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7 (화) 까닭
저녁스케치
2026.04.07
조회 177


내가 아직 한 포기 풀잎으로 태어나서
풀잎으로 사는 것은
아침마다 이슬을 맞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견디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 한 송이 눈송이로 태어나서
밤새껏 함박눈으로 내리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싸리빗자루로 눈길을 쓰시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눈물도 없이 나를 짓밟고 가는
너의 발자국을 고이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아직도 쓸쓸히 노래 한 소절로 태어나서
밤마다 아리랑을 부르며 별을 바라보는 것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까닭>

아플 걸 알면서도 왜 사랑하는지
왜 받는 것보다 주는 게 좋은지
힘든데도 왜 애써 웃는지
누군가가 물어온다면
그냥이라고 답하렵니다.
이유를 찾으라면 톺아보긴 하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마음이 하는 일에는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