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있음에 꿈꾸고 싶어라.
조기훈
2001.07.08
조회 25
요즘은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이 되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했다는 성취감에 흐뭇해진다.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것은 19년 전부터 혼자 시작한 공부이다.
19년 동안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런 중에도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이 헛된 수고이고 시간만 낭비한다는 회의가 생길 때도 많았다.
그런회의가 들때면 어떻게 내 자신을 달래야 할지 몰랐고 다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재활원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도 발전도 없는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내가 남과 다른 뇌성마비라는 것을 안 것은 철이 좀 들었을 때였으니까.
나는 근심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렇게 즐겁기만 했던 나도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그 때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일 없이 자랐던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생활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아름답게 보이던 것들도 아주 하찮게 보이고 웃기를 잘 하던 나는 나 자신을 알고부터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왔던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했고 그 눈들은 나를 동정하거나 멸시하는 눈들이었음을 알았다.
이상하게만 보려고 하는 많은 눈들은 나를 움츠리게 했고 눈을 가진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 눈들을 생각하면 혼자 있어도 몸이 떨리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런 공포 때문에 내가 더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니 자연히 사람을 피하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때 나는 남을 미워하기 앞서 자신을 몹시 미워했고 사람들을 두려워 하면서도 친구가 없다는 것이 내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걷고 싶다는 생각보다 사람과 이야기가 더 하고 싶으니까.
혼자 있기가 정말 싫었지만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이가 적을 때 일찍 죽는 것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편하다는 말을 가끔 듣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에 반문할 용기도 없었고 그 말이 어쩌면 내게 당연한 것 같았다.
내 몸 하나 어쩌질 못하고 살 바에야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일종의 오기였다.
삶에 어떤 희망이나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는 했지만 이대로 죽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나는 종교도 아직 없었고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지 누구에게 배운적도 없었다.
다만 죽음으로 구차한 삶을 끝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이 아닌 기쁘고 즐거움이 있는 생활이 내게도 꼭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약한 비, 구름들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는 듯한 생각일 뿐, 괴로운 나의 생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당시 내게 있어서 또 하나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자기들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하는 일도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소일거리도 없는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오늘은 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머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바보나 미친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이래야 가족들이 다 나가고 없으면 집을 보거나 전화를 받는 일이 고작이었다.
말도 잘 못하면서 전화를 받는다고 전화가 와도 받지 말라고 가족들은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나는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무서워하면서도 사람을 그리워했고 지루하기만 한 생활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은 단지 간절한 바램일 뿐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도
못한 채 몇 년을 보내야 했다.
그런 내 생활은 나의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고 모든 것을 비웃기만 했다.
그렇게 많은 날들을 방황과 제자리 걸음만 거듭하고 있던 내가 이 지겨운 삶을 끝내야 한다는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은 20세를 전후로 해서였다.
그것은 용기라기보다 깊은 늪에서 빠져 나오려는 안간힘이라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내가 안간힘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장난삼아 집에 있는 책 몇권을 읽으며지내다 나도 좋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였다.
처음에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고 묵살해 버리려곤 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은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뭔가 해보고 싶었던 나였지만 글 몇자 겨
우 알 뿐 아는 것이 없던 내게는 말도 안되는 꿈인 것 같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과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여러 달 싸움을 거듭한 끝에 한번 해보자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용기는 하루를 지루하게 보내고 있던 나에게 좋은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가지게 되니까 내가 그 일을 하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들이 배우던 책들을 모아 늦었지만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규칙없는 생활을 했던 몸이라서 그런지 책을 보면 졸음이 오고 책의 내용들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오는 졸음을 쫓아가며 잘 모르는 부분을 몇 번 되풀이해 읽으며 공부를 해 나갔다.
그랬더니 차츰 공부가 재미있어지고 하나하나 모르던 것을 겨우 알게 되었을 때 혼자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혼자하는 공부라 하고 싶은 것은 열심히 하고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은 간단히 해버리는 그야말로 일정한 체계도 형식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공부도 대강하고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지금은 처음의 조급한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내 나이 44살.
그동안 헛되이 흘려 버린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요즘은 아무리 작은 시간이라도 소흘히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그 일들을 하기에 앞서 좀 더 배우고 거쳐야 할 과정들이 내 나이에 비해 너무 많다는 것이 때로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을 잘 다스려서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의 불안한 꿈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이 있지만 그것보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나도 이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상 나를 친구라고 부르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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