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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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올해 3.1절, 슬프고 비통하다
-위안부 합의 후 日 왜곡, 韓 포장
-美, 박근혜 정부가 따른 결과
-할머니들, 나를 '왕대포'라 불러
-25년간 지탱해준 힘, 할머니란 이름
제97주년 3. 1절을 맞아서 오늘 뉴스쇼는 특별한 한 분을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25년간의 수요일을 쉬지 않고 떠받쳐온 사람.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던 목소리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 온 몸을 던져온 여성. 바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무슨 현안이 터질 때마다 수도 없이 전화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정작 윤미향 대표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오늘 뉴스쇼에서는 현안에 대한 입장을 넘어서 윤 대표의 삶과 여정까지 주목을 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제 옆에 나와 계십니다. 윤미향 대표님 어서 오세요.
◆ 윤미향> 안녕하세요.
◇ 김현정> 참 저랑 전화인터뷰는 자주 했는데 이렇게 직접 뵌 건 처음이에요.
◆ 윤미향> 그런 것 같아요.
◇ 김현정> 저는 어떤 여전사 같은 분이 오실 줄 알았는데.
◆ 윤미향> 저도 그랬어요, 사실은. (웃음) 김현정 선생님이 여전사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을 했어요.
◇ 김현정> (웃음) 그런데 너무나 부드럽고 인자한 어머니 같은 분이 와 계셨어요.
◆ 윤미향> 네, 저 부드러운 여자예요.
◇ 김현정> 원래 부드러운 여자. 저도 부드러운 여자. 부드러운 여자 두 사람이 오늘 나누는 대화. 그나저나 3. 1절하고 광복절은 우리 윤 대표나 정대협한테는 아주 특별한 날이죠? 어느 때보다 바쁜 날이고?
◆ 윤미향> 네, 바쁜 날이기도 하고 슬픈 날이기도 하고 분노스러운 날이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한 날이에요. 특히 할머니들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역사에서는 독립이라 그럴까? 광복이라 그럴까? 우리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는 그런 날들조차도 소외되었던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들은 국민임에도 국민에서 소외되었다라고 배제되었다라고 생각했던 그런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요. 더군다나 정부가 있으되, 사회가 있으되, 그분들이 여전히 길거리에서 절규할 수밖에 없는... 올해 3. 1절도 그렇잖아요? 이런 현실이 너무나 아프죠.
◇ 김현정> 그러게요. 올해 3. 1절은 좀 특별하고 좀 더 아플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드는 게요. 정부가 ‘드디어 아무도 못했던 위안부 합의를 우리가 이끌어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특히 잠시 후에 대통령의 3. 1절 기념사가 있을 텐데 아마 비슷한 취지의 내용이 나올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윤미향> 기가 막히죠.
◇ 김현정> 기가 막히세요?
◆ 윤미향> 할머니들은 광복 70주년이 우리에게 이렇게 고통일 줄 몰랐다. 우리가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70년에서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해방을 만들어야 된다라고 해서 나도 이제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해서 미국도 가고 UN도 가고 저 북방 노르웨이까지 갔다 왔다. 그런데 이렇게 무슨 한일합의? 기가 막히다라는 입장이세요. 그게 지금 3. 1절을 맞는 할머니들의 마음이고요.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가슴이 무너집니다.
◇ 김현정> 가슴이 무너지고 기가 막힌... 최근에는 정부가 그런 취지를 담은 편지를 할머님들께 직접 보내기도 했다면서요? 그건 무슨 얘기입니까?
◆ 윤미향> 참 재미있죠. 그전에는 그렇게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하고 이런 논의를 하고 있다라든가, 일본 정부가 이런 안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든가, 이런 연락도 없었다가요.
◇ 김현정> 소통이 없어서 문제였었는데요.
◆ 윤미향> 그랬죠. 그랬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설날을 맞이해서...
◇ 김현정> 설날 즈음에 왔군요?
◆ 윤미향> 설날 때는 할머니들이 사실은 본인에게 큰 아픔이 있어도 잊어버리고 다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 김현정> 좋은 날이죠, 우리 명절인데.
◆ 윤미향> 그럼요. 그런데 딱 편지에 또다시, 똑같은 말로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 역대 정부가 하지 못했던 거 이 정부가 해내겠다.’라고..
◇ 김현정> 편지 받고 할머님들 반응이 어떠셨습니까?
◆ 윤미향> 그걸 금방 저에게 갖고 오신 거예요. 저희는 할머니가 아니니까 모르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 윤미향> 모르는데 할머니들 한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런 게 왔다라고, 이게 뭐냐. 우리를 우롱하는 거냐. 다 이미 타결해 놓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거는 이거 받으라고 우리를 압박하는 게 아니냐. 우리를 뭘로 생각하는 거냐. 저 사람들은 우리가 늙었다고, 우리 할머니들이 이제 기억도 잃어가고 노인병에도 걸려서 무시하는 거냐. 또 다른 어떤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죠.
◇ 김현정> 그러니까 합의문이 나온 후에 진짜로 지금 달라지는 게 혹시 있습니까? 느껴지는 게 있나요?
◆ 윤미향> 오히려 일본 정부는 더 심하게 왜곡을 하고 있고요. 정말 심각한데요. 한국 정부, 일본 정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데요. 한국 정부 같은 경우에는 한국 국민들에게, 피해자들에게 포장을 해서 전달하려고 애를 쓰고 있죠. 저는 그게 한국 정부의 변명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공식 사죄했다라고 해석을 해 준다든가요. 그리고 일본에서 내는 10억엔이 배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고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배상이라든가요. 또 뿐만 아니라 분명히 일본에서는 소녀상을 철거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대한다라고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 김현정> 흘리고 있어요, 뭔가 희망이 있는 것처럼.
◆ 윤미향> 그렇죠, 그렇게 하고 있고 실제로 합의 내용 속에도 포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별개다. 소녀상 철거는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정부는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또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 김현정> 용납 않겠다, 이런 이야기들.
◆ 윤미향> 반대로 일본 정부 같은 경우에는 끝나자마자 바로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일본 정부, 일본 국민들에게 ‘이것은 배상이 아니었다.’라고 했고요. 아베 총리 같은 경우에는 ‘나는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죄도 안 한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성노예라고 하는 거 이건 일본에 대한 비방 중상이다.’라고 밝혔어요.
그리고 가장 최절정에 다다랐던 것이 일본 정부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UN 여성철폐위원회에다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 연행의 증거가 없다라고 보고서를 제출한 거죠. 그동안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여러 차례 권고를 내왔어요.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저는 이번에 12월 28일 합의가 굉장히 허상 위에 세워졌다라는 게 일본 정부의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뭐냐는 거죠. 아베 총리가 집권하자마자 했던 것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연행의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랬었죠.
◆ 윤미향> 그다음에 바로 그다음 날 일본 내각이 결의를 채택했어요. 그 이후에 이번에 합의가 이루어진 거예요.
◇ 김현정> 그게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였느냐는 말씀이군요?
◆ 윤미향> 그렇죠. 그러니까 결국은 거짓말이었고 한국 정부가 오히려 범죄국처럼, 가해국처럼 일본 정부에게 내주고 만 것이었다라는 게 이번에 합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계속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거죠.
◇ 김현정> 그럼 왜 그런 거예요? 우리는 왜 합의해 준 겁니까? 어떻게들 파악하고 계세요? 무엇 때문이었다고.
◆ 윤미향>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할 때부터 아베 총리에게 원칙을 내세웠어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 원칙에 있어서 피해자와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만나겠다라고요.
◇ 김현정> 실제로 안 만났었죠? 오랫동안.
◆ 윤미향> 사실은 그걸 피해자들이 요구했던 것도 아니에요. 그걸 보면서 우리는 어떤 안심을 했냐면 ‘이 정부가 이만큼 의지가 있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 김현정> 이것만큼은 정말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있구나라고요?
◆ 윤미향> 더군다나 피해자들이 요구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일본 정부에 압박을 계속하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워싱턴에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을 앞두고 이상한 인터뷰가 기사 하나가 실렸어요.
◇ 김현정> 그게 뭐였죠?
◆ 윤미향>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렸죠. 물론 메르스 파동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방미를 나중에 취소했지만요.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이 마지막 단계다. 상당 부분 진전을 이뤘다’ 기억하시죠?
◇ 김현정> 기억합니다.
◆ 윤미향> 그 기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외교부는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런 게 없다. 진전된 말이 없다. 피해자와 그리고 정대협과 의논할 만한 그런 사안이었다.’라고 했고요. 일본 외무성에서도 ‘저희가 뭔 얘기인지 모르겠다’라고 했거든요. 저는 그때부터 우리 정부가 달라지고 있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원칙이요.
◇ 김현정> 결국 그 배경은 미국의 압력이었다는 얘기입니까?
◆ 윤미향> 미국의 압력이죠. 오바마 대통령이 방일하기 전에 또 방한하기 전에, 2014년 4월이었죠? ‘내가 방일, 방한하기 전에 위안부 문제 너희 빨리 합의해라’라고 압력을 넣었고요. 그 이후에 아베 총리에게, 계속 일본 정부에게 압력 넣는 게 보였어요. 그런데 아베 총리가 달라지지 않은 거죠.
그러면 계속 사실은 해결을 해야 될 주체인 일본 정부에게 미국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되는데 방향키를 돌린 거다, 저는 그렇게 보고 싶어요. 우연히도 6월 그때 제가 어떤 인터뷰를 하고 있었냐면 미국의 한 언론사 기자가 갑자기 전날 저한테 날아와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총리에게 압력을 넣었는데 되지 않으니까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을 것이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베는 듣지 않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그걸 받아들이면 결국은 한국 정부가 정대협에 대한 압박을 넣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 김현정> 그런 질문을.
◆ 윤미향>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그럴 리가 없다고. 박근혜 정부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고.
◇ 김현정>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 윤미향> 그렇죠. 그렇게 원칙을 내세웠기 때문에 대통령이 취소할 리 없다고 했는데, 그 뒤에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됐고요. 한일 수교 50주년 축사에서는 그 과거사를 무거운 과거사를 내려놓자는 발언이 있기 시작했고. 그리고 특히 한일 합의 이후에 저희들이 너무나 깜짝 놀라서, 미국이나 세계 각지에 사는 저희 동포들 그리고 25년 동안 저희들과 함께 연대해 왔던 단체들에게 요청해서 수요시위가 24주년이 되는 1월 6일 함께 행동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미국의 각 지역에서 단체들이 데모를 하고 목소리를 내고 그랬어요. 그때 미 국무부 차관이 딱 한마디했죠.
◇ 김현정> 뭐라고 했습니까?
◆ 윤미향> 위안부 문제 계속 거론하지 말아라.
◇ 김현정> 그렇군요.
◆ 윤미향> 저는 그런 여러 가지 맥락을 볼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 12월 28일 합의 뒤에는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고, 역시 그 문제의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약자죠, 사실은. 그들에게 보기에는 정말 중요하지 않은 약자죠. 약자들의 인권 문제보다는 자국의 국익이 더 중요했다, 그게 결국은 또다시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아픔을 안긴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결국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고 있으니 중국을 견제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일본한테 힘을 실어줘야 되고, 일본에게 선물을 주면서 힘을 실어줄 방법으로 우리의 위안부 문제 해결 이걸 택했다, 이렇게 그림이 그려지네요.
◆ 윤미향> 거기에 또 한국 정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되니까.
◇ 김현정> 그러면 지금 이 합의문을 되돌릴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분명히 써있긴 해요. 방법이 있어요, 없어요?
◆ 윤미향> 그런데 뭐 선언이니까요. 그건 선언이죠, 조약도 아니고. 참 재미있는 건데. 글자 하나도 안 남겨놨잖아요. 문서로 안 남겨 놨으니까. 그냥 기자회견하면서 보도자료였어요.
◇ 김현정> 그러니까 도장을 쾅쾅 찍은 그런 문서가 아니에요?
◆ 윤미향> 아니에요. 그냥 두 장관이 기자회견을 한 거죠.
◇ 김현정> 그러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그 문건도, 문장도 그냥 보도자료에 있는 거예요?
◆ 윤미향> 그렇죠. 굉장히 허무하죠.
◇ 김현정> 그럼 되돌리려면 되돌릴 수 있는 건가요?
◆ 윤미향> 되돌릴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도 법률학자들도 그렇고 정치 외교관들도 이건 되돌릴 수 있다, 정부의 의지다, 이렇게 보는 거죠. 정부의 의지이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지금 일본 정부가 그렇게 합의를 해 놓고 저렇게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을 한다든가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 스스로 합의를 지금 깨고 있는 거니까 한국 정부가 얼마나 좋냐, 그렇게 지금 긍정적으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결국은 한국 정부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긍정적으로 보죠, 오늘. 희망적으로 보죠.
◆ 윤미향> 저도 그러고 싶어요, 3.1절이니까.
◇ 김현정> 그럼요.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 오늘 스튜디오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참 오랫동안 윤미향 대표하고 인터뷰를 진행해 왔는데, 아까 개인적으로 별로 아는 게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진짜 이 일을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윤 대표님?
◇ 김현정> 제가 1992년도에 28살 때 일을 시작했어요.
◇ 김현정> 28살 때. 제가 오늘 인터뷰를 하려고 쭉 찾다보니까 한신대에서 신학을 전공하셨어요?
◆ 윤미향> 그랬어요.
◇ 김현정> 저는 역사학이나 여성학위나 이런 쪽일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신학?
◆ 윤미향> 신학은 모든 그런 여성학, 역사학을 총 망라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는 사실 여자 목사가 되고 싶었죠.
◇ 김현정> 목회자가 꿈이셨구나.
◆ 윤미향> 특히 여성도 목회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기독교장로회 역사에서 배웠고. '그래, 내가 하자'라고 시작을 했는데 사실은 그전에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 김현정> 아니, 그러면 시인을 꿈꾸고 여성 목회자를 꿈꾸던 분들이 어떻게 여성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일에 뛰어들게 되셨어요?
◆ 윤미향> 그게 신학을 하려고 한신대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제가 배웠던 것들이 저에게 몸으로 정신으로 쑥 들어왔던 게, 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들으면서 “내가 피해자다, 나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나서서 증언할 수 있다”. 이런 증언을 들었을 때, ‘남편이란 존재가, 자식이라는 존재가 뭐였기에 저 여성들이 저렇게 위안부 피해자였다라는 걸 이야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냐, 우리 사회는’. 이런 생각이 들었고, 뿐만 아니라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텍스트 글자로만, 역사책 속에 나오는 글자로만 알고 있었던 역사가 그냥 제 앞에 그냥 푹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라 그럴까요? 그런 걸로 느껴져서 내가 뭐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마침 정대협의 간사를 찾는다라고 그래서 제가 자원을 했어요. 저는 자원병이에요.
◇ 김현정> 그렇게 시작을 하신 거군요.
◆ 윤미향> 강제, 저는 강제연행이 아니라 자원입니다. (웃음)
◇ 김현정> 시인을 꿈꾸다, 목회자를 꿈꾸다 결국은 이 일에 뛰어들어서 25년. 아니, 그런데 저는 참 놀랐던 게, 일본에 대한 감정은 사실 진보냐, 보수냐 이념을 가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최근에 빨갱이, 종북주의자 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상처받으셨다면서요. 이게 무슨 얘기예요?
◆ 윤미향> 사실은 참 가슴이 아파요. 그러니까 권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그렇게 색깔논쟁을 입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느 누구보다도 성명서도 많이 내는 단체지만 사실 외교부와 자주 만나고 여성가족부와도 자주 만난다라는 이야기를 해 왔거든요. 그런데 딱 12월 28일 이후에 갈등이 분명해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지금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저 단체가 위험한 단체다. 안보관도 위험하다’ 이렇게 보기 시작한 거죠. 참 뭐가 정권이 위기가 올 때마다 약자들의 아픔을 이용해서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그런 행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고 그 중심에 위안부까지 온 거죠.
◇ 김현정> 그런 일을 막 겪고 나면, 굉장히 힘이 빠지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하는 생각도 드실 것 같은데
◆ 윤미향> 그건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거니까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저는 또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낙관성이 저에게 있는 것 같아요.
◇ 김현정> 다행입니다.
◆ 윤미향> 낙관성이 있어서, 이 길을 쭉 가다 보면 저 길 끝에서는 결국 우리가 웃을 것이고, 그리고 그 길 끝에서 함께 만나는 사람들은 결국은 우리와 함께 걸었다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길 끝에서는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 김현정> 지치지 않을 각오가 돼 있으신 거죠, 그러니까?
◆ 윤미향> 그럼요.
◇ 김현정> 그런데 이거 얼마나 더 가야 되겠습니까? 정말 제대로 사과 받고 제대로 배상 받으려면.
◆ 윤미향> 우리 할머니들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최근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에게 “대표야”
◇ 김현정> “대표야” 이렇게 부르세요?
◆ 윤미향> 저보고는 “왕대포”라고 불러요. 할머니들이 왜 요, 오. 요 이런 발음이 안 되니까. 대포라고 불러요. 그런데 대포하면 대포집, 술집 이런 거잖아요. 그래서 그게 좀 많으니까 할머님이 늘 왕대포야 그래요. 그러니까 그게 할머니들하고 저와의 사이 25년 동안 맺어진 끈끈한 그런 인간애인데, “왕대포야”. “네, 할머니”. “보니까 틀렸지?” “뭐요?” “내가 살아 있을 때 눈 감기 전에 일본 정부 저놈들이 배상을 하면 그 배상 너희들한테 다 내놓으면서 저 나비기금에 보태서 권고도 날려보내고 베트남에도 날려보내고 너희들에게도 좀 용돈도 주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틀렸지? 그래도 내가 유서라도 써놓고 갈 테니까 내가 죽더라도 내 거 너희들이 계속 해 달라. 포기하지 말아달라”... 아이고, 눈물이 나는데요, 그 소리를 듣는데 지금은 할머니 얼굴에, 눈에 제 얼굴 형상이 잘 보이지가 않거든요. 어쩌면 사실은 제가 25년 동안 어떻게 여기 왔냐라고 자주 사람들이 물어요. 그런 할머니들 생각하면.. 사실은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좀 새삼 느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3. 1절에.
◇ 김현정> 눈가가 촉촉해지셨어요. 윤미향 대표님.
◆ 윤미향> 눈물이 제가 많아요.
◇ 김현정> 계속 그 희망 잃지 마시고요. 그 각오 놓지 마시고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지금 청취자 모든 분들이 함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윤미향> 고맙습니다.
◇ 김현정> 힘내시고요.
◆ 윤미향> 힘이 더 많이 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 윤미향> 고맙습니다.
◇ 김현정>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 오늘 3.1절을 맞아서 함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