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낮의 고성방가 !!
조희숙
2001.07.04
조회 44
지난 목요일인가 봅니다. 여느때 처럼 빨래를 비벼빨고 집안 청소를 분주히 하던 조용하고 나른한 오후였습니다. 확성기를 부착한 차량까지 동원하여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무언가 열심히 방송을 하는 갑작스러운 소음이 들렸습니다.
그건 "싱싱한 야채 왔습니다. 야채 들여가세요." 나 "물 좋은 먹갈치, 먹갈치가 왔습니다.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하는 싱싱하고 물 좋은 갈치 들여가세요" 이런식의 늘상 들어오던 낮고 조용조용한, 그런 친숙한 방송이 아니었습니다.
"주민여러분, 잠시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농협에서 나온 직원들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국내 농산물 판매 저하에 대비하여 산지에서 직접 생산한 싱싱한 농산물을 무료로 나누어 드리며, 신토불이 국내 농산물 소비를 위한 홍보를 하고자하오니 주민여러분께서는 아파트 정문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나오실 적에는 비닐봉지나 바구니 등을 한가지씩 가지고 나오시고, 절대로 절대로 돈은 가지고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농산물 수입개방''과 ''국내산 농산물 소비증대''등의 자못 진지하게 들어야할 이야기를 해가며 비장하기까지한 목소리는 힘이 있었고 꼭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시댁이 농사를 지으시기에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몇번인지 반복되는 확성기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듣자하니 ''무료''라는 말 또한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공짜라면 양재물도 마신다는 말처럼 정말 솔깃했습니다. 더군다나 국내 농산물 소비 증대를 위한 홍보라고 하니 나쁜 일도 아니다 싶어서 저도 아이손을 잡고 확성기 방송 소리를 따라 나섰습니다.
방송이 나오는 곳에는 큰 천막이 쳐져 있고 옆에는 나무 발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사방을 둘러 쳐진 플랭카드에는 00농협 협동조합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씌여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00농협 아무개라는 명찰도 달고 있어서 정말 농협직원들이 맞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의자도 몇 개 준비되어 있었고 열명 남짓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천막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을 소개하고는 농산물 수입개방과 그에 따른 국내 농산물 생산농가가 입게되는 타격에 대한 이야기를 진땀을 흘리고 침 튀겨가며 설명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원지역 농협에서 왔다는 직원은 국내산 소금 감별법과 바코드의 숫자로 생산국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며 8이라는 숫자로 시작하면 국내산이고 6자는 중국산 4자는 일본산이라했습니다. 각 나라 담배들을 예로 들어 보이며 정말이지 열심히 설명을 하더군요.
시간이 제법 흘렀고 세 살짜리 아이가 보채어 그만 일어나려 했습니다. 돌아보니 그새 모여든 인파로 나갈 틈이 없었습니다. 옆에 쳐진 발을 들고 나가려 했는데 제 앞의 어느 아주머니가 나가시는 모습에 그때까지 국내산 농산물을 꼭 좀 이용해 주시라는 당부의 말을 상냥한 미소로 띄고 건네며, 소금이며 미역,달걀 등을 나누어주던 농협직원이 눈을 부라리고 냅다 고함을 지르며
"아줌마, 거기 드나드는 출구 아닙니다."하는 겁니다.
''날도 더운데 고생하는 사람 생각해서 끝까지 듣고 가자.''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보채는 아이를 달랬습니다. 직원의 말은 계속 길어졌습니다. 오랜시간 자기 말을 들어주어 고맙다며 이제는 농산물이랑은 전혀 상관도 없는 무슨 유황성분의 비누도 나누어 준답니다. 쪼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러더니 이번엔 지역 특산품으로 개발중인 유황사료먹인 청둥오리와 한약재를 섞어 만든 건강식품을 올 9월에 출시 예정인데 홍보 비디오를 보여주겠다 합니다.
농협직원은 약장수였습니다. 담배연기를 쏘인 리트머스 시험지 등으로 니코틴 제거 시범을 보여준다며 무슨 마술 같은 쇼도 보여줍니다.
곧이어 396,000원짜리 제품을 딱 절반값인 198,000원에 준다고 합니다. 그것도 판매용이 아니라 농협직원 시음용을 ''특별히''판매한다고 강조하고 강조했습니다. 지로용지를 나누어주고 신청을 받는데 몇몇 아주머니들이 손을 번쩍번쩍들고 신청을 하더군요. 그런데 그 모습이 이상스러웠습니다. 너무나도 열심히 호응을 하던 아주머니들은 평상복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제 주변의 여느 아주머니들과는 다르게 외출복을 갖춰입고 있었습니다.
화장을 하고 외출복을 갖추어 입고는 공짜 농산물 나누어 준다는 말에 한시간이 넘게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대충 상황 파악이 되더군요.
그래서 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한마디 쏘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받아들고 있던 500g짜리 소금 한봉지와 중량표시도 없는 미역과 여섯 개 포장이 된 달걀꾸러미를 패대기 치고 싶었습니다. 먹는 음식 함부로 하는 것 아니라 하신 어른들 말씀이 있어서 얌전히 들고 돌아섰지만 뒤꼭지가 개운치 않고 속이 상했습니다.
그렇게 동네가 떠나가라 확성기 써가며 방송을 해도 꾸욱 참고 들어준건 ''농협''이라는 공신력있는 단체에서 하는 일이기에 그랬습니다.
그 지루하고 긴 사설을 꾸욱 참고 들었던건 내 부모님도 농사를 지으시기에 농산물 수입개방이 남의 일 같지 않기에 그랬습니다.
헌데 건강보조식품 쯤 될법한 물건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며 판매하는 행위에 한마디 대꾸도 못한 제 자신이 못난 것 같아 속이 무지 상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인천인데 남양주에 사는 시누이와 통화를 하다보니 시누이도 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합니다. 시댁인 영종도의 저희 어머님도 같은 경우를 겪으셨답니다.
저희 집 앞엔 오늘도 또 충남지역 농협이라며 비슷한 확성기 소음이 울려퍼지기에 그날의 일이 생생히 떠올라 이렇게 몇자 적습니다.
농협에서 건강 식품을 판매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좋은 건강식품이 있으니 판매홍보를 하고자 합니다라고 떳떳이 밝혀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제발 열심히 땅만 바라보며 농사지으시는 농민을 아무곳에나 들먹거려 값싸게 이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제 글을 통해 저처럼 암것두 모르고 땡볕에서 고생하시는 분이 없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양파의彼岸化 (피안화)
노래 좋습니다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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