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뉴스쇼

표준FM 월-금 07: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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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12/31(화) 이해인 수녀 "2020년, 가까운 행복 놓치지 마세요"
2019.12.31
조회 958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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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해인 수녀(시인)



올해 후회? "더 정성스럽게 들을걸"
약점도 자랑하는, 여백을 허용하는 삶
'막말' 정치인들, 왜 기도해도 안바뀔까
나를 향한 악플 보며 "오죽하면 나에게.."
한해 마무리, 고마운 사람들 위해 기도하기


2019년 김현정의 뉴스쇼 이제 마지막 인터뷰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인터뷰는 이분의 글로 시작을 할게요. 살아 갈수록 오늘 하루 한순간이 소중합니다. 힘들더라도 조금씩 더 인내하고 감사하며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결국 신께 드리는 하나의 기도이자 이웃에게 바치는 러브레터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여기 또 하나의 러브레터를 드립니다. 이런 글과 함께 새로운 산문집을 가지고 돌아온 분이 계세요. 이해인 수녀 올해 마지막 인터뷰 손님으로 만나보죠. 수녀님, 안녕하세요.

◆ 이해인> 안녕하세요. 부산 광안리에서 동백꽃 웃음과 함께 인사드립니다.

◇ 김현정> 동백꽃 같은 웃음과 함께... 시작부터 멋집니다. 수녀님의 올 한 해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 이해인> 간간이 몸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제가 밝게 명랑하게 부지런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글도 쓰면서. 빨리 지나갔어요, 1년이.

◇ 김현정> 다들 이제 이맘때쯤 되면 각종 후회들을 해요. 올해 이거 해야 되는데 못 했다. 저게 아쉽다. 수녀님도 후회라는 걸 혹시 하십니까?

◆ 이해인> 올해 제가 해마다 하는 후회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정성스럽게 듣지 못했던 소홀함. 그런 게 좀 걸리더라고요. 특히 가까운 사람한테 마음으로 함께 듣는 그런 정성이 부족했구나, 그런.

◇ 김현정> 아니, 그 경청 잘하시는 수녀님도 더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는.

◆ 이해인> 제가 쓴 시 중에서 듣기라는 시에서 소개를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들어라, 들어라 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들었니, 들었니 이렇게 나한테 물어보라고 3번. 3번씩 물어보겠다 그렇게 했는데 잘 못 하는 것 같고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듣는 것보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 김현정> 이런 좋은 내용들을 담아가지고 책을 하나 내셨어요.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위로가 되는 구절들이 참 많더라고요.

이런 구절이 우선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통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인간관계도 좋아지는 축복을 누리기도 하니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 무조건 실망하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요 그러셨어요.

◆ 이해인> 그렇게 도가 트인 말씀을 하셨네. (웃음)

◇ 김현정> (웃음) 이해인 수녀께서.

◆ 이해인> 제가 사실 11년째 이렇게 암으로 투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사의 기로에 있게 되고 많은 아픈 사람을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부끄러운 부분도 본의 아니게 많이 보이게 되고 이러니까 약점을 자랑한다는 거. 자기 부족함을 다 드러내 보인다라는 게 이런 거구나.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거룩한 것과 통한다. 이런 말이 저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살면 살수록 더 그 훌륭함으로 인해서 남한테 상처도 주게 되고 그래서 제가 못나고 허술한 게 훨씬 따뜻하고 좋은 거라는 생각이 조금 들더라고요, 근래에는.

◇ 김현정> 제가 그 뭐 먹을 때마다 김칫국물 한 방울씩 꼭 흘리는 사람이거든요. 굉장히 그게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 이해인> 제가 손택수 씨 시를 좋아서 인용한 건데 저도 김칫국물 많이 잘 흘려서 핀잔을 많이 듣고 수녀님 보면 실망하겠다고, 독자들이. 왜 이렇게 덤벙대고 얌전하지 못하냐고 그러는데 허술하다는 게 아무렇게나 살라는 뜻과 다르게 자기 여백을 허용하는 거죠.

◇ 김현정> 약점도 사랑해라.

◆ 이해인> 약점. 그 단어가 저는 참 좋더라고요, 성경에 나오는. 나에게 자랑할 것은 약점뿐입니다. 이런 고백이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 김현정>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우리가 비교급에서 조금만 탈피하면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라는 중국 격언을 좋아합니다. 긍정적인 행동 하나가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거든요. 이렇게 쓰셨어요.

◆ 이해인> 불평하고 이러는 시간에 내가 가서 촛불 하나를 더 키워놓는 희망의 어떤 행동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대화를 하다가도 누가 막 남의 흉을 보면 제가 나서서 우리도 부족한 사람인데 우리 오늘 그만하자 그런 얘기는. 그것이 내가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그런 행동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용기가 부족해서 우리는 끝까지 다 동조하잖아요, 남이 흉보는 걸.

그래서 우리가 촛불 켜는 행동을 하는 희망적인 존재가 돼야지만 또 그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실전에서는 어려워요. 체면 때문에도 어렵고. 자기는 얼마나 잘났어. 이렇게 생각할까 봐 이런 말은 못 하는 거죠, 체면 때문에.

◇ 김현정> 올 한 해 우리 사회로 봤을 때는 굉장히 갈라졌었어요. 민심이 상당히 갈라져 있는. 어떻게 새해에는 좀 이 갈등을 해소할 방법 같은 게 있을까요?

◆ 이해인>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일단 다름을 수용하면서 또 싸울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우리는 너무 악에 받친 것 같은. 성숙한 사람들이 저렇게 막 싸울까. 네 편, 내 편 이것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우리는.

그래서 우리 언어부터 순화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정치인들이 막말을 하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거기서 막 기도해도 왜 이렇게 안 바뀌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가 이러다가 어떻게 될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반성도 많이 하지만 좀 기도만 갖고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느낄 만큼 너무 우리 현실이 좀 어느 때는 슬프더라고요.

◇ 김현정> 제일 거슬렸던 건 막말. 정치인의 막말.

◆ 이해인> 막말을 그냥 보통 하는 게 아니라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 어린이한테 미안할 정도로 고운 말하라고 우리가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

◇ 김현정> 어떻게 하면 더 날카롭게 찌를까를 연구하는 것처럼 막말들을 해내는 거 보면.

◆ 이해인> 무참하게 막 죽이잖아요, 상대를 말로. 그래서 어린 연예인들 보면서 가슴 아프더라고요. 다 그것도 말에서 빚어지는 인신공격적인 그런 말이잖아요. 악플 같은 거. 가끔 저한테도 악플 달리지만.

◇ 김현정> 이해인 수녀님도 악플 공격받으세요?

◆ 이해인> 가끔 달려요.

◇ 김현정> 뭐라고요?

◆ 이해인> 왜 천주교 수녀로서 스님들하고 우정을 나누느냐. 이런 것도 그렇고 또 마더 데레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마더 데레사 마음속에 들어가 봤느냐. 왜 마더 데레사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하냐를 비롯해서 또 희망을 가져라 이러면 사는 게, 사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 그러면 수녀님이 이렇게 힘든 이 시대에 사는 게 뭐가 희망이냐.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 이러고 저한테 막 그렇게 한다니까요. 그래서 얼마나 살기 힘들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마음이 빡빡하면 막 욕하고 싶고 막 그렇구나. 우리가 다 위선자같이 보이겠구나.

◇ 김현정> 그러면서 그냥 위로하고 넘어가세요?

◆ 이해인> 그래서 이해하면서 그래, 오죽하면 나한테 그럴까. 그냥 용서해야지.

◇ 김현정> 오죽하면 이 말해도 싫고 저 말해도 싫고 악플을 여기저기 싸지르고 다니는 이 악플러들은 왜 이럴까. 하지만 이해해야지.

◆ 이해인> 그 악플러들한테 변명도 했다니까요. 제가 숨 쉬는 거, 살아 있는 게 희망이라고 했던 것은 제가 아파 보니까 차마 숨을 못 쉬고 힘들 때 정말 숨만 쉬었으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일단 살고 나서 내가 움직일 수 있어야만 고민도 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아 있는 게 희망이라고 쓴 거다. 이렇게 변명했다니까요, 제가.

◇ 김현정> 악플 밑에 댓글도 다셨어요?

◆ 이해인> 네.

◇ 김현정> 세상에나.

◆ 이해인> 그래서 말을 잘못할 때마다 세금을 붙여서 내면 어떨까. 벌금 내라고 그러면 말을 좀 곱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이제 올 한 해가 24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녀님,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 이해인> 1년 동안도 감사했던 일들도 많으니까 나한테 고맙게 힘을 줬던 사람, 용기를 줬던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면서 열 가지 이내로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 그분들 위해서 30초, 1분이라도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굉장히 좋네요. 저도 오늘 꼭 그거 해 볼게요, 수녀님.

◆ 이해인> 저도 해 보려고요.

◇ 김현정> 그리고 이제 올 한 해 정말 마지막 인사는 우리 뉴스쇼 청취자들을 위해서 수녀님 음성으로 따뜻한 시 한 편을 좀 선물로 주실 수 있을까요?

◆ 이해인> 이번에 펴낸 시 산문집 제목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인데 원래 이 시 제목의 모티브가 됐던 제가 쓴 가까운 행복이라는 시가 있거든요.

◇ 김현정> 가까운 행복.

◆ 이해인> 이 시를 그러면 청취자들을 위해서 제가 올해 마지막 선물로 아니면 새해를 여는 첫 선물로 읽어드릴까요?

◇ 김현정> 그 시, 이해인 수녀님의 목소리로 낭송을 들으면서 저희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이해인>

가까운 행복.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에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이런 시예요. 그래서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고 옆에 우리가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복스러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물의 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 김현정> 너무 좋습니다. 수녀님, 늘 건강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 이해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귀한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 이해인> 동백꽃 웃음으로 또 인사 마무리할게요.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이해인 수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