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카드
김은영
2001.07.12
조회 31
Dear my wife.
당신의 생일을 정말로 축하해요.
나에게 당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누가 있겠소?
내가 많은 표현을 안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하오.
앞으로도 모든 즐거운 날들과 힘든 나날들을 항상 같이 나눕시다.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줄어든다오.
당신의 생일을 못 기억한 것,
많이 반성한다오.
- 늦게라도 기본은 하는 남편으로부터 -

남편의 핑크색 카드가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결혼하고 첨인것 같습니다.
8줄 정도 쓴 글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이 몇 마디를 쓰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모습을 상상하며...
많이 기뻐 해줬습니다.
루즈를 포장해...
이거 비싼거라고.. 자꾸 강조하면서.. 주었던 사람..
난 금액을 떠나 그의 맘이 좋은데...
아침에 그의 패스포드안에 10만원을 넣어 놨습니다.
점심시간을 쪼개 쇼핑센타에서 그 시간만큼은 아내를 위해 헤멨던 사람을 위해 ... 뭔가를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분명 그는 그 시간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가 설레이며 선물을 준비했던 시간에 비해 내가 기쁨을 덜 표현한 건 아닌가.. 자꾸 되돌아 봅니다.
지금쯤 그는 패스포드 속의 돈을 발견할 시간일겁니다.
그리고 선물을 사기 위해 누군가에게 빌렀을 돈을 갚고 있겠죠.

이틀 전 서른 다섯 해의 생일이었습니다.
10년째 생일을 잊고 사는 신랑부터 10살 된 큰 아이, 8살된 작은 아이까지..
올해도 여지 없이 전 관심 밖의 사람으로 전략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여자인지라.. 우울하더군요.
저희 신랑은 오후 1시에 출근하여 새벽 1시에 퇴근하는 학원강사입니다.
생활비 절약되라고 .. 학원에서 주는 식당 밥을 고집하며..
1시에 출근하여 아침 겸 점심을 먹는 알뜰한 남편입니다.
학원에 종사하는 분이 대부분.. 그렇다고 하네요.

생일날.. 낮에 큰 아이에게 그랬습니다.
"승현아.. 넌 엄마 아빠가 니 생일을 잊고 넘어간다면 어떡할거니?"
우리 아들 그러더군요.
"싫어요... 그건 상상으로도 억울할 것 같예요.. 전 따질 거예요.
마구 화낼 거예요. 행여나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세요. 엄마는 어떻게 할건데요?"
옳다 잘됐다 싶어 "글쎄... 어떻게 할까.. 지금 생각중이다."
이녀석 눈치를 챘던지.. 색종이에 무슨 동물을 그려와서 엄마 생신 축하해요...
하면서 작은 아이까지 합세해서 내 기분을 풀어 줄려고 노력 하더군요.
그리고 슬그머니 나가더니 악세사리 가게가서 천원을 내며
"아줌마..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반지 주세요."
이랬다 하네요. 그리고 아들이 금반지라고 우기는 그 반지를 끼게 됐습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제가 그랬죠.
낮에 승현이한테 내가 뭘 물어 봤는데...
''엄마 아빠가 너 한테 관심을 안 갖으면 어떡할거냐구.''
물었더니 녀석이 따진다고 하네요.
자기는 내가 자기한테 관심을 안 갖으면 어떡 할거예요?
글구 자기가 나한테 관심 안 갖어 주면 난 어떻게 보복 할까?"
그렇게 말하니..
우리 남편 "글쎄.. 난 모르겠네.. 난 기본은 하는 남편이라서 그런 문제는 생각하기 싫구먼.."
난 속으로 ''기본 좋아하네.. '' 그랬습니다. 솔직히..
그에게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주면서 저녁에 아이들과 먹었던 미역국을 떠서 그의 라면 그릇옆으로 밀었습니다.
자꾸 라면에 미역국이 어울리지 않다며 하는 남편은 미역국을 후루루 맛나게 먹더군요.
잠시 후 커피를 타서 내 맞은편에 앉은 남편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자기 내 생일 미역국 맛이 어떼요? 먹을만 하죠?"
우리 남편 화들짝 놀라며 "생일이면 눈치라도 주 -- 지잉."
애교 섞인 목소리로 미안해 했었죠.
그리곤 이번 결혼 기념일엔 꼭 근사하게 챙겨 준다고 말하더군요.
"우리 결혼 기념일이 겨울이었지.. 아마 11달이다..그지?"
난 속으로 올해도 텃군아.. 우리 결혼 기념일은 9월 15일인데...
어떻하면 좋죠?
전 남편이 7시간 8시간 서서 강의하며.. 힘들게 사는데..
모두다 어려운 상황에서 꿋꿋하게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만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미안한 얼굴을 하며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 모든걸 용서해 줘야 될 것 같습니다.
코요테 내 사랑 전할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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