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뭉치와 가위사건 그리고 ..
홍대영
2001.02.13
조회 41
저는 명절 때마다 외박해야만 하는, 명절을 싫어하는 대치동에 사는 25살의 홍대영이라고 합니다... 위로 누나 7명이 있는 대가족 중 유일한 아들이자 막둥이입니다. 그러면 왜 제가 명절 때마다 외박을 할까요?...그건 누나 일곱에 매형 일곱에 각각 조카가 평균 두명이 있어 총 31명이, 넓지도 않은 시골집에서 다 잘려고 하니 잠잘 자리도 부족하고 베개도 부족하기 때문에 차라리 옆집 친구 집에서 자고 오곤 한답니다. 물론 우린 인구가 많아서 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재밌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팔남매를 훌륭히 키우신 저희 아버님 얘기를 할까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올해 73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전거만을 애용하시며 매우 검소하시고 인자하신 분입니다..다만 평소 자주 쓰시는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셔서 필요할 때마다 집안 곳곳을 찾아 헤매시는 점이 하나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랍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는 여기저기 쓰다 남은 노끈 조각들을 한데 모아 노셨는데, 충북 제천에 사는 다섯째 누나 가족이 놀러 왔다가 갔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뭔가를 찾으시길래 제가 " 아버지 아침 일찍부터 뭘 그렇게 찾으세요?" 하고 여쭤보니 " 어째 내가 쌀포대 묶을라고 모타논 노끈이 없다. 너 봤냐?" 그러시면서 계속 찾으시다가 갑자기 다섯째 누나에게 전화를 거시더니 " 너 어제 가면서 노끈 못봤냐? 어째 노끈이 없다." 그러시면서 찾아 보라고 하셨습니다. 한참을 찾던 누나가 "어제 애들이 가지고 놀다가 가방 속에 같이 노끈을 가져왔나보네요."라고 하자 아버님이 꼭 써야한디.. 가져갔다면서 다음에 집에 올 때 잊어버리지 말고 꼭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시고 "거기까지 전화한 돈으로 노끈 두 뭉탱이도 사고도 남것소...."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누나들 모두가 절도범으로 몰릴 뻔한 "가위 사건"이 있습니다. 평소 위가 안좋으셔서 약을 드시는데 그 때마다 쓰는 손바닥보다 작은 아버지가 아끼시는 가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추석에도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다음날 그 가위가 없어진걸 보시고 " 어째 또 가위가 없다냐... 이것들이 고 가위 가졌갔는갑다야..."하시면서 또 수화기를 드시더니 노끈으로 전과가 있는 다섯째 누나에게 " 너 또 가위 안가져갔냐? 정말 안가져 갔냐?" 여러번 확인하시고는 가까이는 광주에 사는 큰누나부터 멀리 충주와 서울에까지 모두 전화를 걸어서 " 느그들 아버지 가위 안 가져갔냐?" 하시며 차례차례 탐문 수색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더 크고 좋은 걸로 사다 드릴테니 누나들 그만 의심하세요.." 라고 말씀 드렸지만, "아니여야 ,그 가위가 잘 들고 좋은께 누가 가져가고 안준다.."하시며 그 가위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셨습니다. 그걸 보시고 어머니께서 " 아따 당신은 노끈 가지고도 글드만은 이번엔 고 가위갖고 딸들집에다 다 전화하고 그러시오. 아 전화세가 더 나오것소..." 하셨습니다. 결국 그 가위는 끝내 찾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약 드실 때마다 가위 얘기를 하시곤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차로 백양사 단풍구경을 갔을 때 일입니다. 한참을 가다가 여자친구가 껌을 아버지께 드렸는데, 저희 아버님은 연세가 많으신 관계로 틀니를 하셔서 원래는 껌을 드시면 안되는데, 아들 여자친구가 주는거라서 사양도 못하시고, 그 껌을 씹으시다가 결국 껌이 틀니에 엉겨 붙었는데 저희한테는 말도 못하시고, 뒤에서 몰래 틀니를 빼셔서 껌을 뗄려고 하는데 화장지가 없으셧답니다.. 저희 어머님 진술에 의하면 손을 밑으로 감추시고 막 뭘 찾으시더랍니다. 글더니 여기 저기를 둘러보시다가 운전자석 뒤주머니에 뭔가를 발견하시고는 하얀 뭔가가 있길래 그냥 눌렀더니 뭐가 눈을 톡 쏘드랍니다.. 저도 놀래서 뒤를 돌아보니 아버님이 한 손에는 틀니를 드시고 눈을 비비고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뭔가 향긋한 냄새가 차안에 퍼졌습니다.. 알고 보니 스프레이 형식의 방향제인데 보통 앞으로 분사되는데 그것은 위로 분사되는 것이어서 그것을 모르신 아버지 얼굴에 다 뿌려져서 그랬답니다. 여기에서 그치는게 아닙니다.

그 날은 너무 차가 많아서 거기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차에서 한번 내려보지 못하고 단풍 구경은 차안에서만 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휴게소에 들렸는데 아버지께서 먹을 것 좀 사오신 다고 편의점으로 가셨습니다.. 아버님 진술에 의하면 가서 막상 뭘 살려고 하니 애들이 뭔 과자를 좋아하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는데, 저쪽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뭘 사가지고 가길래, 가서 만져보니 말랑말랑한게 맛도 있을거 같고 아버지도 잡수실 수 있을거 같아서 그것을 4개나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차에 오시더니 " 이것이 맛있는갑드라야.... 사람들이 많이 사가드라...." 하시며 하나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터보시더니 " 어째 과자가 축축하다..이것은 어떻게 먹는다냐?" 하시며 저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보니 다름이 아닌 물티슈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차는 출발해서 딴걸로 바꾸지도 못한채 집으로 돌아 왔답니다. 그 날 어머님이 우리 구경도 못하고 고생만하다 왔으니까 다른 누나들한테는 놀러갔다는 말하지 말자고 하셨는데 며칠 뒤 아무것도 모르는 셋째 누나와 매형이 오셔서 백양사 단풍구경이나 가자고 말씀드렸는데 아버님이 저희 약속을 잊으신채 "뭔 단풍구경은 구경이냐..가서 차만 겁나게 보고 왔다." 라고 버럭 화내시는 바람에 결국엔 누나들에게 들키고 아버님의 비화도 공개되어 우리집은 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답니다.

아버지!! 이런 얘기 다했다고 저 구박하지 마세요....전 누나들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저희 가족 지금처럼 재미나게 행복하게 살게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여행스케치-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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