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나는 착불로 왔다
누가 지불해주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어서
내가 나를 지불해야 한다
삶은 매양 가벼운 순간이 없어서
당나귀 등짐을 지고
번지 없는 주소를 찾아야 했다
저녁이면 느닷없이 배달 오는 적막들
골목에 잠복한 불안
우체국 도장 날인처럼 쿵쿵 찍혀오는
살도록 선고유예 받은 날들
물건을 기다리는 간이역의 쪽잠 같은 꿈이
담벼락에 구겨 앉아 있다
꽃은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으로
이 세상에 온 대가를 지불하고
빗방울은 가문 그대 마음을 적시는 것으로
저의 몫을 다한다
생이여!
나는 얼마나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야
나를 지불할 수 있는가
얼마나 더 울어야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모든 날들은 착불로 온다
사랑도 죽음마저도
권대웅 시인의 <착불(着拂)>
태어나면서 인생값을 이미 치른 줄 알았기에
어릴 땐 주어진 모든 게 공짜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모진 삶의 풍파를 견디다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인생은 종착역에 계산서가 기다리고 있는 착불이란 걸.
유예된 그 값의 무게를 덜기 위해 매 순간 감사히,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아야겠다,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