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과 저의 인연
이동진
2001.07.11
조회 22
필승!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희 식구들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이 향했죠
뜨거운 햇살에 검게 그을린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의 내 동생의 얼굴이었습니다.
막내 동생을 군에 보내고 일병 진급 기념 하기 위해 면회를 간 날이었습니다.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내 동생이 왜 그런지 동생이 아닌 후배 또는 친구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순간 막내동생과 나의 인연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시간은 21년 전으로 흘러갑니다.
제 고향은 제주도 인데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는길의 한 촌마을 입니다.
아버님이 술이 잔뜩 취해오시던날, 내 나이는 12살이었고 3살 2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죠
술 한잔 하시면 곤히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서 삼 남매를 당신의 무릎앞에 앉혀놓고는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계속 훈계를 하셨죠. 그 훈계의 내용인 즉슨 “너희들은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애들이니까 커서 어떤일이 있어도 나라에 보답하며 살아야한다” (왜 이런 얘길 하시냐 하면 아버님이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가 부상을 당하셨거든요. 지금 국가유공자이시고요.) 이런날이면 우리의 평균 취침시간은 새벽 4시이고 늦었다 싶으면 밤을 새야 했었고, 일찍 끝나는 날은 약주를 많이 하셔서 몸을 가누지 못할때였죠.
이런 저희들을 보다 못한 어머님께서는 동네 어귀에서부터 아버님의 노랫소리가 들릴 날이면 자고 있는 저희들을 깨워 옆집 창고 또는 우리집 장롱 뒤 등 숨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 다니면서 저희들을 피신시키셨죠. 그럼 아버님은 집에 들어와 아무도 없으면 혼자 계속 얘기도 하고 하시다 잠이 드시죠. 그럼 저희들이 몰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한마디로 피난 생활이 따로 없었죠
그런데, 어느날이었습니다. 아버님이 그날도 어김없이 약주 한잔 하시고 들어 오셨는데 어머님이 저희들을 피신시키는 시간이 그만 늦고 말았어요. 저희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에서 아버님의 부름만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내일 시험봐야하는데’ 하는 동생의 말도 들려오고, 내일 수업 중 꾸벅꾸벅 졸다 또 선생님에게 벌을 받을 생각을 하니 또다시 아찔하더군요
그런데 몇분이 아니 몇십분이 지났을까요. 아무소리가 없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무렵, 어머님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 오셨죠.
“꼼짝말고 방에 있어야 한다” 어머님의 엄중한 경고였습니다.그날 밤 꼼짝없이 방안에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반복되는 생활속에 몇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정장을 전혀 안하시던 어머님이 장롱속에 모셔두었던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오시는 겁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없이 어머님의 손에 들려진 호떡이 너무나 맞았어 보였지요
또 몇 달이 지났는데 어머니의 모습이 예전과 같지 않았고 배가 점점 불러 오는 거예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질문도 못했습니다. 그저 어머님이 병이나서 얼마 못사는줄로만 알았거든요삼남매는 갑자기 변하는 어머님의 모습에 엄청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평상 시 같이 방에 들어가 공부 하는 척하며 만화책을 들춰 보고 있었어요
이때 어머님은 배가 몹시 아파하셨지요저는 무어라 얘기도 못하고 어머님의 눈치가 계속 보고 있었죠
근데 갑자기 평상시 왕래가 적었던 할머니가 오시더군요
이후 동네 의사(지금알고보니 돌팔이였죠)도 오고, 동네 아줌다 들도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너무나 겁이 났어요. ‘드디어 어머니가 크게 아픈가 보다. 이제 어머니를 못볼지도 모르겠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걸까’ 하고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한창 머리속이 복잡해 지는데 드디어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이때 저도 모르게 두손을 붙잡고 외쳤습니다 “하느님” 하고 어머니의 비명소리는 계속되었으며 동생들은 그 소리에도 잘 자고 있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또 이날따라 회사일로 못 들어 오시는 날이었구요 (참고로 저의 아버님은 우리 다섯남매 날 때 한번도 어머니 옆에서 지켜보시지 못하셨다더군요)
계속되는 비명소리에 머리를 싸매고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 하던 순간 그 비명소리를 앞도하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저희 집을 흔들어 놓았습니다.동생이 태어 난것이예요. 너무나 이상하면서도 야릇한 느낌이 들러군요
동네 아줌마가 동생을 들고 있었어요 “그놈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하시면서
저는 그때서야 어머님이 임신을 했으며, 아기를 낳는 모습이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첨으로 느꼈습니다. 전쟁 같았습니다.이렇게 해서 저는 태어난 동생과 본의 아니게 처음으로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저는 감사 했습니다. 어머니를 살려 주셔서, 동생도 함께 주셔서그런 동생이 어느새 이렇게 군에 들어가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동생이 이 형을 따라 해병대에 가겠다며 지원을 했다더군요)
동생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자꾸 나옵니다.
어머님은 막내동생을 군에 보내셔서 얼마나 우셨는지 이제는 눈물이 다 마르셨나 봅니다.

동생에게 전해주고 싶군요
“남자는 괴로울때도 슬퍼할때도 참을 줄 알아야 하며, 눈물은 흘릴때를 알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때가 가장 행복한것이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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