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할머니
조동미
2001.07.11
조회 62
저는 지금 막 빗속을 뚫고 시장에 다녀 왔답니다.
배추 한단과 열무 두 단을 사고 나니, 딱 만원이더군요.
장마가 다가오면서 요즘 채소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 세분 아시나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편안히 오가도 되련만,
제가 궂이 시장으로 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집에서 근처의 재래시장까지는 대략 도보로 10분정도의 거리인데요...
지난 시월달에 이사를 온이후 되도록이면 시장을 많이 찾지요.
그 이유는, 집안살림 꾸리랴 지갑을 열기가 만만치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곳에 가면 그리운 내 할머님을 뵙는 듯 해서 입니다.
시장어귀를 들어서서 비좁은 좌판사이를 헤집고 걸어 들어가면
새마을금고 앞에 할머니는 앉아계십니다.
처음에 할머니를 뵈었을 때, 그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지요.
빈약한 푸성귀를 노상에 펼쳐놓으신 채 장사에는 무심한 듯,
담배 한개비를 피워물고 오가는 행인 구경에 여념이 없으신 할머니.....
안그래도 작은 체구를 비좁은 시장길을 배려하여 최소한 웅크린 채 앉아계시던 할머님께 다다갔지요. 할머님께 콩나물 오백원어치를 청했는데
비닐봉투로 가득 담아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웬걸 이리 많이 주시냐 했더니 아무말씀도 없이 피우시던 담배에만 열중이신 겁니다. 그 후로 무뚝뚝한 할머니의 단골이 되었지요.
지금은 떠나온지 오래인 고향과, 그리운 내 할머님과 함께하던 유년의 기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네요. 할머님을 따라 시오리나 떨어진 읍내의 장에 따라나서던 내모습도....
할머닌 산과 들, 텃밭을 다니시며 나물과 푸성귀를 뜯어 삶아 장에 내가셨지요.
그런 할머님께 이십원을 바라고 동행을 자처하던 어느날의 내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지요..., 할머님을 뵙노라면......
할머닌 무척 무뚝뚝하셨어요. 매일 만나는 얼굴이련만 인사를 드리는 제게
한번쯤 아는척은 커녕, 언제나 주름진 얼굴은 무심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며칠 전.....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끝까지 맑아지는 듯한 감동에 젖었습니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난, 늦은 오후였지요.
비좁은 시장길 복판을 무릎아래가 잘려나간 장애인 부부가 힘겹게 손수레를 밀며
행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그런 그들을 무심히 지나쳤고
통행에 방해가 되는 그들을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요.
나역시 동정심에 몇 번, 그들의 물건을 사 주었지만 엉성한 품질에 실망하여
다시는 그들을 향해 지갑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던 중이었어요.
한참 절정에 다다른 더위에 지친 그들이 늦은 점심을 때우는 참이었어요.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김밥 두 줄과 오뎅국물을 들고 있는 그들에게
갑자기 할머니께서 다가가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곤 할머니는 자꾸만 마다하는 아낙의 손을 끌고 당신의 자리로 오십니다.
할머니께서 아낙에게 건넨 것은 당신의 몫이었을 도시락이었구요.....
당신의 뒷켠에 종이박스를 깔고 손수 젓가락까지 쥐어주시던 할머니....
아마 할머닌, 간혹 물건을 사던 손님들이 내밀던 지폐를 챙기는 그들의
빈약한 전대를 보셨나봅니다.
순간 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단, 시장안의 열기만은 아니한....
그들에게 빛좋은 관심은 커녕, 어느땐 얄팍한 마음에
할머님의 정성과 땀을 흥정하지 않았나 싶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그날, 저는 아주 아름다운 영화한편을 보고 난 느낌이었지요.
아니 그보다 더한 감동이 지금까지 커다랗게 가슴에 남아 있답니다.
오늘도 할머니는 그자리에 익숙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더군요. 그 흔한 차양하나 없이, 신문지를 접어 고깔모양으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초록빛으로 잘 여문 완두콩을 까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그런 당신께, 완두콩 천원어치를 달라고 하니,
그 크신 손으로 한대접 가득 담아주시는군요..
할머님의 사랑을 비닐봉투에 가득 담고 돌아오는 길,
목덜미에 와 닿는 빗방울이 시원합니다. 이제 얼마 안있음 장마인데,
할머니를 오래 못 뵐까 걱정이 되는군요.
날마다의 시장길이 나는 너무나 즐겁습니다. 이런 나에게 남편은 그러더군요.
시장 어딘가에 애인하나 숨겨두었느냐고...?
글쎄요... 애인이라면 또 그렇겠군요.
비록 까만 얼굴 가득 주름살이 흐르지만, 내면엔 세상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을 숨기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
나는 당신을 천사라 부릅니다.
아낌없이주는나무 : 내마음의 슬픈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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