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복권이 첨 나왔을 때 일입니다.
복권하면 으례히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추첨 복권만 생각하시면 사셨던 어느날, 동생이 "잔돈이 남아서 한장 샀어요. 동전으로 이 은박부분을 긁으면 된데"라며 복권 한 장을 던지고 나갔습니다.
저나 엄마나 즉석에서 당첨금을 확인하는 이런 복권은 듣도 보도 못했던지라, 일요일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주제에 무슨..."하며 엄마는 이내 아무 생각없이 긁으시더군요.
그렇게 엄마 혼자 긁더니 다음 순간 "으~~~~아~~~악" 하며
붉게 상기된 얼굴과 함께 엄마가 비명을 지르시더군요.
저는 설마 하며 당황해서는 물었습니다.
"엄마, 왜 그래...?" 엄마 왈 "야~~~야~~~5백만원!!!세상에!!!
5백만원이래!!" 저도 당황해서 보았는 데, 진짜로 5백만원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엄마나 저나 많이 흥분해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침착하게
"엄마, 그래도 우리 다시 확인해 보자고요. 설마 이렇게 쉽게 복권이 될리가 있수?", 잘은 모르지만, 뭔가 이상해요"
라고 말했지만,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엄마는 손이 전화기에 가 있고
멀리 광주에 사시는 이모에게 전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야, 셋째야, 나다, 큰 언니!, 야 나 복권 5백만원짜리 붙었다. 사실이여,
내가 그지뿌렁하겠냐? 참말이랑께" 로 시작한 전화는 거짓말 보태서
사돈에 팔촌까지 전화를 하시기 시작했고, 옆에서 만류하는 제 얘기는 도통 듣지 않으시고, 여기저기 전화만 하시며, 어쩔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엄마의 그런 모습 살다살다 첨이었습니다. 완전 딴 사람이더군요.
그리고 결국 밤에 동생이 오자 바로 대뜸 "야, 니가 사준 복권 5백만원 되었다. 참말로 이게 웬 횡재냐" 이러시더라구요.
그러자 동생도 놀라 "어디, 어디?" 하다가 이내 "뭐야 이거?"
이러더라구요.
알고 보니 엄만 당첨금만 보고 똑같은 그림 세 개를 맞춰야 하는 걸 모르셔서 혼자만 착각하신 거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허탈해 하시는 엄마의 한숨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복권 한 장에 웃고, 허탈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은 아마 평생 마음에 새겨질 꺼 같습니다.
거기다가 그 달치 전화비는 어마어마하게 나와서 평소때 3배에 가까운 비용을 내셔야 했고, 그 때 이후로 복권만 보면 쓰잘데기 없는 돈낭비라고 거들떠도 안 보십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좋은 돼지꿈을 꿔도 복권은 절대 안 사실껍니다. 특히 즉석복권은요.
저희 엄마 참 순진하셨죠?
스카이-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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