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참 그땐, 철이 없었나봐요~
장미정
2001.07.08
조회 27
벌써,6년전이다.
특별히 사귀던 남자 하나 없이 지내던 평범한 직장여성이였다.
만기가 반년 정도 남은 적금을 부으며,더 큰 집으로
이사갈 계획으로 참 열심히도 살았었다.

그런데,우연히 소개로 알게된 지금의 남편과
만나고 다닌지 한 이주일.....
참, 이걸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고들 하나?
짧은 순간에 우린 "사랑"이라는걸 하게 되었고,
서로 집안 인사가 오가고, 연애시작한지
6개월 만에 우린 결혼날짜를 잡았다.

엄마와 난, 20년 넘게 크게 다툰적이 없었다.
학교 다니면서
아침잠 많은 날 고함으로 깨우는 엄마의 호통과
조금만더 조금만더 하면서 징징 거리는 그것 외엔....

그런데,
난, 한남자로 알게된 이후
엄마와 참 많이도 싸웠고, 정말 해선 안될 말 까지
오가고 말았다.

적금이 채 만기가 끝나기도 전에,
난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고,엄마는 큰 집으로 이사 가는 꿈을
나를 통해 접어야 했다.

2년만 더 연애를 해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무시한채
그렇게 엄마곁을 난 떠나려 했던 것이다.
한 남자 품으로 가기위해....

그 후, 잦은 싸움이 오갔다.
좀더 큰 냉장고를 사달라,
장농은 왜이리 칙칙하고 무겁냐.
모모 해달라는 둥 엄마한테 참 많은 투정을 한것이다.

엄마 속도 모르는 난,
없어서 못해주는 엄마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지가 벌었다고 다 퍼가버리는 못땐 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엄마와의 여러번 쌈 끝에
결혼식을 마치고,
엄마는 신혼여행 떠나는 우리 부부곁으로 다가 오시며
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내가 능력없는 엄마다 보니, 많이 못해줘 미안하다.
하지만, 살아가며 필요한거 하나하나 구입 하는것도
내 물건이다 싶어 애착도 생기고 그러는거다.
이건 얼마 안되지만, 여행 경비로 사용하거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왜 난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을 시집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철없는 행동과 말로 엄마의 상처를 더 건들어 버릴 꼴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신혼시절은 어느새 지나가고,
일곱살 딸이현이와 다섯살 아들 대건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저절로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그립고,
더 잘해주지 못하고 시집온 후회도 생겼다.

얼마전에, 장농속 옷걸이가 한부분이 끊어졌다.
6년 동안 2번의 이사를 하면서
이삿짐 센타 직원들이 왜이리 무거워? 하며 투덜 대곤
했지만, 왠지 애정이 가던 장농이였다.

밝지 않은 약간 어두운 밤색 톤이지만,
12자가 아닌 8자 농이지만,
그래도, 친정엄마가 시집가서 잘 살아라고
해준 장농이라 난 오늘도 그 장농을 바라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내가 결혼할 95년도엔
혼수비로 세상을 참 어지럽게도 했다.
혼수구입비만 1억이 넘는다는 둥 어쩐다는 둥
하지만, 난 내가 원해서는 아니였지만,
간소하게 필요한것만 해온 편이였다.

솔직히 살면서 몇개 구입은 했지만,
정말 필요없는 것을 큰돈 주고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금은,시댁에 들어가 살고 있다.
장농도 두개.
티비도 두개.
냉장고도 두개.
전자렌즈도 두개.
살다가 합친 상태라 모든게 두개씩이다.

하지만. 어느거 하나 버린게 없다.
아니 버릴수가 없었다.
엄마가 바리바리 해준 내 신접 살림을 어찌 함부러
버리겠는가.....

장농부터 숫가락 하나에도
나의 친정 엄마의 마음이 묻어나 있는것을.......
돈보다 귀한것을 깨닫게 해준 것들인데....

엄마..........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게 이렇게 자랑스러울수가 없어요.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나도 딸 이현이 시집보낼때,
비싼 혼수품보다
엄마의 사랑을 담아 보내렵니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본동 33-14호 슈퍼맨 책방
장미정.

얄로 젖은 머리 젖은 얼굴에 젖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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