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들으며 레이스 뜨기를 하던 저는 실없는 사람마냥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우리집에 경사가 났거던요. 우리같은 소시민 가정에 갑자기 고시에 패스한 벼슬아치가 탄생한 것도 아니고, 남편 월급이 두배로 뛰어 오른 것도 아닌데 무슨 경사냐구요? 드리어 저희 가정에도 시댁이나 친정쪽에 前無後無했던 ''짠돌이''가 탄생한것입니다. ''왕짠돌이''수준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저는 기쁩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지난 2월 입대한 큰아들과 고3인 작은아들이 있습니다. 그 ''짠돌이''는 바로 작은아들입니다. 며칠전, 작은아들의 기말고사가 있은 날은 급식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있는 작은아들에게 "학교서 늦게까지 공부할라카모 점심과 저녁은 우짜노?" 하고 물었더니, 녀석은 "사먹어야지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잔돈이 이천원 밖에 없으니 나머지는 니돈으로 좀 해결해라." 고 했었죠. 그랬더니 녀석은 정색을 하고 "제가 돈이 어딨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돈이 없다며 만원 한장을 얻어가며 잔돈은 저녁에 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앞날 분명 녀석에게 대출받은 십육만원을 갚았습니다. 유월에는 낼것이 많아 녀석에게 십오만원을 빌렸고 약정대로 이자 만원을 얹어서 갚았습니다.
저희집 소비행태를 잠깐 말씀드리자면 월급을 받아 각자 용돈을 분배받아 쥐는 그 다음날부터 남편은 며칠간 알코올에 절어 심야에 들어오고, 큰아들은 친구가 군대가네, 휴가왔네, 사고쳤네하며 pc방이나 호프집을 전전하며 탕진을 하고, 저역시 신바람이 백화점을 1차로 순시하고 2차로 재래시장을 헤집고 다니다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녀석은 늘 잠겨있는 책상서람 하나를 열어 세종대왕, 율고선생, 퇴계선생의 얼굴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세고 또 세어 봅니다.
그러는 동안, 남편과 큰아들은 돈이 떨어져 다음달까지 쫄쫄 굶으며 몸부림을 칩니다. 더이상 참지 못할 단계에 이르면 닮은꼴 두사람은 작은 녀석의 방에 가서 사정사정하여 고금리의 대출을 받습니다. 대출 절차는 구두로 액수를 말하고 그다음 차용증을 쓰고 도장을 찍습니다. 이 차용증 제도는, 작년에 남편고 큰아들이 각각 오만원씩 빌려쓰고, 이달 저달 차츰 미루더니 막판에는 갚았다고 생트집을 잡아 떼어 먹히게 되자 증거보전을 위한 것입니다. 녀석은 어릴때부터 그 흔한 음료수나 무슨무슨깡하나 안사 먹고 무조건 집에 있는 먹거리로 버텼습니다.
적은 용돈에도 불구하고 작은아들의 자산은 절대 공개한 적은 없지만 눈치상 백여만원 이쪽저쪽인것 같습니다.
언젠가 남편이 맛있는 것 좀 사달라고 조르자 녀석은 "벼룩의 간을 뽑아 드시지요." 하며 퇴짜를 놓았지만 그래도 급할때 우리가족들의 구제금융입니다.
박화요비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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