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기억 속의 이야기입니다.
사연의 주인공인 제 친구는 이제 자신의 키보다 훌쩍 자란
두 공주님의 엄마이자, 얼마 전 사업전선에 뛰어들어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는 당찬 여성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보직장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얼마 안되어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의 한명이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꽃다운 나이 스물에 무슨 결혼이냐며 반신반의 하는 우리들 앞에서
그 친구는 담담하게 말하더군요.
자신의 의지 반, 집안식구들의 떠밀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왔던 그친구의 오래된 연인을 잘 알고 있던 우리는
당연히 그가 친구의 결혼상대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커피 한잔을 다 마시고, 커피잔 바닥에 남은 진한 갈색의 앙금을
아주 오래 바라보던 친구가 망설이며 한 말에 우리는 모두 놀라고 말았답니다.
얼마전에 선을 본, 나이 차이가 무려 아홉살이나 난다던 남자가 바로
친구의 배필이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의 집은 그때, 무척 사정이 어려울 때였어요
오래도록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병원비며 약값으로
집을 처분했고 식구들마저 뿔뿔이 흩어지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것입니다.
친구의 결혼상대자는 집안이 꽤 잘사는 모양이었나 봐요.
자신이 친구와 결혼을 하면 아버님의 치료비며 약값은 물론,
생활비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다지요....
독백처럼 긴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서는 친구의 작은 어깨가 문득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둘은 서둘러 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친구의 결혼식 날은 화창한 오월이었어요.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친구는 얼마나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였던지요?
축하객들 모두 친구의 미모에 찬사를 보냈어요..
그런데, 내내 얼어붙은 친구는 경직된 미소만 간간히 보일 뿐,,,,
슬픈표정으로 하객들을 맞아서 우리를 슬프게 했답니다.
다름아니라, 친구의 소중한 연인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알뜰하게 사랑을 가꿔오던
그남자가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와도 허물없이 지내던 그남자,
식당에서 계속 소주를 마셔대더니 결국에는 인사불성이 되어서 흐느끼더군요.
먼 발치에서 그모습을 본 모양이지요...
그러나 그녀는 처연한 모습으로 내내 용케도 참아내더군요.
그런데, 우리들이 힘들게 그남자를 택시에 태워보내고 나서 일은 터지고 말았지요. 근처의 주점을 빌려 시작된 피로연에서 신랑친구들이 돌리는 술잔을
사양도 않고 꼬박꼬박 받아마시던 친구가
끝내는 만취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점입가경은 그다음에 일어났지요.
노래를 청하자, 신부님 사양 한마디 없이 비틀비틀 마이크 앞으로 나가더니
글쎄,,,,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 것입니다.
처음엔 술에 취해 그러려니 하던 신랑과 신랑친구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래와 함께 친구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당황하기 시작하더군요.
난처한 것은 우리, 신부측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못마시는 술을 마신 탓에 주정을 하나보다하고
핑계를 만들기에 바빴지요...
그런데,, 신랑님은 마음도 좋더군요. 분명 무슨 낌새를 챘을 만도 하련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않고 신부를 챙기더군요.
우리는 그날, 철부지 신부를 챙기느라 진땀을 흘렸답니다.
와중에도 신혼여행은 떠나야 한다는 신랑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도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던 친구를 달래느라구요.
결국, 친구는 그날 신랑의 등에 업혀서 트랙에 올랐대요.
그꼴이었으니 첫날밤인들 제대로 보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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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가끔 농담삼아 친구를 놀리면 그아이는 팔짝 뛰고는 해요.
자기가 언제 그랬냐면서, 그리곤 술탓을 하지요..
그때는 마치 세익스피어의 삼대비극 못지 않은 장면이었는데....
그때, 캠코더가 있었다면 그 명장면을 죄다 담아놓았을텐데.
너무 아깝지요??
요즘, 시작한 사업이 제대로 안풀린다고 하소연을 하는 친구에게
힘내라고 응원섞인 노래 한곡 보내려는 취지였는데
본의아니게 친구의 과거를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 되어버렸군요..
그치만 이름까지는 밝히지 않았으니까,
너무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았지? 자칭 딸기 엄마야~~~~
친구왈( 딸기란/ 딸 하나, 기집애 하나래서 딸기라나요?)
홍경민 혼자만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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