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25 (목) 얇고 단단한 저녁
저녁스케치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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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가라앉습니다
냇물에서 건져 올린 모래를 다시 냇물에 놓아주듯이
작은 노을 모래들이 냇물의 물상에 흔들리면서
가라앉고 있습니다
제자리를 찾아갈 수 없는 작은 모래들이 남긴 물결이
냇물의 가장자리에서
지워지고 있습니다
어둠이 서서히 원을 그리면서 찾아오는 날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지도 않고
아주 무겁지도 않은
해가 지면 첫 번째로 도착하는 어둠
두 번째로 도착하는 어둠
얇고 단단한 어둠의 결이 온몸을 스쳐 갑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냉동 고기같이 슬라이스로 잘라나가는 날이 있습니다
촘촘하게 썰린 고기가 층을 이루면서 무너질 듯한
저녁이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가만히 서서 노을 뒤에 찾아온 어둠이
더 캄캄해질 때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우르르 쏟아질 것 같은 저녁이 있습니다
안주철 시인의 <얇고 단단한 저녁>
무언가 스치기만 해도
맥없이 넘어질 것 같아
조심조심 걸어보지만
파도처럼 밀려드는 어둠에
꾹꾹 눌러 담은 설움이 터져 나와
끝 간 데 없이 마음이 무너지는 날
마음 기댈 별 하나조차 찾을 수 없어
가만히 슬픔을 삼키는...
그런 날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