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에요. 아이들 키우고 밥하고 빨래하고 남편뒷바라지
하구 말이죠. 사실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약간 모자라는 부분이 있긴 하죠.얼마나 흥과 가락을 사랑하는 민족인지를.
어찌 된 일인지 회사그러는 가운데 저는 자연스럽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라는 곳을 취직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절대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우리민족이 얼마나 흥과 가락을 사랑하는 민족인지를.
어찌 된 일인지 회사는 회식=노래방 이라는 방정식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었던 겁니다.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차를 안가면 기쁨이요 가면 곧 슬픔이 되는 것이었죠.
회사동료나 상사가 처음에는 저에게 열심히 노래를 청하더군요..
반년만 지나면 회식때 저에게 그다지 노래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면서도 어느부서에서나 똑같이 일어났던 현상입니다.
노래방에서 나갈때는 대체로 저에게 미안해 하더군요.
저를 못올곳에 데리고 오기라도 한것처럼 말입니다.저역시 미안한데 말입니다.
이렇게 노래방 문화는 우리 민족을 더욱더 노래와 가깝게 만들었고 저는 이와
비례해서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말았지 뭡니까?
그뿐인가요? 눈치없는 후배녀석은 노래를 골라준답시고 “이거 쉬운노래에요.
한번해보세요.“ 아마 자기들끼리 놀기가 미안했나 봅니다.
그게 자기들한테나 쉬운노래지 저에게도 쉬운노래겠습니까?
그러고는 제가 못하면 마이크 뺏어가서 자기들끼리 실컷 목청높여 노래하고탬버린으로 허먹지를 퍼렇게 멍들이곤 다음날 신나게 놀았다고. 저는 그때 가슴속에 가득 쌓인 스트레스를 들킬까봐 얼른화제를 돌려야 했구 말이죠.
이렇게 노래방 문화는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역시 흥이 넘치는 우리 민족은 회사 야유회를 결코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관광버스안은 노래방, 나이트장 못지 않습니다.한번은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사회를 맡겼더니 저에게 노래를 시키더군요.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저는 나름데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마디했죠. 저 제가 노래하면 분위기 죽입니다.
그러자 사회자는 환호하더군요. 저 분위기 살리느라고 힘들었는데어서 부르세요. 사회자는 아마도 제이야기를 속칭 “분위기 죽여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거죠. 저역시 그런 계산하에 말을 한 것이긴 하지만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나름데로 최선을 다해서 불러버렸습니다.
급기야 사회자는 한마디 하더군요. “예 정말 분위기 죽여버렸네요”다음부터는 노래 안시키겠습니다.농담보다는 진담에 가깝게 저에겐들렸죠.노래방 이라는 방정식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었던 겁니다.
그놈의 회식은 왜그리 자주도 오는지 노래못하는 사람에게 회식은 “기쁨 아니면 슬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차를 안가면 기쁨이요 가면 곧 슬픔이 되는 것이었죠.
회사동료나 상사가 처음에는 저에게 열심히 노래를 청하더군요.가 분위기를 얼마나 망치는지를 모르니 하는 행동들입니다.반년만 지나면 회식때 저에게 그다지 노래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면서도 어느부서에서나 똑같이 일어났던 현상입니다.노래방에서 나갈때는 대체로 저에게 미안해 하더군요. 저를 못올곳에 데리고 오기라도 한것처럼 말입니다.저역시 미안한데 말입니다.이렇게 노래방 문화는 우리 민족을 더욱더 노래와 가깝게 만들었고 저는 이와
비례해서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고 말았지 뭡니까?
그뿐인가요? 눈치없는 후배녀석은 노래를 골라준답시고 “이거 쉬운노래에요.
한번해보세요.“ 아마 자기들끼리 놀기가 미안했나 봅니다.
그게 자기들한테나 쉬운노래지 저에게도 쉬운노래겠습니까?
그러고는 제가 못하면 마이크 뺏어가서 자기들끼리 실컷 목청높여 노래하고
탬버린으로 허먹지를 퍼렇게 멍들이곤 다음날 신나게 놀았다고. 스트레스 다 풀었다고
들 이야기 합니다. 저는 그때 가슴속에 가득 쌓인 스트레스를 들킬까봐 얼른화제를 돌려야 했구 말이죠.
이렇게 노래방 문화는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뭐냐구요? 내 저는 노래를 너무 못한답니다. 이부분을 빼야 평범한 가정주부가되겠군요. 저는 많은 청중들 앞에서 혹은 노래방에서 멋지게 노래를 불러
제끼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신기하기 짝이 없답니다.
요즘 노래방이 워낙 보편화되어서 노래못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저는 그속에서도
독야청청 노래를 못하고 있는 슬픈 아줌맘니다.
제 기억이 아련한 유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군요.
제가 노래뿐 아니라 모든 음악적 장르를 망라하고 소질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죠. 그만큼 아픔을 일찍부터 겪었다는 이야기죠. 어린마음에 괴로워했었죠.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어요제가 국민학교 저학년때였어요. 교회에서 선생님께서 피아노로 젓가락 행진곡을
가르켜주시더군요. 저는 아무리 피아노 소리를 듣고 노력해도 절대로 그 곡이연주되지 않더군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선생님앞에서 정말 괴로웠습니다.
선생님은 결국 포기하고 다른 아이를 가르치더군요.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 친구는 단번에 그 곡을 연주하는
거에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아픔은 그때를 시발로하여 학교생활을 내내 힘들게 했었죠.
저는 공부를 제법하는 편이라 성적이 그런데로 좋은 편이었어요.단 음악을 제외했을때 말이죠. 이론은 어떻게든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겠는데
노래 실기만들어가면 정말이지..... 그동안 공들였던 성적은 와르르 무너지기일쑤죠. 게다가 대체로 선생님은 저에게 그러셨던것 같아요.“ 목소리 크게... 다시...
다시 해봐....., 너 연습안했지?“ 전 그전날 목소리가 갈라지고 찢어지도록노래연습을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전 매 학기마다 가슴에 상처를 담아야했답니다.
흑흑....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대충 이렇게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말씀입니다.
고등학교를 딱 졸업하고 나니 저를 둘러싼 주변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 지더군요.노래방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거죠.
그게 왜 심각한 상태냐구요? 제 이야기를 마저 들어 보세요.저 역시 처음에는 와~ 노래를 연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드디어내 앞에도 등장하는 구나! 정말 열심히 해서 나두 노래한번 뽐나게 불러봐야지!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노래방이라는 곳을 가서 노래를 하는데 반주와 음높이를
절대로 맞추지 못하겠더라구요.노래가사에 칠해지는 색을 보고 저는 제가 노래를 잘 따라할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러나 그 꿈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신세가 되었고, 열심히 연습해서 나도당당한 대한의 딸이 되어야 겠다는 포부는 비누거품녹듯 녹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노래방 문화는 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역시 흥이 넘치는 우리 민족은 회사 야유회를 결코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관광버스안은 노래방, 나이트장 못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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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경 너에게 주고 싶은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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