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친구보다 더 가까운 친구 같았던 나영 엄마 !
이혜경
2025.06.11
조회 62

70년대 중반, 결혼하고 처음 장만한 아파트가
'여의도 시범 아파트' 였어요
방 두개, 화장실 하나인 아파트가
저에겐 마치 궁전 같았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 한다는게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그런 시절 이었지요
저는 매일 쓸고 닦고, 닦고 쓸고, 를 반복하다보니
집안은 반짝반짝 ~~ 빛이 났었지요 ^^^

아이도 없고 단 둘만 지내던 그 당시에는
이웃이 동기간 보다 더욱 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 당시 저희는 7층에 살았는데
주로 음악을 들으며 소일하던 때였는데
가끔씩 중저음의 첼로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 왔어요
호기심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내려가보니
오층에서 들리는 거예요
그렇다고 초인종을 누를수도 없고 해서
그냥 돌아 왔지만
저의 호기심은 나날이 증폭 되었어요

어느날 첼로를 어깨에 메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그녀를 만났는데
키가 평균치보다 월등히 큰 그녀가 커다란 첼로를 메고 다가오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 이었어요
우리는 서로 옅은 미소를 교환하며
그날은 그렇게 지나 갔어요
그 이후에도 우연히, 자주, 만났는데
머지않아 아이가 생기고 보니
그녀도 저와 같은 처지라는걸 알수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친해졌는데
그녀가 첼로를 전공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양대 기악과를 나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집에서 렛슨도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중저음의 첼로 소리가 너무도 좋았어요
그때의 좋은 감정으로 막내에게 무리하게 평생 첼로를 전공하게 했던가 아닌가 ...하는
무거운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는 다소 힘들었다고 말하는데
악기 하나쯤은 다룰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제겐 항상 있었구요
막내가 어릴땐 제가 번번히 첼로를 들고 함께 출동 해야 했지만
악기가 커서 따라오는 고충도 분명 있었지만
첼로와 한몸이 되어 산 세월이 너무도 길었기에
음악을 전공하게 된 사실은 지금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을 하고 있으면서
힘듦 보다는 즐거움이 조금 더 컸기에
한편으로는 저의 자부심 이기도 해요 ^^^

나영 엄마와 만남이 끊겼던 그 이후에
저의 막내가 어릴때부터 첼로를 전공하게 되면서
동기부여가 되게 도움을 준
결코 잊을수 없는 이웃이 되었어요

그때는 아이 이름이 우리의 이름이 되어서
서로 이름을 묻는일은 아예 없었고
그래서 이름을 모르는 채로 이웃이 되었어요

80년대 초 여의도를 떠나게 되면서
바야흐로 격동의 시기가 다가오고
점차 연락이 끊어졌는데
이젠 아이들도 그 당시의 우리들 보다 훨씬 ~ 더 나이가 많아서
세월이 마냥 야속 하기만 한데
다시 만난다면 전해줄 말들이 참, 많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

*김성호 -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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