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앗, 돼지표!
정은경
2001.05.17
조회 66
안녕하세요. 해마다 5월이면 선생님들과 학창시절이 생각납니다.
약 23년전,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저희 학생주임 선생님은 무척이나 뚱뚱한 아줌마 선생님이셨는데, 눈이 부리부리하고 목소리도 큰데다, 항상 매를 들고 다니서셔 저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인상이 그대로 실려 있는, 그 별명도 돼지표 였지요. 그 날은 선생님이 안 계신 자습시간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떠들고 있었지요. 그 나이때 자습시간에 공부합니까? 할 얘기도 많고... 저는 그 때 맨 뒤 자리였는데 일어서서 무언가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앞문이 열리며, 돼지표 등장. "앗, 돼지표다." 누군가의 말에, 순간적으로 전 책상 밑으로 숨었죠. 왜 그랬는진 지금도 모릅니다.
"너, 책상 밑에 들어간 학생, 나와. 너 다른 반이지?"
"저... 이 반 학생인데요."
"그런데 너 왜 숨었어?"
"저... 무서워서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내가 널 잡아먹냐? 무슨 짓 했어?"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 했는데요..."
꿀밤 한 대로 그 날 사건을 마무리하며 전 십년감수했습니다. 돼지표 선생님은 영어 담당이라 중학교 3년을 엄청나게 만나면서, 볼 때마다 간이 철렁하며 보냈습니다.
약 10여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친구의 결혼식에 갔습니다. 일찍 식장에 도착한 저는 무심코 가운데 길을 따라 홀 안으로 쭉 들어갔습니다. 순간, 헉, 돼지표 선생님께서 한복을 입고 앞에서 오고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순간, 180도 회전하여 뒤로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신부 대기실에 가서 이야기해 줘야한다는 사명감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때, 으악, 돼지표가 언제 여기에? 아시다시피 예식장의 가운데 신부가 들어가는 길은 좁고, 분명히 돼지표 선생님을 뒤로하고 걸었는데 벌써 앞에 와 계신 겁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만,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인 두려움에 다시 뒤를 돌았습니다. 꼭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장면 말입니다. 전, 그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돼지표가 앞, 뒤에 한 명씩 있는 것입니다. 쌍동이 돼지표 였습니다.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얌전히 "안녕하세요?"인사를 한 후, 얼른 신부 대기실로 갔습니다.
"연신아, 연신아, 돼지표, 돼지표가 있어. 식장 안에.. 둘이나... 나, 죽는 줄 알았어."
"아참, 내가 얘기 했어야 했는데, 우리 큰 시고모님이셔. 나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어. 네 자매님이신데, 똑같이 생기셨어."
"뭐, 둘이 더 있어? 나, 간 떨어져서 빨리 가야겠다야."
심호흡을 하고 식장으로 되돌아온 후에도 식이 시작하기 전 분주히 움직이시는 선생님과 그 자매님들을 볼 때마다, 식이 끝난 후 가족사진을 찍을 때 4자매를 확인 하는 순간, 그 때 제가 조금난 나이를 더 먹었다면, 아마 ..... 했을 것입니다.
강수지 아쉬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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