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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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2/2(월) 탈영병 오해 父 "진술번복 선임병, 아들도 나도 용서"
2015.02.02
조회 909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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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이정호 (故 이 일병 아버지)



-불빛없는 방파제에서 경계근무서
-작년에만 2명 실족, 후속조치 없었다
-선임병, 징계두려워 거짓진술 한듯
-월급보내고 효행상 타온 착한 아들


지난달 16일 전남 목포시의 해안 초소에서 실종됐던 이 모 일병이 실종 일주일 만인 23일, 초소에서 5m 떨어진 해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실종 직후에는 총기를 소지한 채 탈영을 했던 것으로 판단됐지만 최종 목격자였던 선임병이 허위진술을 번복하면서 결국 실족사로 사건이 마무리됐습니다. 그동안 가장 마음 아파했던 사람은 약 일주일 동안 졸지에 탈영병의 부모가 됐던 이 일병의 부모님일 텐데요. 그래서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이 일병의 부모님께서 이 시간 어렵게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숨진 이 일병의 아버지 만나보죠. 이정호 씨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 이정호> 안녕하세요.

◇ 박재홍> 어렵게 시간 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 이정호> 별말씀을요.

◇ 박재홍> 우선 아드님께서 실종됐다는 소식은 언제 처음 들으신 건가요?

◆ 이정호> 제가 처음 1월 16일 아침 8시 35분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부대에서 말하기로는 ‘총기를 들고 제 아들이 사라졌다.’ 그렇게만 들었었거든요.

◇ 박재홍> 총기를 들고 사라졌다..

◆ 이정호> 네. 처음에 그런 얘기 듣고 나서는 설마설마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워낙 심성이 착한 애라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고요.

◇ 박재홍> 그렇게 해서 사고현장에 도착을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어떤 근무를 서고 있었던 건가요?

◆ 이정호> 제 아들은 TOD라고 열상감시장비 해안경계근무를 섰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초소 근무는 아니었고요. 그냥 허허벌판이었습니다. 방파제 위에서 근무를 서거든요.

◇ 박재홍> 그러면 초소도 없는 곳이고 시야 확보도 안 되는 곳이라서 굉장히 밤에 위험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펜스라든지 안전장치들이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나요?

◆ 이정호> 네, 뭐 앞이 바로 낭떠러지라서 그냥 두세 걸음 정도, 서너 걸음 정도면 바로 바다로 빠지게 돼 있습니다.

◇ 박재홍> 두세네 걸음 정도면 바다로 빠지는 위험한 곳이었는데요. 제가 언론보도를 보면 실제로 그전에도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 이정호> 그곳에서 작년에 2명이 추락을 했는데 1명은 본인이 수영을 잘해서 스스로 나왔고 나머지 1명은 빨리 발견을 해서 119하고 협조를 잘해서 살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그 한 친구는 구조를 하고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았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 박재홍> 이미 작년에 2명이나 실족해서 바다에 떨어졌던 적이 있었던 그런 위험한 지역이었는데 왜 군에서는 그 후에 후속 안전조치를 마련하지 않았을까요.

◆ 이정호> 글쎄요, 저도 그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인데요. 미리 앞쪽에 펜스라도 좀 해 놨으면 이번 같은 사고가 안 일어났겠죠.

◇ 박재홍> 그리고 당시 사고 당일 근무를 같이 섰던 선임병이 있었네요. 아버님이 만나서 말씀 나눠보셨습니까?

◆ 이정호> 제가 그쪽 헌병대 조사를 받고 나서 저하고 단둘이 대면을 했는데요. 그 친구가 처음에 저한테는 제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해서 공터에 있는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걸 확인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은 근무를 섰다는 얘기죠.

◇ 박재홍> 아드님이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고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고 증언을 했었던 상태였는데요. 그러다가 이제 시간이 지나고 아드님이 발견되지 않자 이 선임병이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뭐라고 진술을 번복했던 건가요?

◆ 이정호> 제 아들에게 혼자 경계를 세워놓고 본인은 차에 가서 잤다고 진술이 번복된 겁니다.

◇ 박재홍> ‘본인은 차에 가서 잤다.’ 이 선임병은 왜 거짓증언을 했을까요?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포장했던 건가요?

◆ 이정호> 아무래도 본인이 실수해서 사람이 사라진 거니까 징계 같은 게 좀 두렵지 않았겠어요? 그렇게 초반에 거짓말을 했으니 군에서도 그 선임병의 말만 믿고 실족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외부 탈영을 했을 거라고 거의 단정 짓다시피 해서 수색을 들어간 거죠.

◇ 박재홍> 그러면 선임병이 같이 근무를 했다면 아드님을 구할 수 있는 선조치가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이었네요?

◆ 이정호> 그렇죠, 아무래도 목숨까지 잃는 이런 불상사는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 박재홍> 그래요. 참.. 그래서 그 말씀 들으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이 친구가 거짓말을 했구나’ 그 사실을 발견하셨을 텐데.

◆ 이정호> 어차피 일은 벌어진 거고. 내가 그 친구를 원망한다고 해서 제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누구를 미워하고 가서 혼도 내주고 큰소리로 한마디로 나쁜 욕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제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 제 아들이 어차피 심성도 착한 아이였기 때문에 아마 아들도 가면서 다 용서하면서 갔으리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냥 용서를 했습니다.

◇ 박재홍> 평상시에도 아들이 참 심성이 착한 분이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부모님에게 어떤 아들이었습니까?

◆ 이정호> 진짜 엄마, 아빠 먼저 항상 생각해 주고요.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못해서 본인이 보통 월급을 타면 3분의 1을 집으로 보내줬어요. 그걸 본인이 이것저것 사먹거나 멋 부리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일단 집으로 돈을 다 송금을 해 줬고요. 학교 다닐 때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걔가 효행상을 받아오기 시작했었거든요. 꾸준히 해마다 꼭 1장씩 받아와요. 그러면 제가 농담으로 그랬죠. ‘아니, 너희 학교는 무슨 기준으로 너한테 효행상을 준다니?’ 제가 막 그렇게 놀리고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이제는 그렇게 놀릴 아들도 없고 하니까 참... 제가 진짜 어떤 아들이라고 표현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너무 착하고 너무 어질고 또 어디에 내놔도 흠잡을 데가 없는 애라서 그게 좀 안타깝죠.

◇ 박재홍> 그래서 일주일간 탈영병의 부모라는 오명도 쓰셨던 것이고. 마지막으로 군 당국에 한 말씀 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 이정호> 제가 이제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그쪽 사단장님한테 ‘애들 안전하게 군 생활을 잘해서 부모님 품에 따뜻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 하니까 사단장님도 ‘충분히 앞으로는 이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게 안전관리를 잘 해서 아이들을 부모님 품에 고이 보내드리겠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

◇ 박재홍> 알겠습니다. 그렇게 또 잘 마무리하셨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아버님 오늘 말씀 잘 들었고요. 후속조치 잘 이루어져서 아드님의 명예회복도 꼭 이루어지면 좋겠네요.

◆ 이정호> 감사합니다.

◇ 박재홍> 고맙습니다.

◆ 이정호> 네, 감사합니다.

◇ 박재홍> 초소에서 실족사했던 이 일병의 아버님이시죠, 이정호 씨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