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이제는 기계적으로 눈을 뜨며 또 머리 속에 가득한 건 ''아침 반찬은 무얼하나'' 라는 생각이다. 대충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고 근처 시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부지런히 달려간다. 뭐 반찬할거 없나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모습에 주인 아주머니의 눈길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다시 부지런히 집으로 달려간다. 주섬주섬 챙겨든 까만 비닐 봉지에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한 모와 호박하나, 그리고 깔끔하게 조리된 김 한 봉지
와 깻잎 한 캔.... 두 주간의 주부체험 탓에 이제는 대충 생각해도 반찬
한 두 가지 재료는 머리 속에 팍팍 떠오른다.
오늘 아침 테마는 두부와 호박 - 이들을 이용해서 무얼 하느냐, 바로 호박 된장 찌개와 계란 두부 부침, 호박나물. 오늘 아침 내가 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현재시간은 6시 30분 어림잡아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았다. 볶음 요리에는 이미 달인이 된 나로서 찌개와 나물은 첫 도전인 것이다. 먼저 쌀뜨물은 깨끗이 받아놓은 다음 두부, 감자, 호박, 당근, 양파, 파, 팽이버섯 등의 야채를 준비하고 된장을 풀었다. 된장찌꺼기를 걸러낸 다음 맑은 국물에 준비한 야채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물론 팽이버섯은 그 맛을 만끽하기 위해 다 끓은 후 넣을려고 한쪽 켠 에 따로 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다음은 호박나물...... 깊이가 얕은 남비를 중간쯤 달군 후 채 썬 호박과 무를 볶고 갖은 양념으로 환상적인 맛을 만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맛있었다. 1단계는 대성공이라 자부하며 펄펄 끓는 뚝배기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맛을 보는 순간....우와, 이것은 소금이 아니라 완전 소태다. 대략 양을 맞춘 된장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2인분의 양에 된장을 큰 한 국자씩이나 넣었으니......부랴부랴 물을 두 컵 붓고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프라이팬에 올려놓은 두부계란부침은 어느새 까만 계란을 사용했나 할 정도로 새까매졌으니 이를 어쩌랴........하는 수 없이 반대편이라도 제대로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뒤집어놓고 다시 찌개 맛을 보니 여전히 조금 짠 기운이 남아 이제는 설탕을 약간 넣었다. 참으로 묘한 맛이었다. 다시 생각난 것이 다시다와 소금....약간씩 섞어보니 그런 대로 먹을만했다. 불을 끄고 팽이버섯을 넣었다. 2단계도 그럭저럭 성공...그러나 양이 너무 많았다. 3단계로 두부계란부침 역시 50[%] 성공 .......
밥상 앞에 앉은 아내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심지어 감동한 표정까지.......
그러나 한번 맛을 본 된장찌개에 두 번 다시 손이 가질 않았고 아니 솔직히 말해 3번 손이 갔다. 난 정확히 세었다. 한번 베어먹은 두부부침은 상 모서리 한편에 가지런히 놓더니 눈길 한번 주질 않았다. 이것 역시 정확히 보았다. 마지막으로 호박나물. 아내는 웃었다. 연거푸 웃었다.
뭐가 그리 맛있는지.....그리고 한마디.
"오늘 저녁 외식할래?" "..!!!!!!......."
뚱야......충격이었다. 아침잠도 설쳐가며 준비한 사랑의 음식에 이토록 모멸찬 반응을 보이다니..... 혼자 남은 식탁에서 난 많이 먹었다. 참 많이도 먹었다. 맛있는(?) 퓨전(?) 두부계란부침도 맛있게 먹었다. 하나도 남김없이....이상한 된장찌개도 많이 먹었다. 아니 훌훌 마셔버렸다. 내 입에는 왜이리 맛있지...라고 중얼거리며....
아이를 깨워서 밥 먹이고 대충 챙겨 유치원에 보낸 후 빨래를 하고 있는데, 삐리...삐리...하는 소리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아내로부터 문자 메세지가 3통이나 도착해 있었다. 차례차례 열어보니 이번에는 아내가 날 감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
내용인즉슨 어제 먹은 수제비 탓에 속이 편치 못해 아침을 많이 먹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오늘 아침 반찬은 최고였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외식하자는 말은 내일 어머니께서 시골에서 오시기 때문에 그 동안 너무 고마워서 자기가 맛있는 음식 사준다나...어쩐다나...,,,,,. 어쨓든 기분은 한결 좋아졌다.
유영재씨
주부체험 - 오늘로서 12일째입니다. 그 동안 참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이며, 생선 다듬는 일이며, 세탁기가 고장 나는 통에 장마철이라 미룰수 도 없는 그 많은 빨래를 일일이 손으로 빨기도 하고, 애기 손수건 한 장 한 장 모두 다리기도 하고, 깜짝세일 하는 할인점에서 아주머니들 틈새로 좀 더 맛있는 참외를 고르려고 아우성 치기도 하고, 아빠 손잡고 유치원 통학 버스 기다리는 아이는 마냥 행복해 하는데 밀려드는 아주머니들로 인해 쑥스러움을 맛보기도 하는 등 참 많은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용인대학교 행정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이신주라는 사람입니다.
결혼을 빨리 하고 공부를 뒤늦게 다시 시작한 탓에 아직 학생입니다. 아내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이는 4살 짜리 여자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6월부로 공부하기 위해서 하던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물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대학원 준비도 하고......
전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 탓에 현재까지 공부를 할 수 있고 대학원도 진학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간으로 공부를 하지만 제 비젼과 가치상승을 위해서 하루도 그냥 보낼 수가 없었지만 이번 두 주간의 주부체험을 통해서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인정하질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저의 이런 생각도 이번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아내의 기분도 맛보았고 아빠와 함께 하는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도 맛보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앞서 밝혔지만 특히, 감사한 건 가사노동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저의 경직되고 비탄력적인 사고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감히 결혼 5년 차 애송이가 한 말씀 드리자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아내를 기억하십니까? 떨림이 있었고 이름 석자만으로도 아려오는 가슴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니 바로 지금 전화 한 통화하시죠, 그리고 고백하는 겁니다. 사랑한다고........
듀크 천사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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