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주요 인터뷰를 실시간 속기로 올려드립니다.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8(화) [AS뉴스] 황우석 제보자 "10년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
2015.12.08
조회 695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류영준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최초 제보자)



-제보 이후 취직 안돼, 연구의 길도 끝
-황우석 지지자들, 자택 무단침입까지
-줄기세포 기술보유 국내 연구소 많아
-업적 보여야 연구비 얻는 풍토 아쉬워


뉴스쇼 화요일의 코너, AS뉴스입니다. 오늘은 10년 전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2005년 12월, 우리 사회는 희대의 연구부정 스캔들로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었습니다. 바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입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국민적 영웅. ‘당연히 노벨상도 타겠구나?’ 여겼던 그 사람, 황우석 박사가 논문을 조작했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쉽게 믿어지셨습니까?

이런 국민적 영웅의 부정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보통 용기로는 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제보자가 대단했고요. 또 그만큼 많은 걸 잃어야 했습니다. 이 희대의 논문 스캔들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 황우석 연구실의 연구원이었던 류영준 씨. 그 제보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오늘 AS 뉴스에서 연결을 해 보죠. 류 선생님, 나와 계세요?

◆ 류영준> 네, 안녕하세요. 류영준입니다.

◇ 김현정> 그때는 황우석 연구실의 연구원이셨는데. 지금은 보니까 교수시네요?

◆ 류영준> 다행히 교수로 임용이 돼서 지금 3년째 잘 정착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그때 ‘PD수첩’에 제보한 뒤에 황 박사실에서 근무하던 병원을 그만두신 것까지는 제가 아는데요. 그동안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 류영준> 그 뒤로 취직이 잘 안 돼서 한 2년 정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전문 연구자로 살 수가 없어서 다시 의사직을 하기 위해 전문의를 취득하는 과정에 있었고요. 그 이후에 다시 다른 박사를 또 하게 되고, 일반적인 의사의 일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 김현정> 정말 그야말로 돌아돌아 오셨네요. 10년 전 이맘때, 지금도 생생하시죠?

◆ 류영준> 그럼요.

◇ 김현정> 당시 황우석 신드롬이 어마어마할 때인데. 내가 제보를 해야 되겠다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먹게 되신 어떤 계기는 뭘까요?

◆ 류영준> 그때 당시에도 수의대 박사과정으로 있었기 때문에 내부의 일어난 일들을 다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꼭 나서야 되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을 했고, 제 갈 길 가야 되겠다, 이거는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거든요. 그런데 조그마한 거짓말이 아니고 전체가 거짓말인 내용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는 걸 일단 알았었고요. 두 번째는 그 거짓말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해서나 명예 정도가 아니고, 그 파급이 사람 목숨까지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 김현정> 제가 알기로는 결정적인 계기가, 우리 류영준 교수님이 잘 아는 아이한테 임상실험을 하겠다고 나섰던 상황인 것 맞죠?

◆ 류영준> 네, 그렇지만 그것은 한 예일 뿐이고요. 실제로 다른 대상자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선택을 하는 상황이 황 전 교수에게 닥쳤구나, 이제는 자기도 도저히 조절을 못하는구나’라고 저는 판단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렇게 해서 용기를 내서 제보를 하셨는데요, 사실은 해결이 금방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셨을 거예요.

◆ 류영준> 그럼요. 1년, 2년 넘게까지 판단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생각보다 더 어려우셨죠?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으셨죠?

◆ 류영준> 예상을 했었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그런 일들이 막 발생을 하니까 저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김현정> 가장 고통스러웠은 순간, 한 순간을 꼽아본다면 언제가 떠오르세요?

◆ 류영준> 사실을 이야기를 하는데도 너무 믿어주지 않는 그런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고. 그다음에 물론 언론들도 중심을 못 잡고 있었지만, 언론밖에 믿을 수 없는 국민들이 볼 때는 너무나 분노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희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도 오고 그랬었죠.

◇ 김현정> 그때 가족들도 위협을 당하고 이러지는 않았습니까? 사실은 굉장히 두려움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 류영준> 그럼요. 일단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앞에 진을 치고 있었고요. 보도진도 그렇고 황 지지자도 그렇고. 그리고 실제로 집 안에까지 들어오시더라고요.

◇ 김현정> 지지자들이요?

◆ 류영준> 지금 당장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하여튼 들어오셨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아이나 식구들을 다른 데 피신해 놓고 그러셨어요? 피신시켜놓고?

◆ 류영준> 일단 제일 먼저 한 일이 피신부터 시키고 저하고 제 아내하고 그렇게 도망자 생활을 했죠.

◇ 김현정> 그런 일들까지 있었군요. 그래서 도대체 황우석 박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찾아보니까요. 제자들과 함께 세운 연구원에서 활발한 동물복제활동을 진행 중이랍니다. 개를 복제해서 연간 340억 매출을 올린다고 하고, 중국에 대규모 동물복제 공장을 설립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황 박사의 이런 활동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류영준> 개인 사업자로서 그렇게 하는 행보로는 문제가 크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다른 개인사업자에 대하는 것과 다르게 황 전 교수를 바라보고 있고요, 그의 행보에 큰 주목을 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걸 감안한다면 황 전 교수의 행보가 단일 개인의 행보라고 하기에는 지금 아직까지는 조금 더 관찰을 해야 되는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황우석 박사가 최근에 한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여전히 어떤 얘기를 하냐면 ‘논문에 실은 사진은 조작됐을지 몰라도 복제 줄기세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건 분명하다’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류영준> 사실관계에 대해서 지금 일일이 들어가면 조금 힘들고요. 그때 당시에 황 전 교수의 기획력이나 목표 그리고 남들에게 알리는 힘은 상당히 좋았고 컸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 그 목표에 너무 전도돼서 안 되는 실험을 됐다고 하거나, 또 제대로 나온 결과를 보다 유리하게 고치거나 이런 것을 한 행동이 그 사람을 못 믿게 하고 또 국가 지원이 안 되게 하는 그런 큰 걸림돌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어떤 결과나 목표를 내기 위해서 그 과정을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었다는 말씀이세요.

◆ 류영준> 지금도 그게 제일 문제가 되는 거죠.

◇ 김현정> 지금도 그게 제일 문제다, 그런데 사실 지지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얘기는 ‘황우석 사태 이후에 우리나라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정체가 됐다. 그사이에 미국, 일본, 유럽은 치고 올라갔다. 게다가 일본은 노벨상까지 받았다, 윤리도 중요하지만 이러다가 우리가 앞서가던 기술 후퇴당하는 거 아니냐?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었던 걸 지금 놓치는 거 아니냐. 그때 왜 제보를 해서 브레이크를 걸었느냐?’ 이런 얘기를 지금도 들으시죠? 류 교수님?

◆ 류영준> 그런 의견 저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견의 사실관계와 관점을 따로 조금만 더 들어가서 분석을 하면 그 주장이 그렇게 신빙성 있거나 강력한 주장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류영준> 일단 줄기세포 내부의 큰 줄기들, 그러니까 큰 스템(Stem)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에 배아줄기 세포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고, 또 배아줄기세포는 지금도 세계 선두권에 있습니다. 1등, 2등 하고 있죠. 지금도 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들이 한국에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왜 그 성과는 깎아내리고 잘못된 거짓으로 부풀려져 있던 사실만 기억하는지.. 저는 그게 반문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 김현정> 10년이 지난 과학계 돌아보면 좀 변했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결과를 향해서 과정은 어떻든지 그저 치고 나가는 풍토, 좀 변했나요?

◆ 류영준> 사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하시는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안 하시고 대부분 묵묵하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험실을 지키시는 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연구비를 수주하거나 또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풍토가 더 문제가 된다고 저는 보고요. 지금이라도 그 돈을 끌어오려면 정치권이나 어떤 기관의 연구비를 따내야 하는데 로비를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 내몰리는 연구자의 상황이 저는 더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1년 내, 2년 내 어떤 결과를 내야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빨리 결과 내라, 성과 내라’라고 닦달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묵묵하고 정직하게 오랜 기간 연구하는 풍토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 류영준> 네, 그게 더 힘든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렇게 닦달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더라도 본인의 영달을 위해서 결과에 집착하는 이런 과학자들도 여전히 있습니까?

◆ 류영준> 그럼요.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10년 전에 그런 큰 경험을 하고서도 의식의 전환, 그러니까 윤리를 잘 지켜야 우리 연구가 더 빛이 나고 안전하다는 인식보다는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윤리가 우리 발목을 잡고 있고, 그런 식의 경쟁 구도로 자꾸 해석을 하시는 그 자체가 아직 성숙되지 못한 그런 상황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 김현정> 황우석 사태의 첫 제보자, 황우석 연구실의 연구원이었던 류영준. 현재는 교수십니다.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당시 기록들을 꼼꼼히 정리해서 백서를 만들고 계시다고요?

◆ 류영준> 지금 저도 병원일도 해야 하고 학교 교수일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돼서 짬을 일부러 내서 기록을 하고는 있습니다.

◇ 김현정> 백서 말고, 류 교수님이 10년을 쭉 돌아보시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걸 잃고, 어떤 걸 얻었다고 생각하세요?

◆ 류영준> 그때 전문연구자의 길을 가려고 처음 길을 걷기 시작했었는데 그 꿈이 접힌 것은 저에게는 큰 잃은 것이 되고요.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약간 큰 시각에서 볼 수 있어서 지금은 그걸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사실은 공익제보를 했다는 이유 때문에, 불의를 눈감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본인 생명을 위협받고 가족 피신시키고 직장 잃고 몇 년간 엄청나게 고생하셨는데요. 혹시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또 똑같이 제보 하시겠어요?

◆ 류영준> 그때 당시에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죠. 제보하면 반드시 다치리라는 것을 뻔히 보는 상황이죠. 하지만 그때도 결정을 했듯이 지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 김현정>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용기에 감사드린다” 이런 청취자 문자들도 지금 들어오고 있는데요. 우리 학계가 여전히 성과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참 계속적인 성찰과 감시가 필요하겠구나, 오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 류영준>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AS 뉴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 그후 10년, 당시 제보자 류영준 교수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