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대학교 4학년에 재학중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희 어머니의 얘기구요. 벌써 저희 어머니가 53세가 되셨군요.
저희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하시고 은행에 입사하신 후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셔서 결혼을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막내이셨는데 큰집의 문제로 할머니는 거의 저희 집에 계시곤 하였습니다. 돌아가실적에도 저희 집이 편하셨는지 저희 집 작은 방에서 눈을 감으셨구요. 아버지는 은행에 다니셨는데 야구를 하신탓에 승진에 다소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96년에 명예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은행원의 집인데 무슨 문제가 있었겠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평생을 저희 어머니는 월급봉투를 받아보시지 못 할 정도로 집의 중심은 아버지셨고 평소 사람들을 좋아하시고, 술을 좋아하시고, 남을 잘 신뢰해주시던 아버지셨기 때문에 대출문제로도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인가 봅니다. 그 전에는 잔디밭이 있던 집에서 살던 저희는 보증문제로 부득이하게 집을 줄여 올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부터 저희 어머니는 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비울 수는 없었기에 집 마당 끝에 있는 골방에서 공장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말이 골방이지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여름에는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였습니다. 말씀으로는 너희 용돈이나 주려고 한다고 하셨지만 공장사람들도 놀랄 만한 양을 소화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지 3년쯤 되었을까요? 공장의 부도로 일을 하실수가 없자 어머니는 평소의 적성을 살리셔서 동네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로 했습니다. 학원이라기보다는 집에서 하시는 과외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다가 저희가 대학에 들어가고 아버지는 은행을 그만두시고 투자하신 주식이 바닥을 향하자 어머니는 과외뿐만 아니라 다시 다른 공장일까지 겸하시기 시작하시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시냐면 학생들의 시험기간에는 거의 12시 넘게 채점하시고 예상문제를 직접 내시고 하셔서 저희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전부 성적이 크게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이러십니다. 아침을 드시고 빨래를 하시면서 일이 시작됩니다. 공부가 시작되는 2시정도까지 공장일을 하시고 9시까지 학생들을 가르치신 후 늦은 저녁을 드시고 다시 공장일을 하시는데..........요즘에는 나이는 못 속이시는지 가끔 방을 들여다보면 졸고 계신 당신의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사실 어머니는 몸이 특히 치아가 좋지 못하셔서 부분 틀니를 하고 계신데 교체를 해야 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돈이 아까워서 아직도 치과에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딱딱한 음식은 씹지도 못하시고 그러면서도 저희 두 아들의 용돈만큼은 한 주도 거르지 않는 그런 분입니다. 당신은 6개월에 한 번씩 파마를 하시면서 저희에게만큼은 조금도 아끼지 않는 巨人.....그녀가 바로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아까 제가 썼던 내용인데 아직까지 어머니는 월급봉투를 아버지로부터 받은 적이 없으시다고 했죠? 97년에 군대를 간 저는 97년 5월에 첫 휴가를 나오면서 훈련병 때 받은 2만원 정도의 월급봉투를 가지고 나와서 어머니께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평생 월급봉투 한 번 받아보지 못하신 어머니의 恨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리고자 한 일인데 어머니는 그 봉투를 받으시자 고개를 돌리시더니만 이내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더 많은 일들이 어머니를 통해서 일어났지만 제가 글주변이 없어서 두서없는 글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두서가 없더라도 작고 여리신 저희 어머니의 크신 사랑만큼은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을 해봅니다.
솔리드 아끼지 못했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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