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아들
나근상
2001.05.17
조회 64
금번 5월 16일 스승의 날을 즈음하여
작년에 정년을 하신 저희 부친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냥 지나가기가
좀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끝에 한 분 계시는 형님에게 대뜸 전화를 하여
"형님, 아버지께서 작년에 정년도 하시고 해서 요번 스승의 날에는 아무래도
시원섭섭하지 않겠어요? 요즈음 등산도 자주 가신다니 등산용품이나 멋진 걸로
선물 해 드립시다." 하였더니
형님 왈 "벌써 등산화랑 선물을 해 드렸으니 염려 말아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화라도 한 통 하지 하는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나이가 마음을 품었으면 뭘 하나라도 찾아서
할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작정으로 제가 중학교 삼학년 때 아버지와 저 사이에
있었던 내용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중3 때 담임선생님은 다름아닌 저희 부친이셨습니다.
원래는 반 나누기를 할 때 3학년 1반 푯말에 줄을 섰는 데, 조금 있으니까
제 친구 하나가 다가와 "니 빨리 4반으로 오란다. 너거 아부지가 빨리 오라크드라"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뭐 반갑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워낙 1반 선생님이 학교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셔서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1반 선생님이 눈짓으로 따라가라고 하여 4반으로 뛰어 갔더니
부친께서는 딴청만 하고 계셨습니다.
이리하여 4반으로 반을 옮겼습니다만 그게 좋았던 건지 안 좋았던건지는 아직도
(지금이 제가 서른일곱이나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세요
[사건1]
국어시간에 떠들었다.
키가 작았던 관계로 제일 앞 줄 교탁 밑의 자리가 저의 자리였는데 친구와 장난을
치다 그만 떠들고 말았는데...
국어 선생님 왈
"내가 니를 안 때리모 니가 선생 아들이라 봐준다꼬 친구들이 생각하거째" 하며
머리 가운데를 한방 "퍽" 친구들 "조용"
그 사건이 저의 어린마음을 얼마나 다치게 하였던지
그 순간부터 아직까지 국어선생님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84학번인데 대입학력고사에서 국어는 만점 받았습니다.
국어 선생님 영향인지.....?
[사건2]
저희 반 친한 친구들이 학교 뒷산으로 놀러가자고 하여 따라 갔습니다.
가자 마자 요것들이 가방 팽개쳐 놓고 "짤짤이"를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보나마나 제 친구들이 방패막이로 저를 데리고 온 거였지요.
저희 부친께서는 학생과장이기도 하셨거든요.
저희 중학교는 남여공학이어서 부친께서 주로하는 활동이 방과후 풍기문란.
모범에서 일탈한 학생들 행동, 만화방, 탁구장 출입등을 관찰 지도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지요.
안되겠다 싶어 먼저 집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친구들이 ....
"야 그러기 있나. 니 그리 안봐떠마는 치사하구로 그라끼가."
"가치 내리가자 쫌 있다 가끼다" 등등"
이종환형님께서도 대충 짐작이 가시는 그런 말들을 내 뱉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죽치고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예상이 되시죠??
뒷 산으로 올라오는 오솔길을 따라 부친께서 올라오시는 게 빤히 보였습니다.
달리 도망 갈 곳도 없고해서..
한심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부친께서 당도하셔서...
(참고로 부친께서 지니신 몽둥이는 1미터 정도의 박달나무를 벗겨서 끝에는 대못
을 하나 박은 것이었습니다.
저희 학교 학생들에게는 가히 두려움의 .... 짐작되시죠? )
하는 말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었지?"
혹시 "나쁜 짓 한거 아닌가?" 하셨습니다.
저는 고개도 못 들고 빨리 상황이 해제되기만 기다렸습니다.
그 때 한 친구가 하는 말
"샘예 죄송하게 되십니더. 함마 용서해주이소" 하였다.
제 생각에 "일마 이기 다 불라 카나 ? 입이 바짝 탔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뭐를 용서해라 말이고" 하시니
대뜸 또 다른 간 큰 친구가 거짓말로
"집에 일찍 가가꼬 논에 모짜리도 하고 해야 되는데 일찍 안가고 놀고 안자서예"
했다.
그렇게 하여 상황 해제
아버지는 제게는 한마디도 안하고 빨리 집에 가라 하고 내려가셨습니다.
집에 와서도 물론 한마디도 없어셨지요.
[사건3]
사건2이후로는 제가 엄청 바빴습니다. 친구들 따라다니느라고요.
아버지 입장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그 때는 몰랐지만.
어느 날 종례시간 즈음 친구들이 교실에서 또 "짤짤이"를 하였는데
제 절친한 (지금도 친한) 친구가 "내 변소 좀 가따오께" "한분마 짚어다고"
"지금 빠지모 몬한다 아이가"
하는 수 없이 "알았다"하고 짤짤이 판으로 가자마자 아버지께서 떠셨습니다.
부친께서 교탁에 서시자 마자 곧 "짤짤이 한 놈들 다 기상"하셨습니다.
곧이어 열 댓명이 일어났고 더 이상 일어날 사람이 없는 분위기였는데
뒷꼭지가 스물스물한게 제 기분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반 친구들이 전부 내만 쳐다보는 것 같아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죠
결국 저도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는 말
"이것들이 하라카는 공부는 죽으라고 안하고 ... 그래갖고 대학 가겄나!
간부들 다 나와"하셨습니다.
또 제가 간부 다섯명 중에 하나인 대의원이 아니었겠습니까.
앞으로 나가서 칠판에 손을 짚고 엎드렸고 아버지께선 왼쪽부터 차례로
박달나무 몽둥이로 세차례 씩 퍽퍽하며 내게로 다가오셨습니다.
이거 뭐 만화책에나 나오는 광경도 아니고 참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마침내 제 차례가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제일 아프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황 해제
그 이후로는 친구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요구나 부탁은 없었으며
지금 상황에서 보면
친한 친구들은 공부도 잘 안하고 "짤짤이" 같은 노는 것만 좋아해서 그런지
농사짓는 친구들이 많답니다.
얼마 전에 시골로 동창회를 갔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한 참 농번기로 접어드는데 .... 아그들아 화이팅이다.
죄송합니다.
TO BE WITH YOU 한스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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