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신고 정신
심순자
2001.07.13
조회 22
저는 다 잡은 도둑을 놓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몇 일 전부터 화장실 세면대가 조금씩 앞으로 쏠리는 것 같더니 이 날 아침엔 세면대 받침대 한쪽이 부러져서 금방이라도 떨어져 깨어질 것 같았습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평소 잘 아는 손재주가 좋은 우리 교회 집사님 댁에 전화로 부탁을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이날 나는 늘 하던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 단독 주택 2층인 우리 집 현관문을 열쇠로 열려고 하니 우리 집 안에서 무슨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하는 두 아들 녀석들은 학교에 가서 우리
집엔 낮에 사람이 없을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가만히 현관문을 당겨보니 아침에 잠궈 놓은 그대로였습니다. 혹시나 싶어 좁은 베란다 난간 쪽에 있는
우리 집 큰 방 창문 쪽으로 돌아가니 세상에 방 창문이 열려 있고 어떤 슬리퍼가 창문 아래 놓여있는 것이 아닙니까. 집안에서는 사람이 걸어다니는 소리와 뭔가탁 탁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서며 "낮도둑이 들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심장은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도둑이 도망갈까봐 그 슬리퍼 두 짝을 들고
가만히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순간 112가 생각나서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번호를 눌렀습니다. 평생에 처음 눌러보는 112 신고 전화였습니다. "아저씨 여
기 신월동 12-112번진데요 우리 집에 지금 도둑이 들어 왔어요 빨리 와 주세요" 했더니 그쪽에서는 "잘 안 들리니까 다시 한번 말해 보세요"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윗층에서 들을까봐 큰 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겨우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반복하자 내 얼어붙은 목소리에 사태를 직감했는지 이번에는 "어디 신월동입니까?" 하는 겁니다. 아마 신월동이 전국에 많이 있나 봅니다. 나는 다급한 마음
에 "창원 신월동입니다 빨리 오세요"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느새 내 다리는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옆집 정원이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돌렸습니다. 나는 급한 목소리로 "정원이 엄마 누가 지금 우리 집 다 뒤지고 있는데 어떡해" 하니까 정원이 엄마는 "장난치지 마라" 하는 겁니다. "정원 엄마 정말이야" 하니까 그제서야 내 목소리가 심상치 않은 줄 알아차리고는 "알았어요 우리 아저씨도 있으니까 지금 갈께요" 하고는 정원이 아빠와 함께 즉시 우리집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겁이 많은 나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1층 앞집 마당에서 우리 집 쪽을 지켜보고 있었고 옆 집 아저씨 아줌마는 2층에서 몽둥이를 찾아 큰 방 창문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방 쪽 베란다에서 커다란 남자
팔뚝이 불쑥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도둑이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니까 뛰어 내려 도망하려는 줄 알고 거의 심장이 멎을 뻔했습니다. 다음 순간 도둑의 얼굴이 주방 베란다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 얼굴은 바로 아침에 남편이 세면대 수리를 부탁했던 그 김집사님의 얼굴이 아닙니까? 그 집사님과 말하는 사이에 경찰 순찰차도 도착해서 경찰 두 분이 긴장을 한 채 "어딥니까?"라며 달려왔습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알고보니 사연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집사님이 세면대 수리하러 왔을 때 큰방문 창문이 열리자 다음에 올 시간이 없던 그 분은 그냥 창문으로 들어와 세면대 수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얼굴을 붉혀가며 출동한 경찰 아저씨들께 앞 뒤 사정을 설명하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아저씨들은 나와 그 집사님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가셨습니다. 하마터면 우리집 세면대 수리하러 오신 그 집사님은 이웃집 아저씨 몽둥이에 맞아 떨어졌거나 경찰에 체포당할 뻔했습니다.
이번 일은 그 집사님의 무단 주거 침입과 겁많은 저의 합작품인 셈입니다. 이번 일로 나는 우리 곁에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이웃과 든든한 경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페이스 A Alway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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