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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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3/1(목)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용민 "윤이상이 통영 땅에 묻힙니다"
2018.03.01
조회 469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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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예술기획본부장)



- 49년만 귀향…고향땅 못밟고 세상 떠나
- 머리 맡엔 언제나 "그리운 통영 앞바다"
- 분단의 희생양 "음악적 성과 조명해야"
- 3.30 이장, 열흘간 국제음악제 이어져


[윤이상/육성녹음]
“여러분, 나는 윤이상입니다. 내가 구라파에 체제하던 38년 동안 나는 한번도 충무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 색, 그 잔잔한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나한테는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여러분 지금 들으신 이 음성.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생전 육성입니다. 상처 입은 용으로 불리던 작곡가 윤이상 선생. 독일 베를린 공원묘지에 안치되어 있던 그분의 유해가 얼마 전에 고향인 통영시로 돌아왔습니다. 충무, 그러니까 지금 충무가 통영으로 불리고 있는 거죠. 살아생전에 그렇게 그리워하던 고향 땅이지만 발 한 발자국 디디지 못했는데. 유해가 되어서야 이제 돌아올 수 있었던 사연. 오늘 3.1절 첫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용민 예술기획본부장 연결해서 들어보죠. 이용민 본부장님, 안녕하세요.

◆ 이용민> 네, 반갑습니다.

◇ 김현정> 유해가 지난 25일에 돌아왔네요.

◆ 이용민>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아직 이장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 이용민> 저희가 3월 30일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날에 맞춰서 선생님을 제대로 모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개막날에 일부러 딱 맞추시는 이유가 있어요?

◆ 이용민> 아무래도 개막일날 되면 경향 각지에서 많은 애호가들도 오시고 하니까 선생님 이번에 오실 때는 좀 환영받고 오셨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마음으로. 좀 일찍 오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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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그러네요. 쓸쓸하게 혼자 돌아오셔서 이장되는 그런 것보다는 기왕이면 많은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환영인사 속에서 돌아오시라 이런 의미?

◆ 이용민> 계절도 그때는 좋아서 꽃도 많이 피고 봄이 완연할 때 아니겠습니까?

◇ 김현정> 그렇겠네요, 그렇겠네요. 많은 분들이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지금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마는 도대체 윤이상 선생이 무슨 사연으로 한국 땅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거지? 또 가물가물해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은 또 모를 수도 있고요. 왜입니까?

◆ 이용민> 윤이상 선생님이 1917년생이시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특히 젋은 분들에게는 아주 오래된 인물이실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제 이분이 인생이 어떻게 보면 좀 꼬이기 시작된 동백림 사건도 요즘 젊은 분들은 또 잘 모르시는 분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 김현정> 1967년 동백림 사건. 동베를린에 근거를 둔 간첩단이 암약하고 있다. 이렇게 된 사건이죠, 간첩 사건?

◆ 이용민> 정부에서도 밝혀졌지만 상당 부분 조작된 부분이다 해서 명예가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에 있습니다만. 또 불과 몇 년 전에는 통영에 신숙자 사건이라고 해서, 통영의 아들 윤이상이 통영의 딸 신숙자 씨, 오길남 부부를 가족과 함께 속된 표현으로 하면 ‘북에 팔아먹었다’ 이런 프레임으로. 요즘은 이제 이것 때문에 윤이상 선생님이 아주 나쁜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 김현정> 그 두 번째는 뭐예요? 동백림 사건이야 워낙 유명합니다마는 두 번째는 뭡니까?

◆ 이용민> 그게 이제 오길남 박사라고 재독 경제학자인데요. 그분이 통영 출신의 부인을 맞아서 북에 전향을 해서 가셨다가 가족만 남겨두고 다시 혼자서 탈출하셨어요. 나오셔가지고 다시 또 우리 남한에 재전향을 하셨는데 이분이 쓴 책 안의 내용이 ‘윤이상의 권유에 의해서 우리는 북에 갔고 그로 인해서 우리 가족이 이렇게 해체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아직도 요덕 수용소에 있다.’ 그러고 윤이상 선생을 원망하는 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 김현정> ‘내가 그때 전향한 이유는 윤이상의 어떤 꼬임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적은 거군요?

◆ 이용민> 그런 일종의 그런 겁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 그분의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 그대로 지금 우리 국민들한테 각인이 좀 돼 있는 것 같고요.

◇ 김현정> 그런데 사실관계는 어떻게 파악하고 계세요?

◆ 이용민> 윤이상 선생님이 ‘오길남과 나’라는 글을 남겨놓으셨어요, 간단하게. 거기에 보면 한마디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오길남 씨를 제대로 만난 건 오히려 오길남 씨가 탈출하고 난 이후에 저희 가족을 좀 구해 주는 데 역할을 해 주십사하고 만났을 때가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본 게 처음이다. 그 이전에는 한인사회에서 멀찌감치 있어 본 게 다다’ 이런 부분인데. 한 분은 돌아가 계시고 한 분은 아직 살아계시고 하니까 아무래도 살아계신 분 목소리가 조금 더 반영이 되는 것 같고.

◇ 김현정>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돌면서 윤이상 선생이 또 이념의 희생양이랄까요? 그런 식으로 또 매도가 되고 있군요.

◆ 이용민> 그래서 그 가족들이 몇 해 전에 그래서 사자의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그것도 일종의 홀딩이 돼가지고 사건 진행이 안 되고 있는 걸로 지금 알고 있습니다.

◇ 김현정> 윤이상 선생 유족들이 이 오길남 씨에 대해서, 오길남 박사에 대해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는데 보류가 됐어요?

◆ 이용민> 계류, 그냥 보류돼 있는 상태고 뭐 특별하게 진행이 안 된 걸로 제가 알고 있거든요.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니까 돌아오시기는 돌아오시는데 또 약간 심란한 상태에서 마음이 좀 찜찜한 상태에서 돌아오시는 거네요, 윤이상 선생님.

◆ 이용민> 그렇습니다. 제가 인터넷의 보도를 보고 밑에 댓글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픈 거죠. 그래서 적어도 사실관계는 명확하게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그렇군요. 윤이상 선생. 어쨌든, 어쨌든 분명한 건 남북의 어떤 체제 경쟁이랄까요? 체제 경쟁이 극에 달하던 때 둘 사이를 어떻게든 연결해 보려고 뭔가를 좀 해 보겠다고 힘썼던 상징적인 인물? 이렇게 보면 되는 거죠?

◆ 이용민>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북도 왔다 갔다 하고 음악을 가지고 교류했던 건데 그것 때문에 간첩으로 찍히셨던 거예요?

◆ 이용민> 그러니까 처음부터 북하고 인연이 됐던 건 아닐 테고. 6.13 때 방북을 했죠, 처음에. 그게 67년도에 간첩단 사건이 되게 되는 계기인데 간첩 행위를 하러 간 건 아니고. 그 당시는 또 지금하고는 국내외 상황이 다 달랐을 테고. 또 선생님 계실 때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도 있습니다. 거기가 분단 도시였고. 그래서 거기에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라는 그림이 선생님 작품의 화두였기 때문에 그걸 좀 보러 가시고. 또 통영의 친구, 최상한이라는 친구가 그 분은 월북을 하셨죠. 그래서 활동을 평양에서 하고 있다 해서 친구도 만날 겸해서 어떻게 보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신 것 같아요.

◇ 김현정> 북한에 고구려 그림이 있어서 그 그림에 관심이 있어서도 그렇고 친구도 만날 겸 겸사겸사 북한에 갔던 건데 마침 그때 사실은 공안 사건이 좀 필요했고, 국내 정치적으로는?

◆ 이용민> 그렇죠. 그때 부정선거를 좀 덮어야 되는 이런 것들이 있어서.

◇ 김현정> 간첩으로 몰린 거예요.

◆ 이용민> 간 건 사실이지만 그때는 국가도 미성숙했고 해외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 않습니까, 그 당시는?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이용민> 그래서 이후에 여기서 2년 동안 복역을 하고, 국제사회의 구명 운동에 힘입어서 결국 망명의 길을 걷게 되는데. 선생님이 ‘남도 북도 다 내 조국이다’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남한을 올 수가 없기 때문에 북을 간 것이고. 북에 가서 전향을 한 것이 아니고 그냥 그때그때 방문을 해서 음악회 같은 거 같이 의논하고. 그러다가 선생님이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 현실 참여적인 곡을 줬습니다. ‘광주여 영원히’라든지 ‘화염 속의 천사’라든지 이런 곡들을. 그러니까 또 좀 불편해지는 거죠. 또 좀 우리 보수적인 분들 싫어하게 되고. 그래서 94년도에 문민정부 들어와서 YS가 청을 해서 들어올 뻔 하셨죠. 그때는 남북 합동 음악회를 선생님이 직접 기획을 하시고 통일이랄까 화해에 기여하시려고 했는데. 그때도 또 ‘그동안에 있었던 일에 유감 표명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우리 정부의 뜻이 전달되어서 거의 공항까지 오셨다가 ‘이게 말을 좀 잘못하면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도로 돌아가셔서 일본까지 오셔가지고.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육성도 남기시고 그 이듬해 돌아가시게 되신 거죠.

◇ 김현정> 제가 듣기로는 벽에, 윤이상 선생의 집 벽에 통영 앞바다 사진이 붙어 있었다. 얼마나 그리워했으면 그 사진을 매일 바라보셨다 이런 얘기 들었어요.

◆ 이용민> 제가 그 유품을 가지러 연말부터 제가 독일을 갔었는데 침대 머리맡에 딱 그게 있더라고요. 한 60년대 초반 정도 되는 통영 풍경이.

◇ 김현정> 끝내는 못 보고 돌아가신 거잖아요, 그 앞바다를. 끝내는, 끝내는. 그런 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분단의 희생양이고 이념의 희생양. 저는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서양 현대 음악사에서 윤이상 선생의 위치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라고 보면 돼요?

◆ 이용민> 많은 수식어들이 있는데. 사실은 우리가 학교 음악 시간에 보면 무슨 바로크, 고전 시대, 낭만 시대, 국민악파 이런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20세기를 현대음악 시대라고 하면, 20세기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즘 형성이 안 되는 거죠. 각개격파를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동양의 어떤 음악적인 어법을 서양 어법과 접목시켜서, 아직까지 어떤 특별한 이즘으로 대접받지는 못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20세기의 이즘으로 지금 현대 인정받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즘의 하나로 갈 수 있는 정도의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20세기의 작곡가 중에 한 사람이라고 저는 평가를 하고요.

◇ 김현정> 서양 음악에 동양 음악을 접목시켜서 이즘까지는 아니지만 이즘 직전까지를 완성한 분. 이렇게 해석하면 돼요?

◆ 이용민> 그렇습니다. 또 저희가 작가라는 게 돌아가시고 나면 그다음에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이분 작품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또 달라지기 때문에.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위상이.

◆ 이용민>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세계적인 20세기 작곡가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가 있는데. 지금 어떻게 보면 독보적으로 치고 나가는 분이 계시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서양에 있는 분들도 살아계실 때 20세기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평가를 했기 때문에. 정말 그런 데 노력을 기울이고 음악가를 음악가로 제대로 평가하고 조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도 아까울 판에 소모적인 논쟁에 이렇게 휘말리게 하고. 너무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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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정말 안타깝네요, 정말 안타깝네요. 돌아가시고 나서까지 이런 이념 갈등의 희생양으로 계속 삼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까운데. 어쨌든 이제 고향으로 돌아는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대로 자리를 잡으시게 됩니다. 3월 30일 음악제와 함께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무대와 함께 펼쳐지는 건가요?

◆ 이용민> 저희가 그날은 독일의 보훔 심포니가 개막공연을 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하고. 통영국제음악제 2018 개막공연이 있는데 그날 레퍼토리가 또 ‘광주여 영원히’거든요.

◇ 김현정> 윤이상 선생님 곡.

◆ 이용민> 그래서 준비되어 있는데 오전에 이장을 하고. 오후 2시쯤부터 일반인에게 개방을 해서 추모하실 분들은 와서 추모하시고 나머지는 한 열흘 정도 음악의 바다에 풍덩 빠지시면서 또 추모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추모도 하고 윤이상 선생님 곡도 듣고. 윤이상 선생 아닌 분들의 곡도 다 연주가 되는 거죠?

◆ 이용민>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통영국제음악제.

◆ 이용민> 25개 공연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다양한 공연들 바로크 시대부터 우리 현대음악까지, 또 우리 전통음악들까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겸사겸사. 3월 30일부터 열흘 동안 펼쳐지는 그 통영음악축제 여러분 한번 들러보시면 좋겠네요. 오늘 3.1절 뜻 깊은 이야기 고맙습니다.

◆ 이용민>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용민 예술기획본부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