시인. 안녕하세요?
◆ 오금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현정> 오금자 시인. 시인 소리 들으니까 할머니 기분 어떠세요?
◆ 오금자> 시인은 아니에요.
◇ 김현정> 시집 내셨는데.
◆ 오금자> 그저 낙서한 거지. (웃음)
◇ 김현정> (웃음) 아니 근데 할머님, 정말 아흔둘 맞으세요?
◆ 오금자> 아흔둘은 조금 잘못된 것 같아요. 아흔하나고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아흔둘이 돼요. (웃음)
◇ 김현정> (웃음) 죄송합니다. 어떻게 한 살을 미리... 아흔하나 할머님.
◆ 오금자> (웃음) 왜냐면 이 시집을 내년에 내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흔둘이랬어요.
◇ 김현정> (웃음) 첫 시집을 내셨는데 제목이 ‘아흔두 살 할머니의 하얀 집’. 그러니까 내년에 낼 것으로 생각하고 제목도 아흔두 살이라고 적으신 거예요. 할머님, 원래 교수 출신이세요?
◆ 오금자> 아니요.
◇ 김현정> 그러면 시는 아니더라도 다른 쪽의 글을 쓰던 문인이세요?
◆ 오금자> 아니요.
◇ 김현정> 아니면 남보다 훨씬 좀 많이 배운 분이세요?
◆ 오금자> (웃음) 아니요.
◇ 김현정> (웃음) 그러면 원래 뭐하던 분이세요?
◆ 오금자> 농사짓던 사람.
◇ 김현정> 농사짓던 분?
◆ 오금자> 네, 농사짓고 목장하고 산에서 나무심고 화전민이에요, 화전민.
◇ 김현정> 평생 농사짓던 화전민. 그런데 예순도 아니고 일흔도 아니고 아흔 넘어서 첫 시집을 내셨어요?
◆ 오금자> 그런데 내가 왜정 때 컸기 때문에 한글을 제대로 못 배웠어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려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글을 모른다는 건 수치보다도 죄책감까지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여든두 살에 평생교육원에 들어가서 문예반으로 가봐라 해서 그리 들어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 김현정> 잠깐만요. 여든 넘어서요?
◆ 오금자> 여든두 살에.
◇ 김현정> 여든두 살에 평생교육원 가서 더듬더듬 읽는 한글로 문예반을 가셨어요. 그러다가 문예반에서 시의 매력에 빠지신 거군요.
◆ 오금자> 문예반에 다니다가 결국 허리를 다쳐서 그만두고 쉬다가, 여든일곱에 다시 문예반을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귀도 어둡고 눈도 어둡고 이렇게 그 반의 학생들하고 어울리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또 그만뒀어요. 그리고선 혼자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썼다는 것보다도 낙서예요, 이건. (웃음)
◇ 김현정> 제가 보니까 이게 낙서수준이 절대 아니던데요?
◆ 오금자> (웃음) 낙서고 그냥 혼자서 엮어본 거예요.
◇ 김현정> 타고난 시인이시네요. 그래서 한 편, 두 편 쓰기 시작한 시가 몇 편이나 모인 거예요?
◆ 오금자> (웃음) 그건 엄청나게 많아요.
◇ 김현정> 엄청나게 몇 편이나요?
◆ 오금자> 한 200편. (웃음)
◇ 김현정> 200편?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200편을 모았는데, 그런데 할머님, 아무리 시를 써도 이걸 시집으로 묶어서 출판한다는 것은 또 이건 다른 얘기거든요. 쉽지 않은 일인데...
◆ 오금자> (웃음) 그건 나도 상상을 못했어요. 그냥 손주가 서울에 있으니까 손주며느리가 대학강사로 나가고 있는데. 걔가 ‘할머니 이거 우리 프린트를 해서 우리들 하나씩 나눠주세요.’ 그래서 ‘그러면 그렇게 하자.’ 그랬는데 그게 우연히 서울시의회에 있는 안준희 씨 눈에 띄어서 ‘이거 책 만들 수 있다.’ 이래서 별안간 만들게 됐어요.
◇ 김현정> 별안간. 그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첫 시집이 턱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 오금자> 그러니까 맨 먼저 시집을 받고 든 생각이 ‘이것 또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나.’ (웃음)
◇ 김현정> 부끄러운 생각이 또...
◆ 오금자> ‘이걸 글이라고, 이걸 시라고 썼나’ 하고 모두 조소할 것 같아서 어깨가 움츠러지더라도. 하나도 좋은 거 없어요.
◇ 김현정> 그런데 뜻밖에도 주변에서 전문가들이 다 좋다고 평을 쏟아냈더라고요. 보셨죠?
◆ 오금자> 그런데 춘천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 김현정> (웃음) 서울서만 그럽니까?
◆ 오금자> (웃음) 서울서만 그렇고 춘천은 그렇지 않아요. 춘천은 어떠냐면 ‘노인네 망령이야.’
◇ 김현정> (웃음) 아닙니다. 자제분들은 뭐라고 그러세요, 시집 보고?
◆ 오금자> 아이들한테는 비밀이에요.
◇ 김현정> 왜 비밀로 하셨어요?
◆ 오금자> 아직도 몰라요.
◇ 김현정> 왜요?
◆ 오금자> 애들은 뭐라고 하냐면 ‘어머니, 이제 좀 조용히 살다가세요.’ 그래요.
◇ 김현정> (웃음) 서운하셨나봐요.
◆ 오금자> 그럼, 서운했지.
◇ 김현정> 할머님, 그런데 그렇게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시 쓰시는 게 그렇게 재미있으셨어요?
◆ 오금자> 외로우니까. 그러고 나하고 친구들은 다 죽었거든요. 그러니까 자연이 벗이 됐죠. 나무하고 얘기하고 하늘 떠가는 구름하고 얘기하고, 그리고 밤마다 애인이 찾아오니까 달님이 찾아오니까. (웃음)
◇ 김현정> (웃음) 달님이. 그런데 할머님.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까르르르 웃으시는 모습이라든지 목소리도 그렇고 어쩜 그렇게 여고생 같으세요. 정말 아흔 넘으신 거 맞으세요?
◆ 오금자> 23년생이니까.
◇ 김현정> 1923년생 할머님의 인터뷰를 여러분 지금 듣고 계신 거예요.
◆ 오금자> (웃음) 그러니까 산새하고 얘기하고. 산새하고는 아주 친해요.
◇ 김현정> (웃음) 산새하고는 친구고, 달님하고는 애인 사이고.
◆ 오금자> 그런데 시집에 제일 많이 쓴 것이 달님이에요.
◇ 김현정> 할머님, 제가 사실 할머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요. 우리가 시인을 초대했는데 시 한 편은 낭송 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웃음) 직접 어떤 시 낭송해 주시겠어요.
◆ 오금자> ‘나는’.
◇ 김현정> 제목이 ‘나는’.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 오금자> 제목이 나는 산이 되고파, 물이 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산은 나를 보고 푸르게 살라하고, 물은 나를 보고 깨끗이 살라하고, 바람은 나를 보고 웃으며 살라하네. 나는 산이 되어 물이 되어 바람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 삼악산 자연인.
◇ 김현정> 할머님, 시도 곱고 할머님 목소리도 곱고.
◆ 오금자> 감사합니다.
◇ 김현정> 제 할머님 생각나서 눈물도 글썽글썽하고 그렇습니다. (웃음) 건강하시고요.
◆ 오금자> 한번 놀러오세요.
◇ 김현정> 삼악산 한번 가야겠습니다, 춘천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되시면 저희 모른 척 하시면 안 돼요. (웃음)
◆ 오금자> (웃음) 물론이죠. 대환영 할게요.
◇ 김현정>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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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12(목) 92세 '소녀시인' "산새하고는 친구, 달님하고는 애인"
20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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